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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가능성
학교 일정을 조정중인 교사회의.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요리 경연대회 보다 레시피 공유회 같은 걸로 바꾸는 게 좋겠어요”
“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청소년 다큐멘터리도 괜찮을 듯 싶어요.”

아이들과 ZOOM으로 만나 서로의 프로젝트 기획을 돕는 중이다. 온라인으로 만났지만 시끌시끌하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만들어낸 새로운 상황. 우리들 모두 적응하느라 정신없다.

오프라인으로 만나던 활동을 온라인으로 열어보니 새롭다. 사전에 준비한 자료를 각자 자기 화면 앞에서 살펴보며, 서로 질문하고 생각을 나눈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자기 노트에 스케치하기도 한다. 화면만으로 서로를 보게 되니 표정과 어투가 중요하게 느껴진다. 서로의 생각이 잘 영글어가고 있는지를 묻고 답하는 과정이 재미있다. 온전히 촉진자로만 머무르는 느낌이다. 만나는 시간도 큰 부담없이 조정하고 만들 수 있다. 심지어 22시 수업도 생겼다. 이거 신세계네. 왜 진작 이런 생각을 못했지. 엉겁결에 시작한 온라인 수업이지만 신난다.

하지만 한편으론 뭔가 마음이 허하다. 노트북 화면을 로그아웃하고 나면, 교실 가운데 덩그러니 혼자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방금 전까지 상호작용의 흐름이 존재했는데, 화면이 꺼지면 각자의 삶으로 완전히 분리되어 버리는 것 같아 뭔가 서운하다. 기계를 거치지 않은 온기의 전달, 서로의 마음이 오고 간다는 느낌은 우리들의 삶에 꼭 필요한 게 아닐까.

일상의 소중함이 새삼 느껴지는 요즘이다. 언제쯤 돌아갈 수 있을까. 개학은 계속 연기되고, 아이들이 오지 않는데 봄꽃들은 조용히 피고 있다. 서로 눈빛을 맞추고, 하이파이브를 하며, 까르르 웃고 떠들던 열기가 그립다. 서로의 접근을 불안해하며, 서로의 존재를 두려워하는 상황에 도무지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경제 위기, 기후 위기 등 앞으로 이어질 위험을 우려하는 뉴스들에 마음이 더 어두워진다.

앞날을 예측할 수 없으니, 그저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묵묵히 동료들과 함께 종일 학교에 머물러 있다. 교실 내부 공사, 회의, 연수, 수업 준비 등을 함께 하며 새로운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모든 시련에는 나름의 선물이 숨겨져 있기 마련이니까. 어쩌면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들 모두 이 재난 상황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해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을 동료들과 조심스레 헤아려 보는 중이다.

온라인 수업중.

온라인 수업 준비를 하면서, 온라인 광장의 활용 가능성에 새롭게 눈뜨는 중이다. 얼마 전까지는 모두들 자기 현장에서 모여야만 온전한 활동이 가능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면대면 만남이 불가능해져버리자, 그보다 더 넓은 온라인 만남이 활성화되는 중이다. 온라인으로나마 광장에서 서로 만나고, 어울리지 않으면, 자기 세계에 갇히게 되어버린다. 서로의 생각을 디자인하게 돕는 상호작용만 잘 촉진할 수 있다면, 온라인 광장은 모두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되게 하는 광범위한 만남의 장으로 기능할 것이다.

미네르바 스쿨, MTA, 거꾸로 캠퍼스 등의 교육현장에도 새삼 눈길을 보내게 된다. 온라인으로만 100%, 혹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배움을 만들어내는 교육모델들이다. 이미 우리 안에 와 있던 미래들이 새삼 반갑고 소중하다. 오프라인에만 머물러 있던 현장은 온라인으로 연계하여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도록 생각을 모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도시와 시골 학교들이 서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엮인다면, 각자의 장점(도시의 네트워크와 시골의 자연환경)을 모두 살리는 훌륭한 교육 모델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지역에 있는 학교들이 하나로 엮인다면, 서로의 자원과 시설을 함께 공유하고, 부분적으로라도 공동의 교사진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교사들마다 장기를 살린 온라인 교실을 운영하거나, 교사, 학생, 부모들의 크고 작은 연대와 모임도 온라인으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학교 내부 정비중.

대구 경북 지역을 돕자는 교사와 이웃들의 온정도 반갑다. 어렵고 힘들 때 서로를 멀리하는 분위기가 흡사 좀비영화를 보는 것 같다. 마음을 내어 서로를 돌보자는 목소리가 당연하지만, 신선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확진자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에서, 카프카의 소설 변신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아마도 우리는 다함께 실시간으로 학습하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내면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간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혐오와 배제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광장에서 함께 만날 수 있게 되면, 서로 자가 격리된 시절에 품었던 변화의 씨앗을 하나씩 펼쳐 보이며 이야기 나누면 좋겠다. 이미 우리 안에 와있는 변화의 가능성을 함께 연결해가면 좋겠다. 그렇게 새로운 교육과 사회를 함께 만들어 가면 좋겠다.

/사진.글 금산신문 전문위원 유준혁

금산신문  gsnews47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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