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가고 있습니다. 저물고 있습니다.
아니 지금은 가을과 겨울의 사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 현상은 이제야 가을의 진정한 단풍을 볼수 있도록 시간을 늦추고 말았습니다.
잠시 도심을 떠나 산길을 달려 보십시오.
사방이 울긋불긋 어디에 눈길을 주어도 한폭의 동양화처럼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노란 은행잎이 수북히 쌓인 가로수 밑을 걸어 보십시요.
아무리 정서적으로 메마른 사람도 가을의 정취를 듬뿍 느낄수 있을것입니다.
가을 단풍의 아름다움은 한국의 산야에서 어디든 느낄수 있는 풍경.
자연의 빛깔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을 것 입니다.
그 색상의 오묘함에, 어울림에, 꾸미지 않은 순수함에 스스로 빠져들고 맙니다.
가을은 우리들에게 어떤 계절이 될까?
연령차에 따라 그 느낌이나 기대, 그리고 하고픈 일들이 물론 다를 것입니다.
고 3생은 지난 11월 16일 끝나긴 했지만 수능 걱정으로, 또는 공부에 매진하다보니 가을이라는 계절 의미 자체가 상실되었는지 모릅니다.
결혼 적령기의 청춘남녀들은 상춘년 결혼 시즌을 맞아 그 누구보다도 가슴 설렌 인생의 환희를 느끼는 계절이 되었을 것입니다.
결혼식을 마치고 단둘이 떠나는 신혼부부들의 여행은 핑크빛 일색이지요. 가을날 단풍처럼 화려하지요.
그런가 하면 나이드신 분들은 자기의 삶을 보는 것 같아 저물어가는 가을이 더욱 쓸쓸하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봄철의 성장기와 짙푸른 녹음의 절정,여름철을 보내고 맞이하는 계절은 저무는 노을처럼 곧 어두워질지도 모른다는, 아니 삶을 정리해야한다는 느낌으로 다가 올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똑같은 계절이지만 각기 느끼기에 따라 그 모습은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그게 삶이겠지요. 삶은 영원할수 없으니까요?
태양이 뜨면 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지요.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아마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굳건한 바위도 풍화작용으로 깍이고 부서지기 마련입니다.
화창한 가을.
하늘 높고 푸르기만한 창공.
노란 감국꽃 아름답게 피는 계절.
감나무에 남겨진 감 몇개, 까치밥이지요.
하찮은 동물에게도 배려를 베푸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
아무리 어렵고 배고픈 시절에도 그 여유롭고 넉넉한 마음은 남아 있었답니다.
가을날에만 볼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지요.
아름다운 계절. 이 가을.
오늘은 그 아름다운 모습을 찾아 발길을 재촉합니다.
유성 IC를 빠져나와 동학사로 향하는 길.
조금 달리다 보면 국립현충원이 우측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현충원 입구에선 참배객들에게 아름다운 조화를 팔고 있는 모습을 늘 볼수 있습니다.
야외 묘소 앞 꽃병에는 금방 시들어 버리는 생화보다 느낌은 다르지만 시들지 않는 조화가 더욱 오래도록 남아 아름답게 보일것입니다.
고개를 넘으면 공주 가는 길과 동학사 입구로 가는 길이 나옵니다.
그리고 수려한 계룡산이 시작됩니다.
마주 보이는 곳, 깍아지른 듯한 바위.
그 사이사이 가을이 머물렀습니다.
울긋불긋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고 서 있는 나무들.
푸르른 소나무와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을 펼쳐 놓은듯 합니다.
사각 목재 케이스를 만들어 걸어 놓으면 풍경화 액자가 될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잘 표현한 풍경화이겠지요.
아니 살아 움직이는 그림이 될것같습니다.
길옆 주변에는 음식점도 많지만 요즈음은 외곽으로 빠져 대형화된 의류 판매점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통상 50~70% 할인이라는 대형 현수막을 걸어놓고 넓은 주차장을 자랑이라도 하듯 달리는 차량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긴 마티 터널을 빠져나오면 곧바로 금강을 만납니다.
