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기행(Ⅳ) -넓은 들판, 그 끝은 어디인가?

헝가리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있다고 한다.
헝그리(hungry).

즉 배고픔의 영어 표현과 국가명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늘 배고플 수 밖에 없는 나라라고 유럽의 혹자는 비아냥 대지만 그들은 한없이 넓은 국토에 적은 인구가 살아가고 있어 여유롭기 그지 없다.

유럽의 공통점이긴 하지만 산도 없이 그저 낮은 구릉만이 간혹 있을 뿐 대지는 온통 평야. 즉 들판 뿐이다.

산이 없으니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그것을 보고 지평선 저 끝이라고? 이야기 하지 않았겠는가?

참으로 그 넓은 들판을 보고 산이 70%나 되는 우리나라와 비교해 보았다.
우리나라 남한과 비슷한 면적에 일천만인구가 살아가고 있고 또 산이 거의 없으니 우리보다 실제 재배 가능한 농토를 인구와 비례해서 본다면 과연 인당 경작지는 몇배가 되고도 남을 것이다.

길을 따라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산이 보이지 않으니 시야도 가려지지 않는다.

달리고 달려도 늘 그모습 그대로의 땅이다. 산이 없으니 바위도 보이지 않는다.
간혹 습지에 나무 숲이 보이긴 하지만 주로 포플러 나무가 주종을 이루며 무성히 자라고 있다.
넓은 들녘은 끝이 보이지 않는 밭이다.

갈색의 검은 흙. 오로지 흙 뿐이다. 트랙터로 갈아엎은 밭은 그야말로 넓은 운동장을 연상시킨다. 옥수수, 해바라기, 유채, 밀, 감자 등을 주로 심는다고 한다.

가끔 넓은 포도밭이 줄지어 나타나기도 한다.
지금은 옥수수 수확이 끝나고 옥수수 대궁이 말라 가며 바람에 서걱이고 있다. 이제 저 옥수수 대궁은 동물들 사료로 쓰기 위해 큰 트랙터가 지나면서 베고 잘게 썰어 뒤따르는 트럭에 실려지고 있다.

도로 공사도 수월할수 밖에 없다. 산이 없으니 터널도 없고 큰 강이 없으니 그저 냇가 정도에 낮은 교량이 설치될 정도다.

암반도 없으니 평평한 대지를 곧 바로 길로 만들면 그만이다. 직선으로 만들어진 길, 그러기에 고속도로 제한속도가 120Km/H이지만 통상 140~150Km/H 정도는 달리는듯 싶다.
단속 경찰도, 무인 카메라도 보이지 않는다.

넓은 평야, 기름진 땅.
한없이 펼쳐진 넓은 들녁을 보자 옛 우리 농촌과 비교됨은 어쩔수 없는 것일까?
우리 어린 시절은 산자락 돌산을 일구어 그곳에 곡식을 심었다. 말 그대로 화전민이었다.

그리고 다랭이 논이라 불렸던 계단식 논, 꼬불꼬불 논둑을 만들어 몇포기라도 벼를 심었다.
지금은 대부분 경지 정리 작업이 되고 농촌도 기계화 영농으로 바뀌었지만 이렇게 넓은데서 농사를 지으면 얼마나 풍요로웠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지방도 주변을 달리다 보니 길가에서 농산물을 내다놓고 파는 나이드신 분들이 보인다.
주로 감자, 수박, 포도, 야채가 주종이다. 사람 살아가는 방식은 세상 어느 곳이나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헝가리 체류 5일째.
오늘은 부다페스트 호텔을 떠나 이곳에서 주재중인 지인의 집에서 마지막 밤을 묵기로 했다.

집을 월세로 빌려 혼자 생활하고 있었다. 가끔 부인이 오가긴 하지만 혼자 있는 날이 더 많다고 했다. 워낙 거리도 멀고 비행기 티켓 값도 만만치 않기에 불편 하지만 지낸다고 했다.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외곽으로 60km정도 떨어진 곳, 두나우이 바로쉬이다.
그야말로 한적한 주택지다.

330평 대지는 넓었다. 3층 구조의 집이다. 1층은 주로 창고로 쓰이고 2층은 거실겸 주방 3층은 침실로 이루어진 집이다.

넓은 대지엔 잔디가 예쁘게 심어져 있고 체리, 사과 등 유실수도 많이 심어져 있었다. 평범한 주택지, 대부분의 옆집도 비슷한 구조였다. 붉은 기와집 형태다.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려 금방 흘러내릴수 있도록 삼각형 구조의 경사 지붕이다.
난방은 가스보일러를 이용 라디에이터로 하고 여름철엔 에어컨을 사용해야 한단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집을 월세로 빌리면 침대와 가구, 주방기구 등 모든 생활 용품이 준비되어 있기에 그저 몸과 식료품만 구입하면 된다고 한다.

그림 액자, 거울, TV 등 모든 인테리어 용품이 준비되어 있는 꽤나 안락한 모습의 집이었다.
주변은 모두가 주택가.
우리처럼 그 흔한 수퍼마켓 하나없다.

물건을 사려면 차를 몰고 한참을 나가야 한단다. 미국처럼 이곳도 시골에선 차량소유가 필수란다. 단지 휘발유값이 원화로 환산시 우리나라와 비슷하기 때문에 소득에 따른 비교를 한다면, 물가 수준에 비례한다면 꽤나 비싼 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소형차량이 수동 기아 방식이었다. 연료 절감 목적이란다.
그리고 주변엔 음식점 하나 볼 수 없었다.

