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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가고시마를 가다.[3]

식(食), 도(道), 락(樂) 열차여행을 즐긴 우리들은 가고시마 미야마(美山)에 있는 심 수관(沈 壽官)도예지를 찾아간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도 다녀가셨다는 사진이 있었다.

정유재란때 남원에서 일본으로 끌려간 심 당길(沈當吉)의 후손이 15대에 걸쳐 400 여년동안 도공의 길을 걸으며 일본 3대 도자기의 브랜드로 만든 이곳 "사쯔마 야끼" 는 일본 뿐 아니라 세계적인 도자기가 되었단다.
한국의 혼(도자기 기술)과 일본의 자연(흙과물)이 결합해 빚어낸 일본 도자기의 대명사가 되었단다.
14대 심수관옹이 방문객들을 맞고 계셨다. 명함을 주고 받고_---.
지금은 15대 심수관(52세)씨가 1999년 가마와 함께 가업을 이어받아 조선도공의 후예로 길을걷고 계신단다.
유리창문을 통해 실제 작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찻잔에 붓으로 그림을 그려넣고 있는 종업원들의 진지함에서 품질의 우월성을 엿볼 수 있었다.
저렇게 수작업으로 하나, 하나 그림을 그려넣고 채색하고 있으니 찻잔의 고급스러움과 과연 값은 얼마일까?
작품을 모르는 자신은 양산되는 생활 자기만이 머리속에서 맴돌뿐이였다.

도예지 중앙 대문 한켠엔 대한민국 명예총영사관이란 문패도 걸렸고 한국의 태극기와 일본의 일장기가 나란히 걸려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판매되고 있는 작품도 보고 별도의 수장고에 보관, 전시된 작품도 돌아본다.
얼마전 12월15일에는 전북 남원에 심수관 도예전시관이 남원시 주관으로 개관하였단다.
정교한 기술과 찬란한 색채감을 살린 12~15대의 작품 13점을 기증받아 전시중이란다.
남원에 갈 기회가 있을때 한번 돌아봄도 좋으리라.

이제 가고시마의 대명사처럼 알려진 살아숨쉬는 활화산이 있는 섬, 사쿠라지마를 간다.
전세계 활화산의 10%가 일본에 있고, 그중 30%가 가고시마에 있다는데 지금도 분화가 계속되고 있는 대표적인 사쿠라지마.
밤중에 화산재가 분출했다가 사그러지는 모습이 사쿠라(벚꽃)을 닮아 붙혀진 이름이라는 설과, 섬 전체 모습이 사쿠라(벚꽃) 모양이라 붙혀졌다는 설도 있단다.
사쿠라지마는 페리를 타고 15분 정도면 도착한다. 우리를 태운 버스가 페리로 진입하고 우리는 차에서 내려 바람부는 갑판 위로 오른다.
섬 전체가 눈에 확~~들어온다.

저 산위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오른다. 분화가 시작된것이란다. 하루에도 몇차례 분화가 이루어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수도 있단다.그래도 직접 분화모습을 볼수있어 다행(?)이었다.
기록물을 보니 금년에도 1,204번의 크고 작은 분화가 관측되었단다.
우주의 신(神)이 인간에게 주는 자연의 경고(?)일까?
분화횟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단다.
사쿠라지마는 이름그대로 섬이였는데 1914년 1월 엄청난 화산폭발로 흘러내린 용암이 바다를 메워오스미반도와 연결되어 지금은 섬속의 육지가 되었단다.
우리도 올때는 페리를 이용했지만 갈때는 육지로 연결된 도로를 이용한단다.

우선 비지터 센터에 들려 활화산의 탄생과정, 역사와 현재까지의 크고 작은 분화 모습을 영상관에서 본다.
일본어 영상물이였지만 한글 자막이 있어  한국관광객들에게 큰 불편은 없다.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 화산폭발시 발생하는 엄청난 에너지, 화산재의 위험, 흘러내리는 대규모 용암의 두려움이 교차하는 감정이었다.
어느 일본인은 사쿠라지마를 불(火)섬이라 표현하기도 했단다.
1914년 1월 대규모 폭발로 흘러내리다 식어버린 용암덩어리들이 바위로 변해 곳곳에 남아있었다.
화산폭발은 대규모 지진과 함께 통상 100주기로 발생한다는데----.
2014년이되면 섬속에 사는 사람들은 불안하지않을까?
물론 지진 추이를 분석하는 행정기관이 따로있어 충분히 빠져나 올 시간은 된다고 하지만----.
미리, 미리 대피소도 만들어 놓았고 흐르는 용암을 쉽게 바다로 흘러내릴 수 있도록 통로를 조성해두고 있었지만 주민들은 늘 불안하리라.
대피훈련도 자주하고 발생시 지켜야 할 매뉴얼이 되어있어 피해가 없을것이란 일본인의 얘기도 있었지만 후쿠시마 쓰나미 여파이후 주민들의 생각이 많이 달라지고 있단다.

비지터 센터에서 영상물 관람후 전시관을 돌아본다.
1914년에 발생한 대폭발의 모습, 신사(神寺) 입구에 있던 도리이(우리나라 사찰의 일주문과 같은 유형)윗부분만 남긴채 용암에 매몰된 사진모습도 보인다. 용암이 흘러내린곳은 50년이 지나야 서서히 식물이 싹을 틔워 자라기 시작한단다.
100~200년이 되어야 푸른산이 된다고 하니 그 피해 규모와 상처를 감히 짐작할 수 있을것 같다.

유노희라 전망대. 분화구에서 가까워 힘찬 사쿠라지마의 경관을 바라볼 수 있는곳.
차에서 내려 땅을 밟으니 분화시 내려앉은 잿빛가루가 여기저기 쌓였다.
잠시 분화중이였지만 다행히 바람덕분에 시커먼 연기가 반대편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사쿠라지마는 키타다케(北岳), 나카다케(中岳), 마나미다케(南岳) 등 3개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 둘레55km의 섬으로 사쿠라지마 무우(大根)는 이섬의 유명한 농산물이란다.
화산재 영향으로 땅이 기름져 농사는 잘되고있어 사람들이 섬을 빠져 나가지 못하고 살고 있단다.
화산의 분화는 피해만이 아닌 득(?)도 있나보다.
이곳 사쿠라지마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무우와 세계에서 제일 작은 고미깡(작은 감귤) 이 생산되고 있다는데 먹어 볼 기회가 없어 아쉬움이 남았다. 과연 그맛은 어떠했을까?

금, 토, 일을 포함한 2박3일간의 가고시마 여행.
짧은 일정이였지만 많은것을 보고 느끼고 체험했다.
특히 따뜻한 기후와 온천욕, 천연 흑 모래찜질, 멋진도시락과 함께 한 덜커덩 거렸던 3등 열차여행은 깊은 추억으로 남았다. [끝]

 

최한용  webmaster@ig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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