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의 풍경 - 금산신문

삼복더위가 대지를 달군다.
한낮 내려 쪼이는 태양빛에 초목들도 잎새를 축 늘어 뜨렸다.

구름 한점 없는 하늘, 바람도 자취를 감추었다. 아침부터 울어대던 매미도 더위에 지친 듯 한낮엔 조용하다. 풀 밭 위를 나폴나폴 날던 고추잠자리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더위는 밤에도 식을 줄을 모른다.
열대야가 계속된다. 더위에 지친 사람들이 밤잠을 설치자 모두들 집 밖으로 나선다.
자리하나 들고 텐트치고 밖에서 잠을 청해 보지만 만만치가 않다. 사람들은 계곡으로, 바닷가로, 산으로 향한다.

낮 동안 달구어진 아파트 벽면과 옥상은 밤새 뜨거운 구들장 역할을 한다. 에어컨을 가동하려니 전기세가 부담되고 또 한번 익숙해지면 온 여름 내내 에어컨을 가동해야 한다.

사람은 참으로 이상한 습성을 가지고 있어서 한번 몸에 익숙해지면 좀처럼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가 어려운 몸 구조를 가지고 있나 보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분양 당시부터 에어컨이 기본으로 설치 되어 있었다. EXPO ‘93 행사 관계로 입주 전 선수촌 아파트처럼 행사요원들의 숙소로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입주 후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았다. 그저 그럭저럭 10년이 넘는 기간을 선풍기로 지내왔다.

습관이 들다보니 그런대로 지낼만 했다.
아이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그러다 보니 에어컨 점검은 물론 냉매를 보충 한 적도 없고 거실 벽면에 달린 에어컨은 그야말로 인테리어의 소품으로만 남겨져 버렸다.

지난 토요일. 열대야 현상으로 잠을 설쳤다.
창문도 활짝 열고 일부 선풍기를 가동 했지만 별 효용이 없었다.

날이 밝자 아들과 함께 목욕탕으로 달려간다. 시원하게 씻고 수면실에서 잠을 청해 보기 위함이다. 이른 새벽이지만 차 속에서도 에어컨을 가동해야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잠을 설쳤을 때 찜질방을 찾는 모양이다.
남여 구분이 없고 아이들까지 같이 갈수 있기 때문인가 보다.

또 PC방도 있고 영화관도 있고 식사도 가능하고 노래방도 있고 꼭 뜨거운 룸만이 아닌 얼음방도 있고 시원한 산소 룸도 있기 때문인가 보다.
잠 잘 수 있는 수면실은 물론 토굴방도 만들어 놓은 곳도 있으니까.

나는 목욕탕은 자주 가지만 찜질방은 별로 즐기지 않는다. 하지만 며칠전 대전 둔산에 있는 「D」찜질방에 가보고 깜짝 놀랐다. 우선 규모에 놀라고 시설에 놀라고 인테리어에 놀라고 싼 입장료에 놀랐다.

7층 규모의 한 건물 전체가 사우나, 수영장, 찜질방, 헬스클럽으로 구성되어 있고 열쇠 하나로 모든 매장에서 체크 가능했다. 식사, 영화관, 음료수, P/C방, 황토방, 직화 불가마등 각종 시설에 고급스런 인테리어, 옥돌 바닥재 등 최첨단 시설과 설비로 갖추어져 있었다.

락카룸에서 옷을 갈아 입고 원하는 곳으로 엘리베이터를 이용 움직인다.
남여 별도의 사우나에서 목욕을 마치고 지급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공용 찜질방으로 모인다.
남여가 만나고 가족이 모인다.

이곳 저곳 구경을 다닌다. 이방도 들어가 보고 저 방도 들어가 보고 전체를 구경 하는데도 시간이 꽤 흘렀다. 토굴방 수면실을 재미있게 만들어 놓았다. 한사람 누울 수 있는 캡슐 모양의 수면실.

여자 전용 룸도 따로 있지만 남여 공용도 있다.
남을 의식하지 않는 요즈음 젊은 연인들의 애정 행각도 가끔 보인다.

