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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일기장에서~~.

x월 x일.

3월은 열리고 그 둘째날 아침이자 토요일입니다.

꽃샘 추위라고 해야하나 조금 추운 아침입니다.

어제 새벽에 대전은 비가 조금 내렸습니다, 이제 봄비라고 해야겠지요.

겨울날의 비와 그 느낌이 완연히 달랐습니다.언 땅은 녹아 질척이고 이제 새 생명들이 움트도록 땅을 부드럽게 만들었습니다.

새 생명은 식물들도 여리지만 나름대로 예쁩니다, 아름답습니다.

지금 뭇 생명들이 새싹으로 모습을 보여주기위해 나름대로 우리가 모르는 산고의 아픔을 이겨내고 있을 겁니다.

씨앗을 터트려야 하고 부드러운 초록의 싹으로 단단한 땅을 뚫고 밀어 올려야 합니다.대지에 싹이 모습을 나타내면 다시 한밤의 차가운 기온을 견디어야 합니다. 그런 고통을 이겨내고 성장해서 아름다운 꽃을 피워야 알찬 열매를 맺지요.

삶의 고통을 이겨내야 하는 우리사람들의 삶과 비슷할지도 모름니다. 만약 사람들이 식물과 말을 나누고 그들의 말을 들어줄 수 있다면 또 다른 세상이 열리겠지요.축복일까요? 재앙이 될까요? 태어나면 한자리에서 생을 마감해야하는 초록 식물들, 주어진 환경을 바꿀 수 없는 그들, 그래도 몇 백년을 살아가는 보호수인 고목들. 그들에 비해 우리사람들은 너무 자유를 누리면서도 불평하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닌지? 봄날의 아침에 배우는 인생교훈입니다.

3월, 훈풍따라 남녁에서 봄이 살랑~살랑~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 봄의 기운을 몸으로 만끽해 보셔요.

x 월 x일.

어제 오후, 대전역에 거래처 일본인 손님을 맞이하러 갔었습니다.

날씨도 좋은데다가 봄 방학이어서인지 오,가는 여행자들이 참 많았습니다.

동(東) 광장 주차장도 만차여서 겨우,겨우 빈자리에 주차를 하고 2층역 내부광장에 오르니 작년 11월 대전역에 입점했다는 빵집, 성심당앞에는 빵을 사려고 50여명이 길게 줄을 서 있었습니다.

어떤 영문인지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벤트행사라도 하는 줄 알았는데 오픈이후 매일,매일 지금도 계속되고 있답니다.

"튀김 소보로 빵"과 "부추빵"을 사기위해 기다리는 줄이라는데 줄어들지않고 계속 줄이 형성되고 있었습니다.

모두 포장해가는 손님들이였습니다.점포내에는 먹을 장소가 없었습니다.

대부분 튀김 소보로빵과 부추빵을 구매하고 있었습니다.

금방 튀긴 제품이라 바삭,바삭하니 맛 있다고 하면서 먹는 사람들의 표정에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커피와함께 먹으면 더욱 일품이랍니다.

저도 "사 갈까?" 생각했는데 족히 30분은 기다려야 할것같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대전에서 성심당 빵집은 빵집의 대명사가 된지 오래되였지요.

1956년 대전의 허름한 빵집에서 시작했다는 성심당. 지금은 연매출 100억을 올리고 있답니다.이젠 대전의 빵집이 아닌 전국구 빵집이지요.

본점은 대전 은행동에 있지요.

서울의 유명제과 업체들이 대전에 많이 진출하기도 했지만 그 유명세를 이겨내지는 못했답니다. 55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특히 2011년5월 국내 제과업체 최초로 미슐랭 가이드에 등재되면서 명성은 더욱 유명해졌답니다.

옛날 서울엔 태극당, 부산엔 비엔씨.대구엔 밀밭베이커리,대전엔 성심당,군산엔 이성당-- 빵집이라는 말이 돌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종업원 말에 의하면 튀김소보로빵(1,500원)은 하루에10,000개, 부추빵(1,800원)은 3,000여개가 팔린다고 합니다."대전부르스 떡"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성심당 빵집에 새겨진 문구가 재미있습니다, "빵과 함께한 55년,성심당은 대전의 문화입니다, 문화란 "가치를 담은 그릇" 이라 하듯이 대전시민들과 그러한 성심당이 되고 싶답니다"

브랜드의 가치와 중요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끼게 하는 모습이였습니다.

