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눈이 내렸다. 그것도 아주 많이 내렸다.
온통 세상은 하얗게 변하고 앙상한 나뭇가지위엔 하얀 눈꽃이 피었다.
주차장에 주차된 차들은 모두 흰색으로 변했다.
한참을 쓸어내릴 정도의 많은 눈이다.
오늘은 부산가는 길이다. 차량을 몰고 조심스럽게 대전 역을 향해 간다. 모두가 조심 조심.
미끄러운 도로 길위를 차량들이 엉금엉금 기어간다.
아침 이른 시간이라 바닥이 결빙된 상태, 조심과 서행이 최선의 대책이다.
무사히 대전역에 도착했다.
대전역 청사. 깔끔하다.
KTX개통과 함께 새로 지어진 역사.
드높은 천정과 새의 날개를 닮은 지붕구조.
육중한 철 구조물이지만 날아갈듯 가볍게 보여진다.
미끄러지듯 부산행 KTX가 역사로 들어온다.
회색의 유선형 기관차, 그리고 줄줄이 연결된 객차. 내리고 타고 역무원의 붉은 깃발 손짓, 호루라기의 긴 여운과 함께 차는 역사를 빠져나간다.
무슨 볼 일들이 이토록 많을까?
객석을 꽉 메운 사람들의 모습도 다양하다.
결혼식에 가는 모습의 가족들.
새벽녘 출발한 기차여서일까?
피곤한 모습으로 곤한 잠에 빠진 사람들.
눈비에 젖은 차창은 희뿌옇게 유리창을 흐리면서 물줄기를 흘러내린다.
주변은 온통 백색뿐이다.
곧바로 속력을 가속한다. 여유롭게 의자에 앉아 지나는 겨울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여행의 또 다른 재미다.
신은 무엇이 보기 싫었기에 대지를 백설로 저렇게 덮어 버렸을까?
지나는 속력으로 만들어진 바람은 주변의 눈을 일으키며 눈보라를 만든다.
몇해전 겨울, 일본 도야마 갔을때가 문득 생각난다.
밤새 내린 눈 때문에 비행기가 착륙할수 없어 귀국차 공항까지 갔었지만 비행기가 결항되는 바람에 마쯔야마(松山)공항까지 가야만 했다.
기차를 타고 오사까까지 이르는 철길.
그길은 마치 설국(雪國)의 중앙부를 관통하는 듯한 눈길이었다.
온통 백색천국. 보이는 것이라곤 눈쌓인 나무 그리고 간간이 보이는 눈덮인 가옥들. 그리고 온천지대에서 뿜어 오르는 증기 굴뚝뿐. 그 설원을 기차는 달린다.
끝없이 내리는 눈.
대충보아도 5~60cm는 쌓인듯 하다.
하얀대지위를 열차는 힘겹게 달린다.
그리고 철도 레일의 검은색 두줄만이 눈속에 남겨진다. 따뜻한 객실에서 바라보는 눈풍경에 매료된적이 있었다.
눈 때문에 일정도 늦어지고 다른 공항으로 이동중이었지만 이런 풍경을 만날 수 있음에 속으로는 미소를 지었다.
언제 이런 길을 달려보겠는가 하고…
마치 그때의 기분이 오늘 아침에 다시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오랜만에 만나는 눈 때문일게다.
영동을 지나고 김천을 지나자 눈은 차츰 없어지고 높은 산 위에만 상고대 모습으로 남았다.
열차가 남으로 남으로 달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구에 이르자 눈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구름사이로 햇볕이 내린다.
작은 국토에서도 이렇게 기상의 변화가 심하니 그 넓은 중국이나 미국에선 과연 어떨까?
자연의 오묘함에, 신비로움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고속열차는 쉼없이 달린다. 산을 관통하고 강을 건넌다.
여행이란, 아니 잠시 떠나보는것 자체만으로도 가슴설레게 만든다. 웬지모르게 기대되고 즐거워진다.
삼랑진을 지나자 철길은 낙동강 물줄기를 만난다.
물흐름을 느낄수 없다. 그저 잔잔한 물결만이 내려 쪼이는 햇살에 은빛 찬란한 빛을 발한다.
청둥오리 무리들이 강물을 방석삼아 고개를 접어돌리고 깊은 휴식에 빠졌다.
물결따라 그들도 너울 너울 춤을 춘다.
잦은 돗배위에서 나이드신 노부부가 그물을 끌어올린다.