단지 하나, 맥주집 정도의 술집을 볼 수 있었다. 그들도 유럽인들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가게가 저녁 7시를 넘으면 문을 닫는단다.

모두가 가정에서 빵을 주식으로 가족끼리 식사한다고 한다. 그리고 휴일에도 집에서 지내는 부류와 가까운 유럽으로 드라이브 가는 부류로 분류할수 있다고 한다.
철저한 가족 중심·개인중심 사회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근무시간이 끝나면 대부분 칼같이 퇴근을 하고 오래전부터 정착된 주5일 근무제는 철저하게 지켜져 금요일 오후부터 휴양지로 향하는 길목은 늘 교통체증이 발생한다고 했다.

그들의 여유로운 삶. 우리네처럼 조급하지 않고 너그러운 모습을 볼수 있었다고 그 지인은 말했다. 아마도 오랜기간 사회주의 체질을 겪은 하나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지인과 청국장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한국식품을 파는 수퍼가 있어 모든 음식물은 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부다페스트에 3곳의 한인교회가 있어 가끔은 서로 김치를 담가 나누어 주곤 한단다.
부다페스트에 거주하는 한인은 대략500명 정도 된다고 한다. 대사관, 산업은행, 무역관 그리고 이미 진출한 대기업 등이라고 한다.

삼성, LG 등 가전 관련 제품은 어느곳 에서나 간판과 진열된 물건을 볼수있다고 한다. 점점 더 한국과 교역이 활발해진다고 했다.

밤이 깊어간다.
지인의 컴퓨터를 열자 인터넷으로 연결된 상황이라 모두 검색된다. 한국신문도 볼 수 있고 리얼타임으로 메일도 주고 받고 화상을 통해 인터넷 전화도 할 수 있다.

세상이 하나된 것이다. 지구 저 편이지만 바로 옆에 있듯이 엔터만 누르면 단지 몇초 사이에 화상이 뜨고 소식이 오간다.
그 옛날 꿈도 꿀수 없었던 내용이다. 그동안 쌓여진 메일을 읽고 간략하게 소식도 보냈다.

밤 하늘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까만 하늘, 밤공기가 싸늘하다. 낮과 밤의 기온차가 심하다. 밤 하늘에 별들이 무수히 떴다. 그리고 초생달이 손톱처럼 보인다.

저 달은 한국에서도 보았던 같은 달이다. 달을 보니 가슴 뭉클하게 그리움이 젖 어 온다. 내일이면 서울 하늘에 도착한다.

일주일의 여정이 끝나가고 있다. 정말 적막한 밤이다. 주택지이지만 오가는 차량도 거의 없다. 어디를 나가려면 자가용을 이용하든지 콜택시를 불러야 한단다.

아직 밤 열시가 넘지 않은 시각. 서울같으면 한낮과 마찬가지련만 이곳은 조용한 한밤중이다. 내일 떠난다 생각하니 잠도 오지 않는다. 그렇게 일주일간의 여행은 끝나가고 있다.

날이 밝았다. 오늘은 가는 날이다.
출발 채비를 차린다. 이번여행에서 아쉬운점이 하나 있다면, 아니 하루 더 일정에 여유가 있었다면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헝가리의 ‘벌러톤’호수를 가보고 싶었는데 갈수 없었던 것이다.

헝가리는 바다가 없는 국가다. 꼭 대한민국에서 충청북도가 바다에 접하지 못한것처럼 내륙으로 둘러쌓여 있다.

그래서 바다 대신 벌러톤 호수를 신이 내려주었다고 헝가리 사람들은 말한단다. 가보지 못했지만 대규모의 호수란다. 넓고 긴 호수는 호수라기보다 차라리 바다라고 표현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고 한다.

천혜적인 아름다움으로 유럽 부호들의 별장이 즐비하고 여름철은 휴가 인파로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너무 넓기에 바람에 의해 파도도 출렁이고 풍부한 수산자원은 미식가들의 식욕을 돋우기도 한단다.
일광욕을 즐기는 유럽인들이기에 볼거리가 많다는 한 남성 방문객들의 소감 한마디도 들었다.

부다페스트 국제공항.
항공사에 따라 A·B로 구분되어 있었다.
체크인 카운터에서 한국인 여행객을 만났다.

얼마나 반갑던지, 해외에 나오면 모두가 애국자가 되는걸까? 주머니에 가득 남은 헝가리 동전을 털어 음료수를 마시면서 북한 핵실험 얘기로 오랜만에 즐거운 담소를 나누었다.
헝가리 국영항공 말래브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향해 이륙했다.

아래로 펼쳐지는 대평야.
녹색의 그림속에 구불구불 도나우강 물줄기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초록이 어우러진 갈색의 땅. 그리고 낮은 구릉. 그곳에서 자라는 나무들이 펼치는 단풍 향연. 넓은 곳에 띄엄띄엄 보이는 주황색 기와의 마을들.

강물에서 반사되는 햇빛물결의 눈부심.
질주하는 차량. 넓은 대륙. 두둥실 떠 있는 흰뭉게 구름. 그런것들을 뒤에 두고 비행기는 고도를 향해 떠 오른다.

많은 것을 보고 배운 짧은 기간의 값진 여행. 세체니 다리의 아름다운 야경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다시 가고픈 부다페스트여 안녕!

금산신문 webmaster@ig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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