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이 위험하다? (XIV)

♣ 내가 만약 사기꾼이라면

지피지기(知彼知己)라야 백전불패(百戰不敗)라고 했다.

생각 멀쩡한 사람이 금산 시장 망가뜨릴 일을 저지르지는 않을 것이고 사기꾼이라고 눈이 세 개 달리고 손가락이 스무 개일 리는 없다.

사기꾼은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할지 예측해 보는 것도 지피지기를 위한 중요한 과정일 것이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라도 하는 족속이 사기꾼이다.

사기꾼 입장에서 보면 가짜 삼이 돈이 되고 금산에서 만들어야 돈이 된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 것이다.

사기꾼의 입장이 되어 할 수 있는 생각을 상상해 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이 역지사지라고 한다.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말씀하신 수많은 훌륭한 조상님들에게는 정말 죄송한 일이지만 내가 불법으로 돈 벌어 먹는 인간이라고 가정해 보자.

‘못된 인간 <나>는 돈이나 왕창 벌자고 이 짓을 시작했다.

나도 처음부터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살다 보니 돈도 필요해지고 하던 일이 잘 안 돼서 주변 사람들의 많은 압력을 받고 있다.

나는 돈이 더 필요하다. 그렇지만 정상적인 방법으로 돈 벌기에는 너무나 힘들다.

그러니 불법(나는 편법이라고 생각한다)이라도 저질러서 돈을 벌어야 하겠다.

기왕 얼굴에 철판 깔고 인면수심(人面獸心)으로 시작한 일이다.

조금씩 벌어서 죽을 때까지 잔챙이 챙기면서 허드렛일이나 하며 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니 한탕 크게 해서 팔자 한 번 고쳐보기로 했다.

다른 인간들이 어떻게 되든, 나 때문에 어떤 놈들이 망하든 말든. 지역사회와 이 나라가 어떻게 되든 간에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양심에 털을 달았다.

이제 사기를 쳐야 한다.

기왕이면 큰 돈 벌리고 재범 저질러도 큰 죄 되지 않고 어수룩한 인간들 많으니 조금 싸게 판다고 하면 살 인간들 줄 서 있는 인삼이 좋겠다.

인삼은 원가가 많이 드는 건강식품인지라 원가 자체가 높다.

그러니 이렇게 높은 원가를 조금만 낮춰서 내놓으면 살 놈들은 줄을 서게 되어 있다.

인삼 대신 인삼 향을 넣어 냄새를 맞춘다.

사포닌 함량만 표시하면 되는데, 사포닌 가진 식물은 인삼 말고도 얼마든지 있다.

그렇지만 인삼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을 수는 없다. 나도 조금의 양심은 가진 사람이다.

대충 중국삼 조금 넣고 인삼 넣었다는 흉내는 내자.

요즘 경기가 좋지 않아 인삼제품 공장 차려놓고 공장 가동도 하지 못하는 영세하고 경영이 어려운 공장들 많으니 그 중 정말 어렵고 내 말에 속아 넘어올 집 하나 골라 제품 생산 맡기면 된다.

판매업자들도 싸게만 준다면 줄을 설 것이다.

판매업자 중에도 나와 마음이 맞는 인간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익만 많다면 온갖 감언이설로 할머니 할아버지들 꼬여서 얼르고 뺨 쳐 가면서 팔아먹을 사람들 많다.
나만 양심에 털 달린 것이 아니다.

어쩌다 단속에 걸려서 감옥 갈 때도 있다.

그렇지만 몇 달만 들어가 있으면 변호사가 빼내준다.

한 두달에 몇 억, 몇 십억 벌었는데 변호사 비용 몇 천 만원 아깝다고 안 쓰겠는가?

지난 번에는 군북면에서 만들다가 걸려 들어갔으니까 이번에는 진산면으로 가자. 금산 참 넓다.
대전보다 더 넓고 서울보다 조금 작다.

이런 동네에 고작 5만여명 산다.

조용히 작업하기 참 좋은 동네다.

요즘은 단속이 심해져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경찰도 수시로 출몰하고 금산군청 공무원들도 방문해서 꼬치꼬치 묻고 다닌다.

내가 만든 가짜 삼도 수시로 수거해서 검사한다고 한다. 더 은밀히 작업을 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그렇지만 나는 이 일을 그만 둘 생각이 없다. 걸려 봐야 몇 달 살고 나오면 된다.

