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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신안사에서~~~~.

엊그제 토요일, 금산 거래처에 물건을 납품하고 시간적 여유가 있어 금산군 제원면 천태산 자락에있는 신안사(身安寺)를 찾아간다.신안사는 몇번 방문한적이 있다.

절 이름에 몸신(身)자를 쓰는 절이 별로없단다.신라의 마지막왕인 경순왕이 충북 영동군에 있는 영국사(寧國寺)에서 수학할때 이절에도 가끔 머물렀는데  주변경관과 어울려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해서 신안사(身安寺)라 이름지었다고 전해진단다.

동곡리를 지나 길곡에 접어들며 노루재를 넘는다. 이곳엔 지금은 교육기관으로 바뀌었지만 제원초 길안분교가 있던 산골마을이다.지금이야 신안사 절까지 아스콘으로 말끔하게 길이 포장되였지만 내가 금산 근무시까지만 해도 먼지가 푹석~푹석~~나던 비포장길이였다.

가는길 도로옆에 여름꽃 금계국이 노랗게 피어 바람에 일렁이며 방문자를 맞는다.

자생으로 자란 금계국, 꽃 모양이 마치 코스모스와 닮아 여름 코스모스란 별칭을 가진 아름다운 꽃. 무리지어 피기에 더욱 예쁘고 깨끗하다.꽃말도 그래서 일까? 상쾌한 기분이란다

산속을 달리는 길, 에어컨을 끄고 차창을 열자 산 바람이 차안으로 들어왔다가 돌아 나간다.

늦은 아카시아 꽃향기와 함께 산속 초록의 신선함이 코끝에 머문다.

상쾌한 기분으로 차 없는 산길을 달리자 곧 저 멀리 신안사 모습이 나타난다.

초파일 지난지가 얼마되지 않아서 일까? 주차장엔 차 한대없이 그저 조용 할뿐이다.

신안사는 신라 26대 진평왕 5년(583) 무염대사가 창건한 조계종 6교구 마곡사 말사라고 적혀있다. 

일주문도,해탈문도,사천왕문도 없다. 주변의 잡초가 말끔히 제거된  돌계단을 따라 절에 오른다.돌계단이 정겹다.

아스콘으로 포장된 깨끗한 큰절보다 정이 더 느껴지는 것은 돌게단에 머문 세월의 흔적때문이리라.

창건당시는 3,00여명의 승려들이 수행했던 거찰(巨刹) 이였다는데 ---

지금은 그저 넓은 광장만이 그날의 영광을 알려줄뿐이다.광장엔 초파일 행사때문이였을까 ?

검은 차광막이 깔려있다.절집은  아침마다 마당을 쓴 빗자루 흔적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6.25전쟁때 전각은 불타고 불경,불기등의 여러비품들도 소실되였다고 한다.

지금은 극낙전,대광전, 산신각과 요사채가 전부다.대신  벚나무등 수목이 지난 역사를 품고 있었다.

보통의 사찰은 대웅전이나 대적광전이 주 전각인데 이곳은 극낙전이 한 가운데 위치하고 왼쪽으로 대광전이 자리했다.  그 이유를 물어보고 싶었지만 스님도,보살님도 만날 수 없었다.

그저 팔자 좋은 개 한마리가 그늘에 누워 방문자의 동태(?)를 살피고 있을 뿐이다.

극낙전 앞 7층 석탑은 작지만 세월을 품은 흔적이 역력히 남았다.모퉁이 일부가 소실되여 아쉬움이 있었지만 극낙전 앞에 우뚝히 자리잡아 빛나고 있다.

절집의 전각을 돌아본다,사람의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산 비둘기,산까치--등 날 짐승들이 전각을 찾아 여유롭게 먹이를 쪼고 있다.그리고 오른편으로 요즈음 쌓은듯한 돌탑이 새로 생겼다.

종무 사무소도 비어있고~~~. 초여름, 한낮의 절집은 오수에 조는 듯 적막한데 지나는 바람이 극낙전의 풍경을 흔들며 잠을 깨우고 있다. 돌아내려 오는길.돌담벽에 오른 담쟁이 초록잎에 햇볕이 내려 반짝~반짝 ~윤기가 돈다.신안사는 조용한 절이다. 수행 정진하기에 으뜸이리라.

요즈음 언론에 오르내리는 일부 불교계 지도자들의 도박,룸싸롱파문에 중생들이 스님을 걱정해야 하나?---.

 

     

 

                                                      
 
 

최한용  webmaster@ig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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