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철이다.
하지만 김장 담그는 모습을 보기 어려운게 요즈음 우리들 도심생활 현실이다.
일부 단체급식 같은 대형식당이나 또는 독거노인 돕기 바자회 같은데서 김장 담그는 모습을 TV를 통해 보는게 고작이다.
뭐니뭐니 해도 우리들 밥상의 터주대감은 아직 김치이건만 그 모습은 옛날과 많이 바뀌었다.
우리 어릴적만해도 월동준비의 첫째는 김장 담그기, 그리고 땔감(연탄 혹은 나무장작)준비였다.
이 두가지만 준비하면 겨울준비는 마무리 되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김장은 겨울초기 중대한 가정사의 하나였다.
30년전 내가 신입사원으로 입사할 당시만 해도 11월엔 김장보너스를 별도로 받았다.
대부분의 회사가 그렇게 지급할 정도로 가정사의 큰 일 중의 하나였다.
우리가 어릴적 농촌에서는 통상 집집마다 배추기준으로 한접(100포기), 두접(200포기)하는 집이 대부분이었다.
대가족이 한집에 살기도 했지만 별도로 먹을만한 반찬준비가 어려워 한 겨울을 나자면 그 정도의 양이 필요했다.
김장은 며칠 전부터 준비해야한다.
남자들은 배추와 무를 뽑아 집으로 운반한다.
그리고 무싹은 짚으로 묶어 처마밑에 걸어두고 겨울철 시레기용으로 말린다.
여자들은 배추를 씻고 무우를 깨끗하게 정리한다.
깍두기용으로 무우를 썰고 조각낸다.
무우생채를 만들고 마늘을 까고 고추를 다듬어 방앗간에서 고춧가루로 빻는다.
그리고 당일 어머니와 누나들은 배추를 다듬고 소금에 절이고 양념을 준비하고 아버지와 형제들은 부엌 뒷켠에 김치광(廣)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파고 김장독을 묻었다.
그리고 섯가래를 서로 맞대 세우고 이엉으로 둘러 하나의 야외창고 같은 가설집을 지어야했다.
그곳엔 김장김치는 물론 깍두기, 동김치까지 온 겨우내 먹을 양을 묻어두고 새싹이 움트는 봄날까지 먹었다.
그 당시 농촌에서는 모든 재료를 스스로 경작했다.
배추, 무는 물론 양념용 고추, 마늘, 파 등도 모두 키워서 썼다.
단지 젓갈류만 구입해서 쓴듯 싶다.
맛있는 김치의 기본은 역시 좋은 재료와 어머니 손끝에서 나는 손맛이 아닌가 싶다.
같은 지역에서 자란 배추와 무, 고추, 마늘을 가지고 만들었어도 집집마다 그 맛은 달랐다.
양념과 숙성, 그 비결 아닐까?
옛날 어머님은 늘 배추는 물을 많이 주지 않는 곳에서 햇빛을 듬뿍 받으며 자란것이 으뜸이라고 말씀하셨다.
어릴적 우리들은 배추 뽑는날, 밭에서 배추뿌리를 깍아 먹기도 했는데 요즈음은 그 뿌리도 하나의 상품으로 팔리고 있고 식당에선 별식으로 준비해 주는곳도 있다.
그리고 무밭을 지날때는 무를 뽑아 그 자리에서 쓱쓱 닦아 깨물어 먹기도 했다.
하지만 무를 먹고 나면 나오는 트림이 문제였다.
그래서 그당시 많이 들은말이 ‘무먹고 트림만 하지 않으면 인삼보다 낫다.’는 믿지 못할 말이었다.
그리고 요즈음은 젓갈을 많이 사용하지만 옛날에는 젓갈이 비싸 겨우 새우젓 정도였다.
젓갈축제가 김장철에 맞추어 열리는 「강경젓갈축제」
서울에서 별도의 관광열차가 편성되어 강경까지 운행되기도 한다.
일제 강점기때 하루 100여척의 배가 드나들었다는 강경포구.
지금은 금강하구에 둑이 생기면서 포구로서의 기능은 사라졌지만 해산물 염장기술은 그대로 남아 있는 전국 제일의 젓갈시장이란다.
