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개인 오후의 진악산이 신령스럽다. 너른 품이 모든 것을 안아줄 수 있을 것만 같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거대하면서 위압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큰바위 얼굴 이야기처럼, 우리도 진악산을 닯아 갈 수 있을까. 가르치지 않지만, 많은 가르침을 주는 자연속에서, 오늘도 함께 울고 웃으며 배움터를 엮어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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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함께 시봄제. |
올해도 시봄제가 열렸다. 봄을 여는 작은 축제. 때에 맞추어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해마다 봄이 시작할 무렵, 다들 정성들여 준비한 음식과 꽃을 두고, 한해의 시작을 노래하는 자작시를 함께 읽는다. 모두 마음을 모아, 우리가 모든 생명들과 함께 연결되었음을 자각한다. 이렇게 또 우리의 봄이 시작된다.
바야흐로 ‘전환의 시대’다. 인간이 이성의 힘으로, 자연을 개발하며, 지구에 군림한다는 생각은 편협한 착각에 불과했다. 코로나와 기후위기의 시대, 우리 모두 꼼짝없이 겸손해져야 했다. 알고 보니 우리는 지구별 속 생명의 연결망 덕분에 살아온 존재였다. 다함께 새로운 삶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성찰이 늘어난다. 그러나 삶의 관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지구별에 함께 연결된 존재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자각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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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과 바람과 함께. |
아침마다 각자의 밭에서 흙을 만지며 농사를 함께 한다. 자연스레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순환의 고리를 경험한다. 밭을 만들고 작물을 심는 과정에서도, 누구 하나 소외시키지 않고, 함께 협의한다. 나 중심이 아니라, 연결된 전체의 관점을 경험한다. 모든 존재를 공경하려 노력하는 태도. ‘전환의 시대’에 우리가 자연스럽게 배우고 익혀야 할 삶의 방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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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둥그렇게 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요. |
모든 구성원이 서클로 만난다. 회의도, 만남도, 모두 둥그렇게 둘러앉는다. 토킹스틱을 돌리며,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느리지만, 원안에 앉은 모든 이들의 이야기가 담긴다. 다툼이 생겨도, 무슨 감정인지, 어떤 마음인지 서로의 이야기를 온전히 듣도록 한다. 내 마음속 화도 털어놓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한 이유도 함께 듣는다. 그렇게 조금씩 연결의 고리들이 만들어져 간다. 조금씩 성숙한 존재가 되어간다. 시골집 뒷마당에서 조용히 숙성되어가는 된장같다.
성공이란 무엇일까. 더 많이 가지고, 더 높은 지위에 오르고, 더 유명해지는 거라는 성공의 정의는 이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서로 더 많이 가지고, 더 높아지려고 하다가, 결국 우리의 문명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는 걸 우리는 실시간으로 공부하고 있지 않은가. ‘전환의 시대’에는 성공보다 성숙이 더 중요하게 여겨져야 하지 않을까. 더 가깝게 연결되고, 더 많이 연대하고, 더 깊게 축복할 수 있는 경지에 오름을, 성공으로 불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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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클 수업 중. |
에코페미니즘을 다루고픈 움직임이 여기저기에서 활발하다. 채식과 기후위기, 공장식 축산과 동물권, 혐오와 소수자문제, 자원의 순환과 재활용 등 다양한 이슈들에 공감하고자 하는 고민들이다. 칠판이며, 이면지에 아이디어를 끄적이며, 열띤 토론을 벌이는 10대들이 아름답다. 한켠에선, 에너지 전환 프로젝트와 폐마스크 재활용 프로젝트가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려는 꿍꿍이들을 피어 올리는 중이다. 생각해보면 삶이라는 결에는 많은 무늬가 있다. 어떤 방향으로 닦는가에 따라 모양과 색깔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전환의 시대’가 주는 불안과 실망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운 희망의 싹을 틔워내려는 청춘들이 아름답다. 절망과 공포에서 출발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내 손으로 연다는 기쁨과 자부심으로 시작한다. 체인지메이커(변화를 만드는 사람)야말로 이 시대에 걸맞는 존재의 방식이지 않을까.
관계도, 관점도, 삶의 방식도 모두 새로운 전환을 요구하는 시대다. 근본적인 의식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일수록 자기 발밑을 돌아보려는 노력이 소중하지 않을까. 내 마음과 손발의 전환이 일어나는 것, 그것이 가장 빠른 혁명의 방법이지 않을까. 다시 교육으로 눈길을 돌릴 때다. 우리 아이들의 삶과 마음에서 새로운 미래가 만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전환의 시대를 살아낼 것인가? 지금 여기서 우리가 함께 이뤄야 할 기쁜 과제다.
/금산신문 전문위원 유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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