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도, 인생도, 마무리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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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신문
승인 2017.12.21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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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시절, 최재형군은 우리 반 부반장이었다. 당시에는 학생회가 아닌 학도호국단이 있던 시절이라 부반장은 ‘향도’로 불렸다. 잠깐 짝꿍이었던 적도 있다. 그리고는 2학년되면서 문과와 이과로 나뉜 후로 별로 만난 적이 없다.

김호택 원장
연세소아과

40여년이 지난 후에 대전에서 최재형군을 다시 만났다. 대전지방법원장으로 부임하면서 동문들 모임에 참석했는데, 최법원장은 나를 보자마자 ‘너! 1학년 때 16번이었지?’ 라고 했다.만나자마자 기가 막혔다. 1반 동기가 그 자리에 네 명이나 참석했는데, 반장이었던 황주호 에너지기술연구원장과 신명곤 우송대 부총장의 학번도 기억해냈다. 우리는 최 법원장이 컴퓨터가 아니라면 천재가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나에게는 더 놀랄 얘기를 했다. 여름방학에 반장, 부반장과 몇 명의 친구들이 설악산 캠핑을 갔는데, 내가 토왕성폭포를 올라가다가 중간쯤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겁에 질려 30분 가량을 헤매다가 간신히 다시 내려온 적이 있다. 나는 까맣게 잊었던 그 얘기를 꺼내면서 ‘당시에 찍어 놓은 사진이 자기에게 있으니 언제 다시 만나면 주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옛 친구지만 40여년 만에 만나 서먹서먹했던 감정이 단숨에 풀어졌고, 우리는 고교 1년생이 되어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다.

최법원장은 이런 말도 했다.
“대전에 기관장으로 내려간다고 하니 가까운 후배가 ‘제가 형님에게 두 가지 당부를 드리겠습니다. 첫째, 운전기사가 차 문을 열어줄 때까지 절대로 스스로 문 열고 나오지 마시고, 둘째, 엘리베이터 단추를 먼저 누르지 마세요. 기관장들은 모두 그렇게 합니다.’ 라는 충고를 했는데, 그게 그렇게 지키기 어려운 일일 줄 몰랐다. 정말 힘들더라.”

나는 고위공직자로서 이런 인간미가 넘치는 얘기를 할 수 있는 친구가 너무 좋았다. 그리고 여기저기에서 나는 모르고 있던 여러 미담들을 다른 친구들이 늘어놓는 얘기를 들으면서 존경하기로 했다. 요즘 매스컴에 나오는 양자를 키운 얘기, 친구를 업어서 통학시킨 얘기 등의 미담이 그 자리에서 얘기되었다.

몇 차례 만남 끝에 최법원장은 임기가 끝나 대전을 떠났고, 가끔 생각나면 카톡으로 안부만 전했을 뿐이다.

며칠 전에 최재형 판사가 감사원장 후보로 지명되었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너무 기뻤다.
청문회를 거쳐야 하겠지만 반듯한 삶은 살아온 사람이기에 임명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되는 것보다 잘 마치는 것이다. 임기를 마칠 때 박수 받고 축복받으며 내려오는 감사원장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 과정에 가장 필요한 요소는 소위 친척, 친구라는 사람들이 그 옆에 얼쩡거리지 않는 것이다. 묵묵히, 그리고 소신껏 자신의 책무를 다 해주기를 멀리서 기도해 주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다.
고건 전 총리는 회고록에서 30대 초반에 전남도지사로 임명되어 광주로 내려가자 아버지가 ‘다른 사람 돈 받지 말라’면서 친척들의 십시일반을 모아 매달 용돈을 보내 주시더라고 했다.
한사람의 고위 공직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3대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옛 말이 있다.

이 노력이 깨지면 공직자가 되는 것은 가능할지 몰라도 잘 마치기는 지난(至難)한 일이 되어버린다.

나는 내가 사는 동네의 박동철 금산군수가 처음 당선되던 10여년 전에 ‘박군수의 당선을 축하한다. 그동안 박군수의 당선을 위해 뛰었던 모든 사람들에게도 축하드린다. 그렇지만 이제부터 박군수 당선의 공신들은 모두 빠져라. 군수가 소신껏 군정을 펼칠 수 있도록 멀리 떨어져 주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다.’라는 요지의 금산신문 사설을 쓴 적이 있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박군수는 지난 10여년 간 내 충고와 반대의 길을 걸었다. 그 결과 동네는 힘들어지고, 박군수 자신도 거의 모든 주민들에게서 외면받는 외로운 신세가 되어 버렸다. 주민들 많은 곳에 함부로 나오지도 못하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채 임기 마칠 때만 기다리고 있다.

공직은 잘 마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네 인생도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