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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릴적 여름밤은…/ASA공장장 최한용

여름은 곡식들이 가을의 결실을 위해 왕성하게 영양분을 흡수하고 성장하는 시기다.
폭염 때문에 우리 사람들은 생활에 어려움과 불편함을 느낄지 모르나 식물들에겐 더욱 알차게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된다.

따라서 농업이 주된 생활근거였던 내 어린 시절 여름날은 농사일 돕기에 바쁜 나날을 보냈다.
대개 도심의 아이들은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들로 산으로 또는 강가로 놀러 다니기 바빴지만 시골이 고향인 우리들은 시기를 놓칠 수 없는 농사일 때문에 고사리 손이라도 부모님을 도와 드려야 했고 그 결과 온몸은 햇볕에 그을려 깜둥이처럼 되어갔다.

모든 것을 사람에 의존하던 당시의 농사일. 지금도 고향에선 담배 농사를 많이 하고 있지만 그 당시 특히 담배 농사는 모든 일을 사람에 의존하였다. 지금은 건조 시설도 자동으로 콘트롤 되는 온풍기를 이용하고 있지만 그 당시엔 높게 지어진 담배 전용 건조실에 석탄을 이용하여 건조했다. 담배 건조는 24시간 불을 꺼뜨리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아버님은 밤에도 건조실 옆에 주무시며 중간중간 일어나셔서 석탄을 넣으며 불 관리 및 실내온도 관리를 하셨다. 따라서 여름 한철 담배건조를 하시면 잠도 못 주무시고 땀도 많이 흘리셔서 몸이 수척해 지신 게 사실이다.

지금은 많이 간편해졌지만 그 당시 담배 농사는 그야말로 품삯 성격이 강한 농사였다. 겨울내 포장용 꺼치 준비부터 시작해서 일년 내내 담배 농사 관련 일을 해야했다.
하지만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일거리가 별로 없던 시절 담배 농사는 어려운 농촌 살림에 큰 보탬을 준 것은 사실이다. 아이들 학교 등록금을 내고 또 일부는 전답을 늘려 가는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작은 노동력이나마 하루 하루 집안일을 도우며 틈틈이 집 앞 개울가에서 물장구치며 친구들과 놀던 기억이 새롭다.
때론 작은 그물로 미꾸라지, 붕어 등 물고기도 잡고 개 헤엄 치며 더운 여름 방학을 보냈다. 

더운 여름 하루가 가고 어둑어둑해질 저녁 무렵이면 집 마당에 멍석을 깔고 저녁식사 준비를 한다.
물어 대는 모기를 쫓기 위해 매캐한 모깃불을 피우고 논밭에서 돌아오신 아버님과 형님이 우물가 옆에서 등목하시는데 도와 드린다. 식사가 끝나면 주변은 적막에 쌓이고 밤하늘엔 하얗게 은하수가 펼쳐진다.

어두운 들녘엔 반딧불이 여기 저기 날고 우리는 반딧불이 잡아 하얀 병에 담아 어두운 밤에 정말 글씨가 보이는지 책을 펴놓고 실험을 했다.

옛 선비들이 어려운 살림으로 등불을 켤수가없어 「형설지공(螢雪之功)」이라고 하여 여름엔 반딧불이 겨울엔 하얀 눈빛으로 책을 보며 공부했다는 말을 확인해보고 싶어서였다. 

그 당시 시골엔 반딧불이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모습을 볼 수가 없다.
농약의 영향이 가장 크리라고 생각된다. 연못과 논에는 큼직한 우렁이도 많았지만 지금은 찾아 볼 수가 없다. 금산에서 가까운 무주에서 “자연주의가 좋다. 반딧불 이와 함께"라는 주제 아래 제8회 무주 반딧불이 축제가 8月20日부터 8月29日까지 개최된다고 한다. 축제 기간중 어두운 여름밤 하늘을 수놓은 반딧불이를 직접 보는 체험프로그램인 반딧불 신바람 탐사도 마련되였다고 하니 가볼까 한다.

