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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불편함에 예민해지기젠더 감수성 훈련을 위한 교사들의 토론이 열리다
다른사람의 말을 들어주기

‘사회현장의 이슈’와 ‘교육현장의 모습’은 서로 거울처럼 반영된다. 스마트 폰은 이런 상호관계를 거의 실시간 수준으로 가능하게 해주는 핵심 매개체다. 미투 운동 전후 ‘페미니즘’은 빠른 속도로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이슈가 되었고, 교육현장에서도 뜨겁게 다루어지고 있다. 간디학교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이 주제에 관한 학내의 목소리들을 듣노라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주장들의 축소판을 보는 듯 하다. 학내의 이 목소리들이 자라나, 또 우리 사회 여론의 한줄기가 될 것이다. 이렇게 우리 사회와 교육 현장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학생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들은 얼핏 단순해보이긴 하나, 그 밑에는 우리 사회의 서로 다른 신념체계들이 켜켜이 쌓여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학생들과 상호작용하는 교사들의 내면도 그 점에 있어서는 마찬가지다. 서로 다른 신념체계의 영향력아래서 습관화된 마음은, 자신의 색안경을 넘어, 사물을 바라보면서도, 그 대상이 물들어져 보인다고 느끼기 결코 쉽지 않다. 때문에, 원활한 상호작용을 위해서는 자기 성찰과 상호 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서로의 주장을 기록하기

그러나 우리사회에 이렇게나 서로 다른 신념체계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랫동안 이에 대해 서로 진정성 있게 대화하지 못했다, 더 나아가 아예 한쪽의 주장이 완전히 무시되는 상황이 오랜기간 묵인되어 왔다. 때문에 이 주제의 대화는 마치 ‘반독재민주화투쟁’ 같은 강하고 날선 목소리로 분출되어 시작되기 너무나 쉽다. 따라서 대화는 서로를 질타하는 강한 주장으로 이끌어지기 쉽상이다. 또 그만큼 양극단의 주장들은 각자 자기만의 정당성을 증명하려는 옳고 그름의 논리로 무장하고 있다. 오랫동안 우리가 이 주제를 다룰 때 ‘모두에게 안전함이 보장된’ 방식으로 대화하지 못했다는 반증일 것이다. 아마도 우리 사회가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기전까지는 당분간 이렇게 격렬한 방식의 토론이 계속되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대화를 하기 힘들어 한다. 대화가 서로를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게 만들만큼) 아프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격당할까봐 혹은 이야기해보았자 같은 반응이니까 라고 생각하며) 상처와 분노를 끌어안고 자신만의 동굴로 들어가버린다. 그러나 체념속에 키워진 원망과 분노는 결국엔 다시 공동체속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서로의 주장들속으로 한겹 더 깊이 들어가보면, 서로에게 공감과 소통을 바라는 호소가 깊이 깔려있는 경우가 많다.

경청하고 공감하기

문제 해결의 본질은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자기 주장이 옳다는 것을 입증해보이려는  태도에서 벗어나 ‘나와 다른’ 서로의 불편함을 경청하는 것이다. 슬픈일이지만 우리사회는 ‘듣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우리 사회와 교육은 이 부분에서 크게 부족하지 않나 싶다. ‘눈에 보이는’ 성과와 과정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맺기와 자기 성찰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교사들의 대화

금산간디학교에서는 매주 한시간씩 ‘페미니즘’을 주제로 교사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다. 교재를 선정하여 함께 읽고 자신의 생각을 나누기도 하고, 신문기사나 동영상을 함께 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서로의 지식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감수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서로의 생각 아래에 깔린 믿음과 가정에 대해 이야기 한다. 발딛고 서 있던 사고의 기반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고 이해하려고 시도한다. 교사들의 ‘아무말 대잔치’가 매우 신선하고 재미있다.

 ‘젠더 감수성’은 대화와 성찰을 통해 길러지는 게 아닐까. 있는 그대로 꺼내고 나누며 서로의 고민을 함께 들어보려는 대화의 태도가 소중하다. 우리 모두 이렇게 대화를 시도해보면 좋겠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안전하다’고 느껴야 한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해도 괜찮다는 편안함이 문제해결을 자연스레 이끈다.

 우리 모두에게 ‘페미니즘’은 서툴고 어렵고 불편한 주제다. 그러나 서로의 불편함에 대해 예민해지려는 자세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서로의 불편함에 예민해지기’ 그것은 우리 사회와 교육이 만들어가야할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작이자 결과일지도 모른다.

사진/글 금산신문 전문위원 유준혁

금산신문  gsnews47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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