이 넓은 건물을 모두 뜨겁게 만들고 시원하게 만들려면 에너지 소비는 얼마나 클까?
찜질방 이용료 5,000원으로 가능한 얘기일까? 투자비에 대한 금융비용은 월 얼마나 될까? 하는 괜한 걱정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대형화 추세로 변하다 보니 주변의 작은 목욕탕과 헬스클럽, 찜질방은 도산하기 마련이다. 새로움을 찾아 끝없이 이동하는 소비자들의 심리 때문이다.

더 크게, 더 넓게, 더 새롭게, 더 안락하게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소비 심리를 어쩔 수야 없겠지만 너무 호화스러운 것은 아닌지, 너무 쾌락을 추구하는 고급스러움은 아닌지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업주의 얘기를 들어보니 그럴 수밖에 없음을 나도 동감할 수 있었다.
지금은 시설과 규모 싸움이라 했다. 모든 것이 최고여야 한단다. 어설픈 규모와 투자로는 승부를 걸 수 없단다.

다른 사람이 마음을 먹을 수 없을 정도의 규모로 시작해야 한단다. 새로 시작하고 나서 그 보다 좋은 시설로 새로운 건물이 등장하면 곧바로 문을 닫아야 한단다.

사람들이 물결처럼 이동해 버린단다. 새로운 것과 최고의 시설을 찾아 확보된 고객도 이동해 버리기 때문이란다.

우리는 그와 같은 예를 여러 군데서 볼 수 있었다. 사우나가 그렇고 수영장, 또 골프 연습장이 그렇다. 골동품처럼 옛것이 좋은 것이란 그런 부류의 시설에선 존재할 수 없나 보다.

음식점은 좀 색다르다고 볼 수 있다.
우선 맛이 있어야 하고 나름대로의 정이 있어야 한다. 건물만 아름답다고 장사 되는 것은 아니니까.

시설도 중요하지만 맛과 서비스, 그리고 느끼는 정이 더 중요한 것이 음식점일 듯싶다.
그러기에 소문난 맛집은 위치에 별 관계치 않는다. 좀 멀어도 사람들이 찾아가게 되여 있다.

한여름, 삼복더위
이렇게 더운 날에는 눈 내리는 겨울날이 그리워진다.
겨울이면 또 한 여름날 더위가 그리워지고 사람들의 마음이란 너무 간사한 것 일까?
좀 느긋하게 참지 못하고 머릿속에서는 늘 탈피하고 싶은 현실만이 꿈꾸어 진다.

계절은 시간 따라,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하고 찾아온다. 덥다고 겨울을 빨리 당겨올 수도 없고 춥다고 겨울을 건너 뛸 수도 없다.

세월의 흐름에 태워두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하루 24시간이란 시간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쓸 수 있는 시간이 되듯이 계절도 똑같이 찾아온다.

시간의 분배는 공평 하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쓰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생활은 확연히 달라진다.

열심히 시간을 쪼개어 자기 계발에 투자하는 사람과 그저 세월만 보내는 사람과의 차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벌어지기 마련이다.

목욕탕으로 향하는 연구단지내 도로변.
구청에서 조성한 길섶 꽃밭엔 목 백일홍나무 연분홍 꽃이 바람이 살랑인다.

그리고 그 아래 산나리 꽃도 보이고 원추천인국은 도로변에 지천으로 피었다.
그리고 주말 농장인 듯 팻말이 여러 개 박혀진 작은 텃밭엔 흰색, 보라색 도라지꽃이 목을 길게 내밀고 활짝 피었다.

여름날의 풍경
삶의 주변에서 하나, 둘 사라져 가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부채, 참외밭 원두막, 모깃불 매운연기, 반딧불이, 우물가 두레박 등목 초가 지붕위 하얀 박꽃, 달빛 시린 달맞이꽃, 누나들이 깨물던 꽈리 소리.......등
이젠 삶의 주변에서 사라져 갔고 아련한 여름날의 서정과 풍경으로만 기억된다.

여름날은 겨울밤보다 짧다.
하지만 열대야 등으로 잠이 오지 않는 여름밤은 어느 겨울밤보다 길게 느껴질 수도 있다.

슬기롭게 더위를 이기며 살아 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최상의 피서법

한여름, 뜨거운 탕안에서 땀을 쭉 흘리고 냉탕에 풍덩 빠지는 순간 아닐까.
그리고 나서 시원한 목욕탕 수면실에서 잠을 청하는 것, 아마도 그것보다 시원함은 없으리라.

금산신문 webmaster@ig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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