요즈음 강경은 젓갈상회의 밝은 불빛으로 불야성을 이룬다.
대전서 그리 멀지 않아 가끔 들리는 곳이기도 하다.
새우오젓, 새우육젓, 갈치속젓, 밴댕이젓, 오징어, 꼴두기젓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작은 유리병에 담겨진 젓갈.
그것만 있으면 밥 한그릇은 뚝딱 없어진다.
고추는 김치의 맛과 색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양념중의 하나다.
나는 충주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고추와 담배농사에 관한 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지금은 농가마다 온풍기가 있어 건조하는데 어렵지 않지만 우리 어릴적엔 고추를 줄에 끼워서 담배 건조실에 매달아 석탄을 때서 말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고추를 초가지붕에 널어 말리기도 했다.
비라도 올듯 싶으면 지붕에 올라가 빗자루로 고추를 쓸어 내리고 마당에서 주워 담았다.
진정한 태양초였지만 일부가 하얗게 변색되어 상품가치는 떨어진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게 지금 생각하니 웰빙식품일듯 싶다.
진정한 태양초가 정말 매운맛이 나고 화건초는 단맛이 난다는 어머님 말씀이 지금도 기억에 남았다.
이제 이런 풍경도 우리 삶 주변에서 멀어져 간다.
핵 가족화로 많은 양의 김치는 필요없다.
아이들도 새로운 음식맛에 길들어져 김치를 즐기지 않는다.
따라서 별도의 김장철이 사라져 가는 기분이다.
사시사철 비닐 하우스에서 자라는 배추와 무.
언제나 접할수 있는 겉저리 등으로 꼭 김장김치를 강요하기란 어려워졌다.
그리고 도심은 대부분 아파트 위주의 주거공간이기에 많은 양의 김치를 놓아두기도 어렵다.
지금은 그래서 집집마다 김장독대신 예쁜 김치냉장고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적절히 숙성시켜 주면서 장기간 보관도 가능해졌다.
그러니 김장철의 의미가 사라져 가고 있다.
김치공장의 대형화도 가정에서 김치 담그는것을 불필요하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대형할인매장이나 마트의 식품매장에 가면 언제나 싱싱한 김치를 구입할수 있다.
그리고 브랜드를 앞 세운 품질위주의 마케팅전략도 주부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소량을 담그는 것보다 구입하는 것이 경제적이라는 것이다.
각종 양념, 젓갈, 통배추, 무도 구입해야 하고 주부의 노동력도 함께해야 하니 노력에 비해 비경제적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판매하고 있다.
국내산 김치는 그래도 괜찮지만 저가로 수입되는 동남아산 김치가 문제다.
농부들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고 재배량도 많아 배추밭, 무밭을 경운기로 갈아엎는 지경이지만 금년도 수입된 김치는 작년의 2.7배에 달한다는 언론보도, 김치 종주국에 동남아산 김치가 점령을 시도하고 있다.
싼 가격을 무기로 대부분의 식당김치를 점령하는 듯 그 기세가 더욱 세어져간다.
세계는 하나의 시장이라 통제할수는 없지만, 금지시킬수는 없지만 우리의 식단은 우리 스스로 지켜야 하고 철저한 위생관리 및 품질관리, 검역관리가 필요한 시기가 된듯하다.
TV를 통해 보았던 어느지방의 배추와 무밭 갈아엎기,
재배한 농부의 땀과 정성이 눈물로 바뀌어지는 것을 보니 내 마음도 슬프다.
물론 적정량을 재배하여야 하지만 그것을 미리 예측하기란 농부들은 어렵다.
농정당국이 수요와 예측을 잘 판단해 파종면적을 조정해야 하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본다.
그리고 신토불이(身土不二).
우리 땅에서 재배된 것이 우리 몸에 맞는다는 정신도 계몽해야 한다.
물밀듯이 들어 오는 값싼 동남아산 농산물.
적절한 대책없이 우물쭈물하다가는 우리 농촌은 곧 고사당하고 말것이다.
김치하나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전 농산물이 대상이 되는것이다.
김장철.
우리가족과 자신의 건강을 위하고 농촌의 어려움도 생각하면서 김치 한포기 더 담그기.
한포기 더먹기 캠페인이라도 벌려야 하는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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