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란 이름

얼마전 TV 다큐멘터리 프로에 “아버지와 신부”란 제목의 인간극장 프로가 방영되었다.
내용은 대충 이렇다.

66세의 아버지가 33살의 막내딸과 살면서 시집보내는 내용이었다. 어머니는 두 딸을 낳고 결혼 6년만에 교통사고로 몸이 부자유스런 상태로 생활을 하시다가 2년전 하늘나라로 먼저 가셨단다.

하지만 지금도 거실 한켠에 영정을 모셔놓고 대답 없는 대화를 나누시는 아버지다. 이제 막내딸을 시집보내고 나면 홀로 사셔야 한단다. 외로움에 대한 독백으로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기도 했다.

33살의 장성한 딸, 회사에서는 팀장이란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침에 밥을 손수 준비해서 출근 전 밥을 먹고 가게 만든다.
또 시집가기전 아버지가 신부 수업을 시킨다.

설거지 하는 방법, 시장 보는 방법, 음식준비 하는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가르치신다.
그저 아버지가 해주시는 밥과 집안청소 덕분에 지금까지 곱게 자랐지만 이제 시집가면 직접 해야 하기 때문에 아버지는 늘 걱정인가 보다.

이시대 “아버지”란 누구인가?
나는 TV 프로를 보면서 스스로 생각해 보았다. 나도 곧 시집 보낼 때가 된 장성한 딸이 하나 있다.

음악 대학을 졸업하고 학생들 피아노 레슨 일로 늘 늦게 귀가한다.
그러니 얼굴 보기가 좀처럼 힘들다.
토·일요일 정도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과연 나는 자식들에게 무엇을 해주었는가?
그저 직장 다닌다는 허울 좋은 핑계로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지 못하고 늘 바쁘게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닌지?

진정한 행복은 무엇이고 의미 있는 삶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어야 하는데 그저 마음속에만 맴돌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면 그저 답답하고 미안할 뿐이다.

내 아버님도 올해 87세이시다.
지금 고향에서 어머님과 두 분이 따로 생활하시고 계신다.

5남 3녀의 자식을 두었지만 모시고 있는 자식이 없다. 물론 아직 스스로 활동하시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건강하시다.

그리고 도심의 아파트보다 시골 생활에 익숙하시다는 것을 핑계로 삼기도 하지만 자주 찾아뵙기도 어렵다. 나부터 모두가 불효자식이다.

이리 바쁘고 저리 걸리고 하다 보면 훌쩍 한달이 지나간다. 가끔 전화는 드리지만 거꾸로 자식과 손자들 걱정이 더 앞서신다.

자주 찾아뵙고 목욕도 같이 모시고 가야 하는데 늘 핑계가 앞선다.
가끔 찾아뵈면 아버지는 어머님 걱정, 어머니는 아버님 걱정뿐이시다.

두 분 모두 내가 먼저 죽으면 너의 아버지(너의 어머님)은 누가 돌봐 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의 걱정이 태산이시다. 둘이 같은 날 같이 죽어야 하는데 마음대로 할 수도 없는 일이라시며 걱정스런 말씀을 가끔 하신다.

그리고 자주 찾아오지 못하는 자식들에게 가끔 서러운 말씀도 하신다. 죽은 다음에 와서 울고 불고 할 것 없이 살아 있을 때 한번이라도 찾아와 주는 게 더 좋겠다고…
지당하신 말씀이시다. 그래서 한달에 한번은 꼭 찾아 뵙겠다고 스스로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늘 노력한다.

생노병사의 과정을 피해갈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 태어나면 죽게 되여 있는게 사람이다. 불노장생 할 수는 없다. 그 시기를 예측할 수 없을 뿐이다.
어떤 사람은 무병장수 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젊은 나이에 요절하는 사람도 있다.

이시대 아버지란 이름의 위상은 어떠한가?
오륙도(56세 이상 직장에 있으면 도적이다)니 사오정(45세 정년)이니 해서 뭇 아버지들의 어깨가 축 쳐져 있다.

구조조정, 명예퇴직 등으로 한창 일할 나이에 직장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죄라면 나이 먹은 게 죄 뿐인데…
아직 노인이라고 하기엔 너무 젊고 또 가정에선 아이들의 막바지 등록금과 결혼시킬 자금 등으로 정말 힘든 시기다.

돈은 많이 필요한 시기이지만 직장이 없으니 수입이 없다.
돈을 벌지 못하니 집에서도 찬밥 신세가 된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남편이 직장 다닐땐 잘 모르다가 집에 있게 되면 불편한 것이 많다고 하소연 한단다. 세끼 식사 챙겨 주어야하고 마음대로 외출하기도 거북스럽고…
그래서 일본에서도 정년퇴직과 동시에 헤어지는 황혼 이혼이 많다고 한다.

정말 서글픈 세상이다.
대한민국 40~50代 남성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회사에서는 구조조정 압력에 시달리고 집에서는 가족들 푸대접에 시달리고 밖에서는 냉담한 사람들의 표정에 짓눌려 힘겹게 살아간다.

어느 교수는 4~50代를 가리켜 흔들리는 한국의 허리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과밀, 사상최고의 경쟁을 뚫고 지나온 “베이비붐 세대 ”가 마주한 것은 조기 퇴직과 노후불안이다.

IMF 외환 위기이후 기업 및 은행 구조 조정 과정에서 4~50代 사람들은 그야말로 비탈길에 서 있는 수레바퀴와 같았다.

오르려니 힘이 부치고 그냥 두면 내리막으로 곤두박질할지도 모른다. 그저 잡고 있는 것으로도 힘이 달린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버겁게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노후 대책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위로는 연로하신 부모님 모셔야 하고 아래로는 자식들의 교육비 마련에 힘들었다.

특히 私교육천국인 대한민국에서 그에 따른 비용부담은 가장의 허리를 휘게 만들고 자녀 유학을 위해 성공한 40~50代 사이에서는 “기러기 아빠 ”라는 신조어를 만들기도 했다.

무슨 사업을 시작하려 해도 쥐꼬리만한 퇴직금마저 날릴까봐 검토하다가 시간만 아깝게 흘러가고 자신도 없지만 꼭 속는 느낌이라 성큼 달려들기도 어렵단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정말 잘 살아가는 방법일까?

이래서 아버지란 이름은 속으로 밖에 울 수 없다고 표현 하는가.
소리 내어 엉엉 울어 버리면 속이라도 후련 하련만 그것조차 할 수 없는게 아버지란 이름이다.

의료기술의 발달과 영양식의 공급으로 수명은 연장되고 삶은 풍요로워졌다. 하지만 그것을 누리고 살려면 경제적 뒷받침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 그것이 바로 노후대책 아닐까?
말은 쉽지만 그것이 벌써 남의 얘기가 아닌 내 얘기로 다가오고 있다.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소일하며 즐겁게 살아 갈수 있을까?
또 한가지 숙제가 내 머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

금산신문 webmaster@ig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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