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따끈함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아랫목에서 구들장의 따스한 온기는 물론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온천에서 몸을 담그고 있노라면 겨울의 추위도 잊을수 있다.
작년연말.
일본지인의 초청으로 집사람과 함께 큐슈지방으로 온천 여행을 다녀왔다.
우리나라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벳부온천 근교의 오이타(大分)지방이다.
2박3일의 짧은 여행.
그러기에 출발하는 날부터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인천공항에서 08:30분 출발비행시간을 맞추려면 대전에서 새벽 4시경의 리무진 버스를 타야만했다.
출발 전날 그동안 푸근하던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더니 눈발마저 날리고 있었다. 밤새 날씨 걱정으로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혹시 눈이라도 많이 내리면 교통지체로 비행기 시간을 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새벽에 일어나니 걱정은 하나의 우려였다. 정상적인 교통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날씨는 차가웠다.
덕분에 안개도 끼지 않아 예정보다 일찍 인천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너무 이른 아침 비행기라 그런지 공항은 년말인데도 크게 붐비지 않았다. 수속도 순조롭게 진행되어 금새 마칠 수 있었다.
여유로운 시간.
비행기 출발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면세점을 돌아보는 것도 해외여행의 또 하나 재미요 즐거움이다.
꼭 무엇을 사야 한다기보다 유행의 트랜드를 읽을 수 있고 고급스런 명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도 된다.
대부분 고객이 여행자이기에 여행자들이 필요로 하는 용품과 선물류가 주종이다.
화장품, 주류, 가방류, 악세사리가 거의 전부다. 물론 카메라, 고급시계 같은 고가품도 많이 있다.
대부분의 큐슈지방 패키지 여행은 후쿠오카(福岡)공항을 이용하는 비행기 편이나 부산에서 배편을 이용하는 선편여행이 주종이다.
나는 큐슈지방을 몇 번 다녀 왔지만 오이타(大分) 국제공항을 이용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비행기는 예정대로 이륙했다.
가혹 빈자리가 있는 것으로 보아 만석은 아니였다.
이륙후 1시간 20분이면 공항에 도착한단다.
대전에서 인천오는 시간에 비하면 절반밖에 걸리지 않는 시간이다.
이제 일본여행은 당일도 가능하다.
시차도 없고 같은 동양인이고 발음은 다르지만 뜻이 같은 한자(漢字)문화권에다가 쌀을 주식으로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요즈음은 비자(VISA)가 없기 때문에 상호 방문하기도 수월해졌다.
거기다가 원화가 높게 평가되어 예전에 비해 10~20%정도 싸게 다녀올 수 있는 금전적으로 이득도 생겼다.
비행기는 곧 정상고도에 진입하고 좌석벨트 싸인이 커졌다.
짧은 비행시간이기에 가벼운 경양식이 제공된다.
음료와 빵, 그리고 커피가 전부다.
밖에는 구름이 솜처럼 펼쳐졌다.
시속 900km/h 정도 날고 있지만 그 속도를 느낄 수 없다.
그저 안락함뿐이다. 기장으로부터 기후에 대한 방송이 나왔다.
오이타 지방에 지금 눈이 내리고 있단다.
위도상 제주도보다 아랫 이기에 우리나라보다 훨씬 따뜻한 지방인데 지금 눈이 내리고 있다니…기상이변이 아닐까?
하지만 걱정보다 기쁨이 앞서는 것은 왜 일까?
온천욕은 추워야 제맛에다가 일본인들이 자랑하는 노덴부로(露天湯)의 참맛은 눈이 내려야 제격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일본 훗카이도(北海道)에서의 경험 때문이다.
눈 내리는 날 노천탕의 매력
“머리는 차게, 몸은 따뜻하게”라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건강 상식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에서다.
비행기가 착륙을 시도한다. 오이타는 작은 지방 국제공항이다.
국내선 위주로 운영되고 국제선은 서울과 상해만 취항하고 있는 소도시 공항이다.
정말 눈이 3cm정도는 쌓였다.
눈은 더 내리지 않았고 가끔 구름사이로 햇살이 내리고 있었다.
수속을 마치고 공항을 빠져 나왔다.
눈은 조금 내렸지만 기온은 영상인듯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도로는 눈이 녹아내려 질척일 뿐 미끄럽지 않은 상태다.
도로 주변에 푸르름이 그대로 남아있다. 동백꽃도 만개했다.
바닷가 작은 소도시.
아늑한 풍경에 여행자의 가슴도 푸근하다.
일단 숙소로 향한다.
바닷가를 볼 수 있는 작은 일본 전통식 여관의 모습을 갖춘 그리 크지 않은 호텔이다.
작지만 아름다운 모습. 깔끔하고 역사가 서려있는 숙소다.
일본에서 오래된 여관은 호텔보다 값도 훨씬 비싸다.
일본인들은 그런 문화를 즐긴다. 다다미가 깔려있는 방 그리고 주인이 밝은 미소로 안내하고 인사 나누는 그런 풍경을 즐긴다.
그리고 관광지 특히 온천지대에선 ‘유카타’라 부르는 가운을 입고 호텔내는 물론 주변 상가까지도 오갈 수 있어 편리하다.