브랜드 가치는 돈으로 환산하기 참 어렵습니다,세상의 모든 명품들이 다 그러하지요. 국가 브랜드 이미지, 대한민국은 세계시장에서 어느 정도나 될까요?

우리 모두가 만들어야 합니다.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조국의 이미지를 심어주기위해서~~. 오늘도 대전역 2층 광장엔 성심당빵을 사기위한 줄이 계속되고 있을 겁니다

.x 월 x일.

며칠전 대리운전을 이용해 귀가했습니다. 귀가하면서 대리운전 하시는 분과 나눈 이야기를 몇자 적어봅니다.

제가 사는곳은 대전의 외곽 전민동입니다.언젠가부터 대리운전을 콜 하면 응답되는 시간이 점점 길어져 요즈음은 미리 콜을 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왜 지연되시냐"고 엿쭈어 보았더니 전에는 전민동을 들어가면 바로 바로 손님을 만나 나올 수가 있어 대리기사님들이 선호하는 장소였는데---,요즈음은 전민동 뒷골목 유흥가가  테크노밸리 관평동쪽으로 이동되여 기피하는 곳이랍니다.

모셔다 드리고 나올때 다시 손님 모시기가 어려워 찍었다가도 그의 말 표현대로라면  "뱉어" 버린답니다,물론 찍었다 포기하면 기사가 500원의 수수료를 부담하지만  그게 손실이 적다는 얘기였습니다.

유흥가도 자연스럽게 세태따라 이동하고 있나봅니다.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신흥 신 시가지로 자연스럽게 변화한다고 합니다.

사람따라 물 흐르듯 변화되겠지요. 대전에도 둔산 신 시가지가 생기기전에는 선화동,은행동이 유흥 1번지였는데 시청,법원등 관공서 이동과 함께 둔산법원 근교였다가 요즈음은 다시 KBS 대전방송국앞쪽으로변화되였답니다.

원도심은 불이 꺼져가고 기존 유흥가는 쇠퇴하고~~~, 다시 새로운 장소로 유흥가는 사람따라 이동되고 그 원인중의 하나는 이제 바뀌는 접대문화에도 있는것 같습니다.

부어라, 마셔라, 1,2차는 기본이고 3차까지 연결되던 음주문화가 이제 집단주의 문화퇴조와 웰빙문화 확산도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집단주의와 조직문화속에 살아온 기성세대가 이제 나이들고, 개인주의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의 문화가 유흥문화를 바꾸고 있는지도 모름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불황이겠지요.

수입은 적고 물가는 오르니 외식비용을 줄일 수 밖에 없지요.이제 대부분 모임도 고기굽고 소주 몇잔마시며  인생얘기를 나누다 소면이나 된장 한 그릇으로 식사를 대신하고 헤어지는게 대부분입니다. 2차로 그러니 모든 식당들이 한결같이 죽지못해 문열고 있다고 한탄이 대단합니다.

신문기사에 의하면 가정용 맥주 출고량이 업소용을 앞질렀다고도 하고 심야에 택시손님이 급감했다고 하는 기사님의 소리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대리손님도 밤 12시이후엔 거의 없다고 하더라구요.

불황의 측면엔 그런면도 있긴 할겁니다.

2월엔 구정도 있었고, 졸업식,각급학교의 신입생 등록금 납부등~~ 뭉치돈 쓸일이 훨씬 많았으니 외식업이 주춤했을지도 모름니다.

이제 3월입니다.

봄날의 화사하고 따뜻한 햇살처럼 우리 모든이들에게 삶의 즐거움과 희망이 새록~새록~ 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설령 삶이 나를 속이더라도 늘 행복하셔야 합니다, 하하~호호~웃으시며---.

 

 

 

최한용  webmaster@ig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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