무주에서부터 금산을 거쳐, 아니 속리산에서 흘러 내린 물들과 만나 대청댐에서 숨고르며 잠시휴식을 취하다가 대전 갑천물과 합류되면서 충청도 땅을 적시며 흐르는 금강 물줄기.
그 위에 새로 개통된 예쁜 다리를 지나면 행정구역은 공주로 바뀌어닙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삼림 박물관도 있고 구절초 축제로 유명해진 영평사도 찾을 수 있지요.
금강대교를 지나면 한결같은 식당 간판을 읽을 수 있습니다.
칼국수 집이지요.
맨처음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모르지만 공주 국도변 칼국수집은 대단한 유명세를 가지고 있어 대전에서 바람도 쏘일 겸 점심식사를 다녀오는 분들도 많아졌답니다.
그 중에서도 “ㄱ” 칼국수 집은 돼지고기 수육, 들깨 수제비, 칼국수 메뉴로 큰 주차장을 차량들이 가득 메우고 휴일에는 순서를 기다려야 할 정도로 붐빕니다.
금강물위를 스쳐온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자신도 그 칼국수 집에 들렀습니다.
넓은 식당. 식사시간이라 그런지 손님들이 대만원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저처럼 가을 향기 찾아 나온 사람들인것 같습니다.
주 메뉴는 칼국수, 수제비 그리고 수육입니다.
가격도 시내와 별반차이가 없었지만 유명세 때문일까.
조금은 쫀득쫀득한게 맛있었습니다.
달려 오느라 시장기가 들어서인지도 모르지만 후회없는 한끼 식사였습니다.
모두들 왁자지껄합니다.
계모임인지 동창 모임인지 40대 중반 아주머니들의 수다가 요란합니다.
옆에서 듣자니 아이들 교육문제부터 남편 흉보기, 시댁 시누이 얘기까지 다양한 화제입니다.
들으려고 하기보다 들려오는 소리에 우리는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나왔습니다.
가을 햇볕아래 셀프(self)로 제공되는 자판기 커피 한모금 하면서 유유히 흐르는 금강을 바라봅니다.
강둑 산자락엔 억새가 하얗게 피었습니다.
저 억새는 세찬 강바람에도 굳건히 모습을 지키며 흰 꽃을 휘날립니다.
성장기에는 저 억새도 세찬 강바람을 무척 원망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더 세차게 불어주기를 희망하고 있을 겁니다.
열매를 멀리 날려 보내기 위함이겠지요.
그 자리에 떨어져 서로 삶을 살기위해 티격거리기 보다 아주 멀리 시집가서 새로운 곳에 정착하라고 날려 주는 부모의 심정이겠지요.
종족보존의 원칙은 생명이 있는 모든 것에 같이 적용되리라 봅니다.
맑은 햇살, 시원한 바람, 푸른하늘.
농가 마당에서 말려지고 있는 붉은 고추.
시골집 마루에 널려 있는 썰어진 호박.
산자락 모퉁이로 바람에 옮겨온 갈색 낙엽.
추수 끝난 경사진 산자락 밭.
탈곡되고 버려진 볏짚이 여기저기 흩트러진 논.
산속 나무들도 하나 둘 그 원형을 드러내는 모습입니다.
낙엽지고 앙상한 가지만으로 머지 않아스스로를 다 보여주는 겨울 나목이 될듯 싶습니다.
진정한 화가는 잎새진 나목을 즐겨 그린답니다.
잎새로 포장된 아름다움보다 가진 것 없는 가지가 더 아름답다고 느낀답니다.
이런 풍경들이 모두 가을이 주는 향기 아닐까요?
문명의 도심에서 자연의 신비를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대다수 젊은이들.
그들은 무엇을 가슴에 담고 삶을 즐길까?
프로이드에 의하면 문명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를 억압하게 되어있답니다.
억압은 다양한 형태의 왜곡된 욕구충족을 낳는답니다.
그래서 프로이드는 단언했죠.
문명화된 세계에서 인간은 영원히 행복할수 없다고, 다시 말하면 제각기 정신적 문제들을 안고 괴로워하며 살아가게 되어있다는 겁니다.
자! 그런 것을 훌훌털고 자연으로 갑시다.
가을이 주는 향기를 마음껏 느껴 보자구요.
“맑고 향기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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