고기잡이가 시원찮은 모습이다. 웃음 잃은 표정에서 그 삶을 엿볼수 있을것 같다.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아니 부산이 가까워 올수록 산 모습이 조금씩 달라보인다.
소나무 솔잎이 더 푸르게 보이고 대나무 잎새도 한결 푸르다.
독야청청(獨也靑靑)한 소나무 잎새가 마른 다른 나뭇가지와 확연하게 돋보인다.
강건너엔 새로 개통된 대구 부산간 고속도로가 보이고 강 그리고 기차길이 쌍벽을 이루며 부산으로 향한다.
쉼 없이 달렸지만 많이 내린 눈때문일까 KTX 고속열차도 예정보다 11분 늦게 부산역에 도착했다.
실제 기차는 늦으면 안되는데.
열차도 눈길에는 조심하는 모양이다.
부산.
한국 제 2의 도시.
수출 물량을 대부분 실어내는 항구도시.
영화의 도시. APEC이 열렸던 도시. 아시안게임이 개최되었던 도시. 광안대교의 멋스러운 조명이 잊혀지지 않는 도시. 해운대 백사장의 아름다움이 늘 상존하는 도시.
뭐 그렇게 표현해도 늘 아쉬움이 남는 아름다운 도시가 부산이다.
바다가 있고 바람이 있고 풍부한 해산물이 넘쳐나는 자갈치시장이 있는 곳, 그리고 부산 아지매의 사투리가 정겨운곳 또한 부산이다.
해운대를 향해 차는 움직인다.
가는 길목마다 높은 대형 아파트단지가 불쑥불쑥 자리 잡았다. 바닷가 수변공원을 향한 그들의 웅장한 모습. 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얼마나 행복할까?
문 열면 태평양을 건너온 시원한 바람을 몸으로 느끼고 눈으로 은빛 파도가 출렁이는 모습을 보고 귀로는 철석이는 파도소리 들리는 곳.
그곳에 부산 사람들이 산다.
바다가 보인다. 웅장한 광안대교가 모습을 나타냈다. 그리고 해운대 백사장이 보인다.
겨울바다.
누가 겨울바다를 외롭다 했는가?
누가 겨울바다는 쓸쓸하게 느껴진다고 했는가?
이렇게 많은 모래알갱이와 저렇게 큰 파도가
온몸을 부딪치며 서로를 부르고 있건만…
물은 모래를 끌어안고 모래는 물을 잡아끈다.
그들은 저렇게 하루를, 한 달을 아니 수십년을 서로 사랑하며 애무하며 살아온 것을
왜 우리는 인간중심으로 평을 했을까?
또 겨울바다가 외롭지 않은 것은 그곳을 찾는 젊은 연인들 때문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많다. 손잡고 어깨 껴안고 모래사장을 걷는 젊은이들의 모습도 아름답다.
사랑의 밀어를 나누는가 보다.
저 멀리 하얀 등대가 보인다.
그 아래 철석이는 파도. 갈매기도 날개짓을 접고 쉬고 있다.
저 끝 수평선위로 어선이 보인다.
고기잡이를 나가는 것인지, 귀향하는 어선인지, 아니면 고기잡이 중인지 이곳에선 알수가 없다.
바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것은 또 하나의 사진이 된다.
하얀 등대.
저 등대는 뭇 어선들에게 길잡이가 되는 희망을 주었을 것이다.
벌써 금년은 다 지나가고 다시 내년 새해가 온다.
나도 마음속에 작은 등대하나 세우고 싶다.
세상을 비추고 나를 비추며
이끌어갈 그런 등대를…
해동 용궁사(海東 龍宮寺)를 찾아가는 길이다.
해운대를 지나 달맞이 고개를 넘어 기장방향으로 차는 움직인다.
달맞이 고개 주변은 풍광이 아름답다.
앞에 펼쳐지는 끝없는 바다.
그저 평화롭다. 이렇게 아름답고 바다가 좋은 전망부위엔 좋은 까페와 찻집.
그리고 음식점이 줄을 이어 성업 중이란다.
연인들의 데이트코스가 되기도 하고 아줌마들의 수다장소인 찜질방도 만들어지고 한적한 도로엔 관광버스에서 흐르는 뽕짝 노래 소리도 들린다.
1월1일 해돋이를 보기 위한 행렬은 밤새 줄을 잇는다고 한다.
저 멀리 해동 용궁사 이정표가 보인다.
남은 거리 2.1km 이제 다 왔는가 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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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금산 보곡산골 산벚꽃축제 성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