아니면 제원면 마달피 강변에 빈딧불이가 서식한다고 하니 이번 여름에 한번 가볼 예정이다.
여름밤은 깊어 갔다. 어르신들은 낮의 고단한 농사일 영향 때문일까 해가 저물고 저녁상 물리면 마루에서 그저 잠에 드셨다. 새벽이면 또 일어나셔서 논과 밭으로 나가셔야 했다. 더운 낮시간을 피해 밭도 매시고 논 김매기 및 농약도 살포하셔야 하기 때문에 일찍 주무실수 밖에 없으셨다.

선풍기도 제대로 없던 시절 윙윙 대는 모기 때문에 마루에 모기장 치고 주무신다. 아이들은 그래도 시원한 여름밤이 좋았다.
더위를 식히려고 개울가에 가서 또 헤엄치고 오는 길에 참외 서리도 하여 어둠 속에서 낄낄대며 먹던 맛이란 지금도 뇌리에 남았다.

밤에 몰래 살금 살금 밭에 들어가 딴 참외라 제대로 익었는지 확인 할 길이 없었다.
어쩌다 재수 있으면 잘 익은 참외를 먹을 수도 있었지만 대부분 설익은 참외를 먹곤 했다.
여름밤의 하늘은 더욱 높게 보인다.
주변 산은 짙은 녹음으로 더욱 어둡게 보이고 그 영향으로 밤하늘의 별빛은 찬란하기만 했다.
풀숲엔 벌써 이슬이 내렸다.

깜깜한 밤, 어두운 산 속에선 이름 모를 동물들의 울음소리가 간혹 들리고 어린 가슴에 두려움이 일자 머리카락은 하늘 향해 세워진다.

그 시절 풍경을 그리며 시(詩) 한 수 적어본다.

「여름밤은 짧다.
더위와 피곤에 지친 몸이라
잠 못 이루고 뒤척인다.
어서 잠들어야 몸이 가벼워질텐데
짧기 만한 여름밤은 왜 식을 줄 모르는가.
한줄기 소나기라도 뿌려주면
온 대지가 식고 시원해질텐데
바람 한 점 없는 이 밤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새벽은 온다.
동녘 하늘엔 붉게 여명이 물들고
주변은 어둠에서 다시 밝음으로 변해간다.
자 다시 시작해야 할 하루
논과 밭의 곡식들은
벌써 잠에서 깨어
자신들을 어루만져 줄
농부들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싶어한다.」

지금 시골의 여름밤은 옛날 같지 않다. 길은 포장되고 지게 지고 다니던 곳엔 경운기기가 드나든다. 모깃불 대신 전자 모기향이 피워지고 우물가 등목하던 곳은 집안 욕실로 들어왔다. 별빛 빛나던 하늘은 가로등 불로 희미해져 별 찾기가 어렵다.

부채가 유일한 수단이던 시골집에 이제 에어컨이 가동 중이다.
어쩌다 우마차 얻어 타고 덜컹대던 시골길을 가도 그렇게 즐겁고 재미 있었는데 이제 우마차는 농업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을 정도의 골동품이 되여 버렸고 작은 화물용 트럭이 집집마다 그 일을 대신하고 있다.

자동차 문화 보급으로 도로 포장도 대부분 완료되고 읍내와 시골을 오가는 시간이 단축 되여 장날의 의미가 많이 퇴색 되였다.

열흘에 두 번 서던 장날, 이젠 꼭 지정된 날들보다 언제나 쉽게 오갈 수 있어 늘 장날이 되었다. 시원한 아이스케키나 산속 찬 샘물을 대신해 아이스 커피 또는 시원한 과일음료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지금 내 고향 충주 댐 근처 호반엔 전원 생활을 애호하는 동호인들이 예쁘게 그림 같은 집을 지어 놓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화가, 시인, 조각가등 전문직 예술가들이 많다.
우리 어릴 적 기준으로 보면 그곳은 첩첩 산중이었다.

지금은 충주호반을 끼고 산자락을 따라 잘 포장된 도로 덕분에 주거의 명당이 되었다. 이렇게 산천은 유구하지 않고 40년만에 천지개벽한 것처럼 바뀌어 버렸다.

그래도 녹음이 있고 숲이 있고 개울이 있어 시골 바람은 아직 청량하다
회색 도심의 열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삶은 역시 자연을 떠나 얘기 할 수 없는진실이 되고 있다.
어찌 사람이 자연을 버리고 살아 갈수 있으랴.

금산신문  webmaster@ig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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