관광객에 대한 일종의 배려인지도 모른다.
우선 짐을 정리하고 온천장으로 향한다. 탕내 유리를 통해 저 앞 태평양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깔끔하게 목재로 탕주변을 마감했다. 그리고 물이 넘쳐 흐른다.
단순 알카리천이라고 온천수의 성분도 표시해 두었다.
노덴부로(露天湯).
노천탕이 옆에 있다.
문을 열고 나간다. 하늘이 보이고 바람이 불어 온몸을 감싼다. 뜨겁게 달구어진 몸이 냉기로 수축된다. 냉탕 온탕을 번갈아 입욕하면 적절한 수축과 팽창으로 피부에 긴장을 주어 탄력을 유지하는데 플러스 효과가 있다고 한다.
몸은 뜨거운 온천물에, 머리는 바람이 오가는 허공에, 눈은 햇살 내리는 하늘을 쳐다보며 망중한의 시간을 보낸다. 참 휴식이다.
모든 것을 생각지 않기로 했다. 그저 잊어버리고 이상태로 눈을 감아본다. 부러울것 없는 순간이 된다.
모든 것을 버릴때 이런 감정이 되지 않을까?
삶의 걱정과 고뇌도, 꼭 잡고 있는 욕심의 끈도 이미 지나버린 쓰라린 과거도,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불안도 버리고 오직 오늘. 이순간만이 최상의 순간이라고, 기쁨이라고 자위하며 쉬고 싶다. 아니 잠들고 싶은 심정이다. 온천속 명상이다.
일본인들은 참으로 예의가 바르다고 늘 느낀다. 특히, 대중이 모이는 장소에선 그런 모습을 더욱 느낄 수 있다.
아이들도 동행하여 온천욕을 하지만 대부분 조용하다.
남에게 폐 끼치지 말라는 교육 덕분이리라.
탕내에서 뛰거나 물장구치거나 큰 소리로 떠드는 아이들을 볼수가 없다.
모두가 조용 조용하다. 그리고 사용한 수건이나 목욕용품들을 모두가 제자리로 돌려 놓는다.
바닥 구석에 버려진 수건이나 때타올은 볼수가 없다.
이런점은 우리가 배워야 할 모습이다.
대중탕, 찜질방 특히 고급사우나엘 가도 마구 버려진 수건들을 볼 수 있는게 우리의 현실이다.
모두가 자신이 사용한것만 정리하면 될것인데 잘되지 않는 이유는 무얼까? 습관일게다.
버리면 치우는 사람 있겠지하는 별 도덕적 부담감을 느끼지 못함 아닐까?
온천욕을 마치고 우리 일행은 좀 이른 저녁식사를 하러 벳부역 근처 생선초밥(스시)집을 찾았다.
스시(초밥)와 베이징덕(북경오리구이)은 이제 세계적인 요리가 되었다. 세계 어느곳을 가나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년말, 게다가 휴일이라 그런지 초밥집은 사람들이 많았다.
식당 몇 곳을 앉을 자리가 없어 돌아다니다가 겨우 한집에서 그것도 마지막 남은 방에서 식사를 할 수가 있었다. 가족단위 손님이 많았다.
한국사람들의 방문이 많은 모양이다.
별도의 한국어 메뉴를 가지고 왔다.
초밥의 가격도 한국 일식집 가격과 비슷하다.
원화로 환산해도 결코 비싸지 않다.
전에는 통상 1.5~2배 가까이 되었는데, 우리의 물가수준이 그만큼 높아진 것은 아닐까? 우선 생맥주로 목을 축이고 일본전통술인 따끈한 정종을 주문했다.
식사 나오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모두가 주문해야 준비하기 때문이다. 우리처럼 독촉해도 소용이 없다.
아니 독촉하는 사람이 잘못이다. 주방장이 서두름 없이 준비한다.
일본인들은 눈으로 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음식모양도 다양하다. 아니 예쁘게 만들어 먹기 아까울 정도다.
기다림과 예쁜 음식모습.
그러기에 식욕을 더욱 당기게 만드는지 모른다. 미리미리 주문한 덕분에 첫 번째 음식이 나온 이후에는 기다림이 없었다.
따끈한 정종과 함께한 스시(생선초밥).
맛과 정성으로 만든 음식덕분에 정말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다음날 이곳 저곳 일본의 풍물과 전시관 벳부의 온천 명소를 둘러 보았다.
그중에서도 바닷가라 그런지 이곳저곳에 활짝 피어난 동백꽃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광택나는 이파리에 새빨간 꽃잎. 일본 동백은 부숭부숭 여러겹으로 피는 것이 우리나라 동백과 다르다. 그래서 동백나무 밑은 봄날 벚꽃이 진것처럼 붉은 동백꽃잎으로 물들어 있었다.
일본인들은 년말에 ‘도시꼬시’라 하여 새해가 시작되기 전날밤 가족이 모여 우동, 소바(국수)를 먹는 풍습이 있다.
국수가닥이 길어 장수의 의미도 있지만 술술 잘 풀리는 새해가 되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큐슈온천여행.
따뜻함과 편안함을 함께 누린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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