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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만날 때
공감의 대화.

오늘도 나의 삶은 전화 통화들 사이에 있다. 통화는 다시 여러개의 카톡과 문자 메시지 그리고 이메일로 나뉘어 연결된다. 서로 다른 여러 사연들, 그리고 크고 작은 일들이 이어진다. 이 연결점들의 사이에 우리들의 삶도 펼쳐지는 중이다. 우리는 서로 어떤 끈으로 연결되어 있고 또 어떻게 연결 되어 갈까? 새삼 궁금해진다. ‘연결’이 우리들의 삶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살다보면 벽을 만날 때가 있다. 오해, 불신, 비난 같은 어려움과 마주할 때가 있다. 그럴때면 예외없이 내면의 두려움과 불안의 목소리를 만나게 된다. 갈피를 잡기 힘든 혼란을 마주하며, 우리는 흔들리기 쉽다. 권투선수 마이크 타이슨의 말은 이럴 때 공감이 간다.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한 대 처맞기 전까지는’ ‘벽을 만날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또 한번의 전화통화를 마치고, 생각에 잠겨본다. 동료들에게 카톡을 보내며, 조언을 구한다. 기꺼이 손잡아 주는 사람들과의 강한 유대감을 느낄 수 있다면, 상황을 조금은 다르게 볼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어떻게 해야할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연결의 지점 찾기.

‘문제 상황’이라고 여러 사람이 주목하기 시작하면, 흔히 일어나는 풍경은 하나 둘씩 무기를 꺼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상황을 타개할 방안들을 찾는 것이다. ‘해결책’ 이나 ‘비전’이라는 이름의 거창한 논리가 전개되거나, 서로 방향이 조금씩 다른 ‘정당함’들이 논쟁을 벌이곤 한다. 중지가 잘 모여지면 좋은데, 자칫 옳고 그름의 논리들이 맞부딪혀 파열음을 내거나, 대결구도가 만들어지면 상황은 수렁에 빠지기 쉽다.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려 했던 서로의 진정성이 확인되기보다, 누가 더 센지를 확인하자는 식의 대화의 장이 펼쳐지면 그야말로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닫게 된다. 

벽 앞에서, 서로의 욕구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문제 해결에 기여할 사람’으로 서로를 받아들이기란 결코 쉽지 않다. 오히려 나와는 너무 다른 사람이거나 더 나아가 나를 괴롭히는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쉽상이다. 

협업하는 관계 구축하기.

문제를 풀어가면서 서로의 정성이 모이는 과정이 펼쳐질 수 있다면, 문제는 오히려 새로운 기회가 될수 있는 것 같다.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고, 협업의 힘을 자각하면서 더 강한 연결감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럴땐, 두드릴수록 강해지는 강철처럼, 문제가 어려운만큼 오히려 더 새로운 존재로 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날 수 있다. 

전화 통화를 마치고 또다른 사연의 약속장소로 나간다. 서로 악수를 주고 받는 손길이 따뜻하다. 안전하다는 느낌은 참 중요한 것 같다. 문제가 해결되는 과정의 시작이자 완성일 수 있다. 조금이라도 안전함을 느끼면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은 변화하기 마련이다. 안전함을 확인받으면서, 서로와 상황에 대한 이해의 지평도 따라서 커지기 시작한다. 

“그러고 난 다음에 어떻게 사느냐 그게 정말로 중요한 거야” 드라마 모래시계의 명대사였다. 벽을 만날 때, 우리가 고민해야 할 주제는 벽 자체가 아니라, 벽에 대응하는 우리들의 방식일 지도 모른다. 벽을 만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흡사 정화작용 같은게 아닐까. 쌓였던 감정을 풀어가고, 몰랐던 문제를 바라보며, 서로의 깊은 속내를 알게 되는 과정이 될수 있다. 서로의 벽이 녹아 들며, 새로운 서로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우리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과정으로 연결되길 바래본다. 그럴 때 벽은 새로운 길이 될수도 있을 것이다. 벽을 만난 모든 이들에게 건투를 빈다. 

/금산신문 전문위원 유준혁

금산신문  gsnews47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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