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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찬을 만드는 중. |
중등과정 2학년들이 조리실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학교 근처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반찬과 먹거리를 만들어 드리고 싶단다. 왁자지껄 회의를 하며, 뭘 만들어야 할지 함께 정한다.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몰라, 유튜브 영상으로, 레시피를 배운다. 장을 보고, 요리도 직접 한다. 서툴게 만든 것 치곤, 제법 괜찮은 반찬이 탄생했다. 근데 이걸 할머니께서 좋아해주실까. 좋아하셔야 할텐데... 일단 찾아뵐 일정을 잡아야 한다. 반찬을 만들면서,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연락을 드린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처음으로 찾아뵙는 날이 왔다. 근데 왜 이렇게 떨리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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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손가락 경례 릴레이 1인 시위. |
비슷한 시각, 고등과정에서는 미얀마 프로젝트가 활기를 띠는 중이다. sns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는 많은 시민들이 다치고 사망하고 있다. 우리가 뭐라도 하나 해야 되지 않겠냐며 의지를 모으는 고등학생들이 의기투합한다. 미얀마가 왜 이런 상황에 놓였을까 공부도 하고, 자료도 찾아본다. 실로 초연결 사회다. 서로 sns를 들여다보다가, 학교 밖 사람들과 연결이 닿았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다른 대안학교들의 제안으로 함께 카톡방을 만들게 된것이다. 카톡방에서 서로의 활동 소식을 나누다가, 함께 미얀마 현지와 연결을 시도한다. 계엄령으로 인해, 미얀마는 인터넷이 잘 안된다는 데 과연 zoom으로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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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성껏 만든 음식을 들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뵈러 가요. |
한편, 반찬을 들고 할머니 집 앞에 도착한 중학생들은, 초인종 벨을 누른다. 집앞에 서니 더 떨리는 것 같다. 그런데 현관문을 열고 나오시는 할머니의 미소가 따뜻하다. 너무 감사하다. 할머니께서 들려주시는 옛날이야기에 깜짝 놀란다. 실로 살아있는 한국 근현대사가 아닐수 없다. 책과 영화에서만 접하던, 일제 강점기며, 625전쟁 이야기를 할머니 삶에서 있었던 일로 들으니, 정말 생동감있게 살아뛴다. 부지런히 녹음도 하고 촬영도 한다. 이분들의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만들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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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얀마 현지와 연결하기. |
미얀마와 현지연결에 성공한 고등학생들은, 분노와 슬픔을 동시에 느끼는 중이다. 518 광주와 비슷한 비극이 실시간으로 펼쳐지고 있는 긴박한 현지 상황을 비로소 직접 듣게 된 것이다. 2시간의 연결 동안, 주고받는 질문과 대화를 지켜보면서, 잘 이해가 되지 않던 퍼즐조각들도 맞춰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기로 한다. sns에서 릴레이로 세손가락 경례 시위를 해보자고 제안한다. 학내외에 미얀마 관련 글을 게시하자고 의견을 모으고, 모금활동도 기획한다. 다른 학교와 어떻게 연대하면 좋을지도 아이디어를 모아본다. 잘될지 어떨지 알수 없지만, 작은 정성이라도 모아야 한다고 마음을 다진다.
새삼, 어떤 전환점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하라고 시켰으면 나서지 않았을 것 같은, 어렵고 불편한 시도들이다. 하지만 힘든 활동의 기획과 실행을 자원하는 10대들의 동기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에 대한 한 친구의 답변이 걸작이다. “그러지 않으면 안되니까요”
우리는 서로 다른 존재라 여기며 각자의 삶을 살아가지만, 실은 거대한 하나다. 여러 사람들이 각자의 역할을 함으로써 지금까지 서로의 삶이 이어져 올수 있었다. 사실 우리 모두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었던 것이다. 알고보면 미얀마 시민들도 우리의 가까운 이웃이었던 것이다. 저 사람의 문제가 남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문제’라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우리는 종종 새로운 해법의 인식에 도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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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로 책을 만들다. |
“작게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또 한명의 친구는 자신의 욕구가 ‘기여’에 있었음을 고백한다. 남을 위하는 마음.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살리고 키워야 할 소중한 새싹이 아닐까. 우리의 삶은 따지고보면, 모두, 누군가의 도움이나 선물의 연결망 속에 놓여있다. 마음을 내어 누군가에 힘이 되어주려는 자세는 사실 자신의 삶을 위한 저축에 가까운 태도다.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무언가를 타인과 나누게 되면, 그 과정에서 기쁨도, 능력도 훨씬 풍부해진다. 더 나아가 새로운 삶으로 눈이 떠진다. 좁은 ‘나’에서, 넓은 ‘우리’로 함께 하는 시야를 가지게 된다.
‘배워서 남 주는 사람’ 양성을 우리 교육의 목표 중 하나로 삼아보면 어떨까.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함께 연대할 수 있는 사람이 점점 필요한 시대다. 전세계가 하나로 연결되고 있다. 연결망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촘촘해지고 서로간의 상호작용도 더 다양해질 것이다. 어디서나 일 찾아, 사람 찾아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가려면, 민감한 공감능력은 어떤 역량보다 소중하다. 나와 다른 존재를 기꺼이 환대하고, 미우나 고우나 더불어 함께 살아보려는 태도를 삶에서 연습하고 키우는 것이 우리 교육의 시급한 과제가 아닐까. 우리 교육의 미래를 위해 다 함께 고민해보면 좋겠다. ‘어떻게 하면 ’기꺼이‘ 섬기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금산신문 전문위원 유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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