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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돌봄의 관계
서로 질문하며 성찰을 도와주기(2019).

“세상 어디로 가든지 변하지 않는 자연농의 기본법칙은
땅을 갈지 않고, 풀이나 벌레를 적으로 여기지 않고, 비료는 쓸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토질과 기후, 작물의 성질에 따라 맞추어가면 됩니다.
이렇게 따르는 법을 잘 익히면 세상 어디에서든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겁니다.
자연농이란 자연, 그 안의 생명에 순응하며 따르는 길입니다. ”

강원도 홍천에서 자연농법을 실천하는 최성현 농부의 말씀이다. 때때로 동료들과 함께 읽으며 ‘사람 농사’에서 새겨들을 뜻이 있는지 이야기 나누곤 한다. 교육의 본질이 존재의 가능성을 싹틔우고, 자라나게 돕는데 있다면, 농사와 교육은 비슷한 점이 많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교육에서는 어떨까? 미래교육의 현장에서도, 아이들이 자신을 긍정하고, 행복한 삶을 만들어가도록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간디문화의 밤(2019).

코로나 시대에도, 모임은 필요하고, 만남은 생겨난다. 어떤 내용과 방식으로 모이고, 만남이 어떤 관계로 엮여가는가에 따라 각 배움터의 고유한 특성이 만들어진다. 구성원간의 상호작용이야말로, 해당 배움터의 과거가 쌓인 현재의 모습인 동시에, 미래의 청사진이 아닐까. 그러고보니, 일상을 꾸준히 관찰해보면 공부거리가 참 많이 생긴다.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한 친구의 열변에 귀 기울이는 중이다. 색깔을 보는 눈이 뛰어나고, 공간에 대한 감각도 남달랐다. 옷 만들기를 배우고 싶어하던 중, 어렵사리 훌륭한 선생님을 만났다. 열망하던 옷 만들기에 몰입하던 중에 돌연, 이 친구의 관심분야가 바뀌었다. ‘미세 섬유’ 문제에 주목하게 되었단다. 합성섬유가 만들어내는 환경 오염 문제를 바꾸고 싶어 한다. 어찌해야 할지 정말 자신이 없다. 거대한 시스템에 대한 좋은 대안도 딱히 찾기가 어렵다. 그러나 좋아하던 옷을 계속 아무 생각없이 소비할 자신은 더욱 없다. 나 하나라도 뭐 하나라도 해야 겠단다.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고, 공감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의 존재는 학습자의 가능성을 싹틔우는 최고의 환경이 아닐까? 학습자의 관심분야를 여유있게 관찰하고, 적절한 경청과 질문을 선물할 수 있는 환경은, 촉진자들에게도 최적의 활동 여건이다.
 

416추모제 묵념(2019).

성평등위원회는, 학교를 성평등한 시공간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친구들이 모인 곳이다. 성별고정관념, 외모평가, 혐오 표현 등, 의식적으로 꺼내지 않으면, 같이 바라보기 힘든, 하지만 그 때문에 고통과 차별이 만들어지는, ‘투명한 장막’이 우리 사회에는 존재한다. 서로의 의식을 들여다보고, 공부거리를 찾으며, 변화를 이끌어 내고픈 아이들이 도전을 시작하려 한다. 내친김에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사회와 함께 실천해보자는 아이디어도 샘솟는 중이다. 일상에서 발견되는 문제를 ‘골칫거리’로 인식하는 자동반응을 내려놓고, 새로운 기회로 환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진정한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자세다. 변화를 만들어가려고 ‘멘땅에 헤딩’하면서 배우는 과정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뿐더러, 새로운 학습의 연결고리가 되곤 한다.

한편에서는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대화가 이어지는 중이다. 각자 사연은 다르지만, 우리 사회가 권해온 분노,우울,불안을 꾸준히 습득해온 점은 비슷하다. 서로의 마음에 공감하는 분위기는 스스로 답을 찾아가도록 돕는다. 문제를 해결해 주려 하기 보다, 서로 이해하고 돌보려 노력한다. 우여곡절 끝에 각자의 아픔들이 글, 그림, 음악 등 다양한 표현 활동으로 이어지는 중이다. ‘해결’보다 ‘이해’하려는 노력이 더 중요함을 배우게 된다. 상대방이 가진 문제를 병리적인 증상으로 바라보고, 어떤 원인에서 일어나는지 분석하여, 해결하려 하는 것보다는, 스스로 변할 수 있도록 안전한 공간을 허용하는, 조심스러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인삼축제 청소년 선언문 낭독(2019).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서로를 이해하고 돌볼 수 있는 작은 배움터가 많아지면 좋겠다. 서로를 인위적으로 바꾸려 하지 않고, 경쟁상대로 여기지 않을 수 있는 규모의 공간 말이다. 존중과 환대의 문화를 일구고, 배우는 이와 가르치는 이의 자율적인 상호작용으로, 배움터를 운영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겠다. 유연한 선택이 가능한 작은 배움터가, 바이러스 사태는 물론이고, 앞으로의 다양한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훨씬 수월할 것이다.

온라인으로 열린, 금대협(금산 지역 대안학교 협의회) 회의 내용도 흥미롭다. 그동안 지역에서 열린 다양한 교육적 시도를 모아 축제로 만들어보고자 한단다. (물론 코로나의 기운이 꺾여야 가능하겠지만). 공연, 연극, 라이딩 ,평화 등 다양한 주제와 각종 토론회들이 눈에 띈다. 지역사회를 교육생태계로 일구어 가겠다는 포부가 멋지다. 작은 학교들이 각자의 실천을 호기심어린 시선으로 탐구하려는 태도가 아름답다. 그런 모습 자체가 서로에게 많은 응원을 보내는게 아닐까. 학교안에서도, 학교 밖에서도 서로를 이해하고 돌보려는 태도가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나면 좋겠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가야 할 미래교육의 모습이 아닐까. 당면한 문제를 서로간의 상호작용과, 고유한 개성에 근거하여 풀어가려는 노력이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 각자의 유능함보다는, 서로의 기여와 협력으로 문제를 풀어가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새로운 사회와 교육이 어떻게 가능할까? 그것은 어쩌면 ‘내용’(contents)의 문제가 아니다. ‘태도’나 ‘관점’의 변화에 대해 함께 고민해야 한다. 최성현 농부의 말씀을 빌려 이렇게 적어본다. 뜻있는 분들과 함께 미래교육에 필요한 관점에 관해 이야기 나누고 싶다.

“세상 어디로 가든지, 학습자의 개성은 존중받아야 합니다.
서로 경쟁하거나 비교하지 않고, 다름과 어려움을 환대하는 연습을 함께 합니다.
나머지는 서로를 북돋우며, 배움터의 여건과 상호작용에 맞추어가면 됩니다.
이렇게 따르는 법을 잘 익히면, 세상 어디에서나 우리는 배우고 가르칠 수 있습니다.
배운다는 건 자신을 낮추는 일이요, 가르친다는 건 다만 희망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금산신문 전문위원 유준혁

금산신문  gsnews47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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