내가 이런 시가를 칠 수 있는 토양은 얼마든지 마련되어 있다.

영업이 어려워 놀고 있는 생산 시설 있고, 싸게만 준다면 얼마든지 노인들 등치면서 팔아먹을 수 있는 동반자들도 쌔고 쌨다.

가짜를 만들 수 있는 원료야 더 말할 것도 없다.

물엿에 인삼 향만 넣어도 속는 사람은 다 속는다. 몇 억 원 벌어서 한탕 하고 몇 달 쉬면서 재충전하면 된다.

요즘 직장인들 정년을 60세로 늘린다고 시끄러운데, 나한테는 정년도 없다.

이런 좋은 직업을 포기하라니 말도 안 된다.

이러니 사기꾼들의 출몰을 우리 동네에서만 쉬쉬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 아산경찰서에서

이성한 경찰청장이 전국 시도경찰청 초도 순시에 나섰다고 한다.

얼마 전에 충남경찰청을 방문하신다고 하기에 조법형 금산경찰서장과 함께 수십 명이 모인 회합에 참석했다.

그 자리에 각 지역의 시민들이 참석한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이 약속한 4대 사회악을 척결하기 위해 시민들의 의견을 듣기 위함이라고 했다.

나도 이성한 청장에게 한 마디 했다.

아니 사실은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시간도 부족하고 주위 사람들 눈치도 보여 얘기를 다 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주제는 확실히 전달했다.

<박근혜대통령이 국민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방법 중 하나가 4대 사회악 척결이고 그 총 책임을 맡으신 청장님이 이곳까지 내려오신 것도 그 의지를 실천하기 위한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이청장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는 금산에서 왔습니다.

청장님이 우리 지역으로 내려오신다는 말을 듣고 청이 있어 이 자리에 참석했습니다.

금산이 인삼으로 유명한 고장이라는 것은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겁니다.(이 장면에서 이청장은 다시 고개를 끄덕거리며 동의를 표했다)

그런데 1년에 한 건 정도씩 중국삼, 가짜삼 소동이 일어나면서 지역경제가 주저앉고는 합니다.

올해에는 두 건이 한꺼번에 터져 지역 경제가 말이 아닙니다.

인삼업을 하는 분들 중에는 경찰에서 단속하고 매스컴에서 떠드니까 지역경제가 어려워진다고 불만을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저는 그 분들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비 오면 행복해하고 가물면 하늘만 바라보는 농군들이 있었지요.

홍수지면 하늘을 원망하면서 배 곯고 살았습니다.

금산인삼업계는 언제 가짜삼, 중국삼 사건이 터질까 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해마다 한 건씩 터지지요. 하늘만 바라보는 천수답 농민과 뭐가 다릅니까? 언제까지 천수답 농민으로 살 겁니까?

가물면 양수기로 지하수 물이라도 퍼 올려야 하듯이, 홍수 지면 고랑을 터서 농작물 피해를 방지하듯이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할 것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가짜삼, 중국삼 사건이 다시는 이 땅에서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우리는 지금 진흙에 몸을 더럽혔습니다.

기왕 더럽힌 김에 이참에 아예 그 더러운 진흙밭을 없애 버립시다.

금산에서 사기 치면 바로 걸린다, 금산에서는 꼼짝할 수도 없다는 말들이 사기꾼들의 입에서 나오게 만듭시다.’

이런 의미로 저는 조법형 금산경찰서장에게 사기꾼 뿌리를 뽑아달라고 부탁드렸고, 조서장은 그리 하겠노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수사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금산에서는 4대 사회악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불량, 부정식품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단순한 먹거리 위생 차원이 아니라 지역경제의 사활이 달린 중요한 문제입니다.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청장님의 관심과 격려, 그리고 인원 보충입니다.>

이성한 청장은 내 말을 다 듣고 나서 나는 차마 하지 못했던 얘기를 하셨다.

‘단속을 하고 나서 매스컴에 보도되면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는 경우가 많지요. 극히 일부의 사기꾼들 때문에 수많은 정상적으로 농사짓고 상행위 하는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를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관심 갖고 모든 것이 잘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내 아까운 시간 반나절 내서 아산까지 찾아간 보람이 있었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김호택 webmaster@ig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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