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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둘레길 19

이번 10구간은 시작을 하기 전부터 참가를 하지 못한다는 연락만이 온다. 부뜰레님이 먼저달에 하지 못한 뒷풀이를 이번달에 한다고 했는데 전화가 오는 것을 봐서는 참가자가 너무 적을 것 같다. 출발 당일에도 부리면에 사시는 큰불꽃님께서 참가를 하지 못한다고 연락을 하셨다. 청산회관에서 산행할 분들을 기다리는데 평소에 참가하시던 분들도 오시지 않았다. 모두 11명으로 작은오솔길님의 승합차와 진소방관의 차량으로 이동하기로 하고 혹시 버스에 승차한 분이 있나하고 버스를 확인한바 승객이 한명도 없어 벌대부마을로 출발하였다.

장종안
전 남일우체국장

정자에 도착하니 양각산님이 오셔서 합류를 하였다. 정자에서 출발전 사진촬영을 하고 골목길을 거쳐가는데 가을의 농촌풍경이 여기저기에 펼쳐져 있다. 지붕에는 초가집은 아니지만 스레트 지붕위에 호박이 익어가고 있고 들판에는 노랗게 벼들이 물들어 있으며 인삼포에는 수확을 마친 후의 햇볕가리개가 그대로 놓여있다. 동네안에 고인돌이 있다고 하여 현장을 답사하기로 하고 오래된 노송이 있는 곳으로 가니 고인돌이 약5기정도가 있고 옆집의 집안에도 한기가 있었다. 아직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아 나도 이곳을 여러번 다녔지만 모르고 있었다.

남방식 고인돌이라고 한다. 이 마을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유물이 아닌가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덕천리에 인류의 정착은 신라 때이며 백제 때는 진내군의 외곽지대였다고 기록이 되어있는데 이 고인돌로 보면 인류의 정착이 더 위로 올라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유물이 금산에 있는데 왜 알려지지 않고 이렇게 방치되어 있는지 궁금하였다. 부뜰레님께 물어보니 이곳이 알려지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훼손이 될까봐 이 마을의 유지 되시는 분이 알려지지 않도록 했단다. 그리고 이곳을 찾아보려면 들어갈 수 있는 출입로가 없다. 옆의 집을 통과해 울타리를 넘어야 하고 다른 곳은 인삼포를 지나서 들어올 수가 있었다. 오늘은 좋은 것을 발견하여 앞으로 많은 연구를 해야 할 것 같다.

벌대부마을은 평대, 평대리라고도 부르고, 마을 남쪽에는 옛날에 서당이 있었던 서당골이라고 부르는 골짜기와 동남쪽으로는 집채골이라고 부르는 골짜기, 동쪽으로는 옛날 금을 캐는 막이 있었던 쇠막골이라고 부르는 골짜기가 있는 마을이다. 마을 양쪽으로 내가 흐르고 그 냇물이 큰 냇물로 들어가는데 마을 지형이 배 형국이라 샘을 파면 배 밑창을 뚫는 격이 되어 마을이 망한다해서 샘을 파지 못하고 마을 뒷산에 있는 샘에서 물을 길어다 먹었다고 한다.

포장된 농로를 따라 올라가다가 곽씨의 합동 제단이 있는 곳을 지나서 소로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곳에서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데 사전답사 시에 올라가던 길과 내려오면서 표시를 해두었던 길이 달라 초반부터 표시한 곳으로 올라가지 않고 다른 길로 접어 들어서 뒤편에서 표시 깃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게 한다. 오늘의 알바가 이때부터 시작이 되었다. 능선까지는 등산로가 없어져서 계속 숲속을 헤치고 올라가 능선의 산길을 만나고서 잠시 쉬었다. 어제 사전답사 때 주워서 삶은 밤을 한주먹씩 나누어 주어 까먹는데 사람마다 까먹는 방법이 제각각이다.

이마를 물어뜯어 뒤로부터 이빨로 눌러 빼먹는 방법, 반을 잘라서 빼먹는 방법, 그냥 씹어 알만 먹고 껍질을 버리는 방법 등등, 서로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참 재미있다. 등산로는 사전에 장글도로 가시나무 등을 쳐놓아 큰 불편함이 없이 정상까지 오를 수 있었다. 정상부근의 묘가 있는 곳에서는 묘 앞의 소나무를 베어놓아 남일면 덕천리 일대의 평야와 멀리 진악산 등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쉬면서 남일면의 가을 정취를 감상하면서 잠시 쉬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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