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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하다는 것
손모내기 - 서로의 거리가 중요하다는 걸 배운다.

이번 주도 파란만장하다. 배움터를 운영한다는 것과 갈등을 요리한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닐까. 늘 그랬듯 이번에도 힘겹게 고개를 넘는 중이다. 아이나 어른이나 싸우면서 큰다는데, 그게 정말일까. 내 마음속 답답함을 아는지, 진악산이 오늘따라 눈부시게 푸르다.

갈등 상황에선 예외 없이 분노와 불안이 표출된다. 듣고있는 내 마음도 물결 따라 요동친다. 살아있다는 건 이렇게 쉼없이 움직이는 것이리라. 우리는 다양함의 우주 속에 살고 있다. 한 사람안에도 다양한 감정과 성향이 존재한다. 또한, 같은 상황을 다르게 바라보는 다양한 생각과 주장들이 있다. 서로 어우러지면서 다시 수천 수만개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다양한 존재의 공존은 자연의 순리라고 들었는데, 왜 이렇게 공존이 어려운 걸까. 관점과 기준이 다르고, 바라는 게 다르다. ‘난 그런 뜻으로 이야기 한게 아니었다’ ‘그 사람은 어쩌면 그렇게 내 마음을 몰라주는 걸까’

교사연수-조직문화와 서로간의 관계를 돌아본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분노와 불안을 느낀다, 위협을 느끼는 순간, 방어하게 된다. 더군다나 내가 공격당했다 느끼면, 자동반사적인 보복모드에 들어간다. 게다가 내가 옳다는 생각은 행동의 정당함을 강화시킨다. 서로의 주의가 강하게 집중되는 갈등 상황은 더 큰 문제로 번지기 일쑤다. 마치 블랙홀처럼 변해, 주변의 에너지들을 몽땅 빨아들여 소진시켜 버린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당한만큼 보복한다.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배워왔다. 다른 방식을 알지 못한다.

갈등 상황에 임하는 당사자들은 서로를 자신이 명명한 ‘꼬리표’로 설명한다.  ‘살다 살다 저런 인간은 처음 보겠네’, ‘구제불능이지’, ‘이게 다 저 녀석의 무개념 때문이야’,  상대방은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존재고, 답이 없는 사람이라고 바라보게 되면 정말 그런 모습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속되는 실망감에 감정이 켜켜이 쌓이며 상호작용도 어느새 단절된다. 각자의 주변에는 자신의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들만 남는다. 그렇게 생각은 확신이 되어가고 어느새 맹신으로 변해간다. 이런 상황에선 옆에서 뭐라 말 붙이기도 조심스럽다. 더군다나 ‘다시 한번 잘 생각해보라’거나 ‘네가 모르는 면이 있을 수 있다’는 발언은 화약에 불을 붙이는 일이다. 

‘글쎄, 이야기해주어도 못 알아먹더라니까요’ 사실(fact)을 알려주면 상대방도 내 마음을 이해할거라는 기대는 왜 우리에게 오랜 습관처럼 남아있는 걸까. 갈등 상황의 또다른 경우는 상대방을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다는 믿음에 기반하고 있다. 문제는 논리적으로 설명할수록, 상대방의 화가 커진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전혀 공감받지 못했다는 서운함과 너는 뭘 그리 잘했냐는 반대논리가 덧씌워지면서, 싸움은 더 커지게 된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혹은 이해하지 않으려 드는) 상대방을 고치려고 들면 비극은 더 커진다. 더 큰 문제는 그런 행동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옆에서 조언을 해주어도 도무지 못 알아듣는다는 사실이다.

‘왜 나한테 이러는지 알 수 없어요’ ‘쟤가 먼저 그랬어요’ 이 모든 싸움이 상대방으로부터 비롯되었고, 자신은 단지 피해자 일뿐이라는 생각도 역시 흔한 갈등의 스토리다. 하지만 역사상 많은 전쟁에서 그렇듯, 서로에게 원인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방아쇠를 당긴 사람보다, 서로 총구를 겨누게 된 상황이 갈등의 진짜 원인은 아닌지 잠깐이라도 바라보는 여유는 왜 그렇게 어려운 걸까

무엇보다 ‘내가 당한만큼 상대방도 고통받아야 한다’며 서로를 물어뜯는 국면이 가장 슬프다. 복수는 복수를 낳기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고통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정말 가슴 아픈건 이런 상황에서도 서로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상대방이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길 바라는 깊은 열망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서클수업-마음을연다는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한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깊은 이해와 공감을 바라는 존재다. 함께 즐겁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외로움과 슬픔이 무엇인지를 안다. 예외없이 누구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이 오면, 이상해진다. 그럴 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려 하기보다, 불행의 원인을 찾아내어 배제하거나, 누군가를 혐오하기 일쑤다. 우리는 대체 왜 그러는 걸까.

거대한 자연의 힘에 비해 한없이 미약하여, 안전과 생명을 위협받던 인류는, 오랜 투쟁 끝에, 역사상 유례없이 강력한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안전함’은 현대 사회의 큰 이슈가 되고 있다. 각종 범죄와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매일 코로나 확진자 숫자를 확인하고, 서로간의 거리두기에 신경쓴다. 매년 천문학적인 액수의 국방예산을 들여 안보에 공을 들인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안전한가. 훌륭한 무기와 철저한 보안은 정말 우리의 평화에 기여하고 있는 걸까.

우리는 코로나를 혐오가 아니라 협력으로 이겨내고 있다. 인류가 지구와 진정한 공생의 관계를 갖지 않으면, 더 이상의 생존은 어려울 수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인류에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사고 방식을 요구하는지도 모른다.서로에게 더 받으려 애쓰기보다 주지 못해 안달하는 사회는 정말 동화속에 나오는 상상 같은 것일까? 어쩌면 진정한 평화는 우리의 내면을 다시 셋팅해야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안전하다는 것’의 정의는 다시 내려져야 하지 않을까. 두려움과 결핍에 대해서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대응해야 하지 않을까. 다함께 새로운 사회를 꿈꾸고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서클대화중-존중하고 공감하는 대화를 연습한다.

위기의 순간에, 우리가 서로를 살피고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드디어’ 왔다는 걸,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을까. 화가 뻗쳐오르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어떻게 상대방을 환대할 수 있을까. 일상에서 동료들과 묻고 답하며 함께 공부해야겠다.

오늘도, 기름진 밭에서 잡초 나듯, 여기 저기 갈등이 이어진다. 내 마음에서도 마찬가지다. 빨리 문제를 ‘해결하려는’ 마음이 급하게 올라온다. 하지만 욕심을 내려놓고 우선 잘 들어보기를 택한다. 서로의 마음속 이야기가 들려진다.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다만 서로 공감해보고, 조심스럽게 연결지어 본다. 섣불리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태도는 경계한다. 각자에게 선물이 되고, 배움이 되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 그러나 참 쉽지 않아 보인다. 다시 심호흡을 하면서 생각에 잠긴다. ‘우리에게 정말 안전하다는 건 무엇일까?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 걸까'

/금산신문 전문위원 유준혁

금산신문  gsnews47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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