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최한용과 茶한잔의 여유를…
가을날의 서정/ASA 공장장 최한용

휴일, 이른 아침 대둔산에 오릅니다.
동양화의 한폭, 아니면 신선이 노는 곳이라 표현해야 할까.
겹겹이 보이는 산자락 허리에 하얀 흰구름같은 안개가 바람타고 산 위로 느리게 느리게 오릅니다.

안개에 젖은 푸른 잎새가 바람에 파르르 흔들립니다. 그 흔들림으로 맺혔던 이슬이 방울 방울 떨어집니다. 동녘 하늘 태양은 밝아오고 그 빛 받아 하얀 안개는 산 위로 서서히 오르며 사라집니다.

햇살에서 이제 가을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봄볕엔 밭에 며느리 내보내고 가을볕엔 딸을 내보낸다고 했던가. 왜 그랬을까 이해가 간다. 가을볕은 화창함 그 자체다. 햇살이 뜨겁지 않다. 자주 내려준 비 때문에 계곡마다 물이 많이 흐른다.

겹겹이 내려오며 걸러주어 그럴까. 정말 맑고 깨끗하다. 신선하다. 아직 시린 정도는 아니지만 손에 느끼는 산속 계곡 물은 차다. 바위에 옷을 입힌 이끼도 한결 푸르고 촉촉하다

떡갈나무 잎새는 벌써 윤기를 잃었다. 일부는 나무아래부터 색깔을 바꾸기 시작했다.
단풍은 산 위부터 아래로 내려온다는 것을 이 산 위에서 나는 보았다.
산자락 아래는 아직 청정했는데 오르면 오를수록 식물잎새가 다르게 보인다.

특히 가을은 이렇게 북에서 남으로, 산 위에서부터 산 아래로 내려오며 찾아온다.
그래서 단풍의 절정을 표시하는 지도도 그려져 신문에 공표되기도 한다. 마치 물 따라 흐르듯이 그 내려오는 속도도 기온 차이에 따라 빠르게 변하며 가을을 재촉한다.

산을 내려왔다. 들녘은 황금색으로 변하며 모든 곡식들이 알알이 영글어 간다. 너무 자주 내린 비 때문에 웃자란 그들 모습이지만 역시 가을날의 햇살은 그들의 결실을 재촉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늘이 높고 푸르다. 맑은 햇살은 가을 들녘의 풍요를 기원해주는듯 산들바람과 함께 그들을 흔들어 댄다.

여기저기 새로운 허수아비가 꽂혔다.
영그는 곡식을 새들로부터 지키기 위한 수단인 듯 하지만 겁없는참새는 허수아비 팔에 앉아 날개짓 접고 쉬고 있다. 늘 움직이지 않는 모습에서 자기를 해치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아버린 모양이다.

옛날 우리 어릴 적엔 깡통을 여기 저기 매달아 한줄로 연결하여 가끔씩 당겨 흔들며 새를 쫓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소리 날 때는 뒤편 나무로 날아갔다가 다시 곡식위로 내려앉아 새들과의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곤 했다.

요즈음 시골 고향에 가보니 새들도 문제지만 더 큰 것은 사과·배를 까치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었다. 잘 익은 배와 사과를 까치가 쪼아먹어 상품성을 잃고 있었다. 농부 아저씨의 말씀을 빌리면 유별나게 잘 익은 좋은 것만 입질을 한단다.

그래서 스피커 시설까지 설치해서 까치 비명소리를 늘 틀어 주기도하고 잡은 까치를 줄에 매달아 놓고 겁을 주고 있었다. 며칠전 TV에서 본 것은 까치 박멸을 위한 정식 수렴허가를 받아 과수원 근처에서 엽사들이 총으로 까치를 잡는 모습도 본적이 있었다. 내 어릴 적엔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아름다운 속담도 있었는데 지금은 과수원에서 골치 아픈 대상의 조류가 되고 말았다.

가을 햇살 받으며 산자락아래 논과 밭길로 접어든다. 바쁠 것 없는 휴일 오후, 그 무엇이 나를 시골 농촌으로 끌어들인다.

아직 경지 정리가 되지 않아 꾸불꾸불한 논과 밭둑길. 그리고 계단식으로 유지되어온 작은 논과 밭, 저 아래 양지 바른 곳에 농가가 하나 보이기는 하는데 사람기척이 없다.

아뿔싸! 빈집이다. 스레트 지붕은 이끼가 자생할 정도로 오래 되었고 외양간 기둥은 비바람에 쏠리며 기울어져 있다. 창호지 달린 문은 비바람에 찢겨 열리어 있고 마당엔 잡초가 무성하지만 부엌엔 가마솥이 그대로 걸려있다. 사람이 떠난 지 1∼2년은 되는 듯 싶다.

그래도 집뒤 감나무는 주인 없어도 잘 자라 주황색 감이 주렁주렁 열렸다. 감나무 잎새는 단풍색으로 조금씩 변질되어 잎사귀 떨군다.

여름내 푸른 잎새에 가린 감이 이제 탐스런 주황색으로 변했다.
좀더 많이 햇빛받아 탐스럽게 열매맺으라는 듯 감나무 잎새는 다른 나무에 비해 일찍 낙엽을 떨군다. 벌써 몇 가지는 감만이 남았다. 스스로 자신의 종족 보존을 위해 햇빛을 잘 받도록 하기 위해 잎새를 버리나 보다.

식물도 자세히 보면 종족 보존을 위해 갖가지 아이디어를 내고 있다. 저 감도 탐스런 과육을 만들어 사람이나 동물에게 제공하는 대신 자신의 열매를 멀리 보내주기를 희망하는 듯 하다. 그 자리에 그저 떨어져 머물러 버리면 자신의 그늘 때문에 생존에 어려움이 있기도 하고 자기자식과 생의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풍나무 씨는 이 세상 어느 비행물체도 흉내내기 어려운 디자인을 가지고 바람타고 이 산 저 산으로 날려보낸다고 한다. 또 지나는 동물이나 사람의 옷깃에 묻어 씨앗을 멀리 보내는 식물도 있다.

제각기 살기 위해 온갖 전략들을 개발하여 최선을 다하는 듯 하다. 아니 삶의 본능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멸종하지 않고 종족을 이어가고 있으리라.

농촌 마을은 점차 사람들이 줄어가고 있다.

옛날 농업이 주된 삶의 근본이던 시절과 지금처럼 산업화, 정보와 시대로 변화되다 보니 모두들 도시로 도시로 떠난다. 농촌에서 삶을 지탱하기 위한 일거리도 문제지만 더 큰 것은 자녀들 교육 문제로 시골을 떠나는 것이 더욱 안타깝다.

시골 학교는 학생수가 줄어 교실과 교정이 텅 비었는가 하면 도심은 운동장을 좁혀가며 교실을 신축해도 2부제 수업까지 하는 실정이다. 이제 시골 초등학교의 옛날 분교는 모두 통합되고 그 곳은 예술가나 종교 단체들의 작업장이나 교육장이 되고 있다.

들녘을 걷는다. 맑은 가을 햇살이 따사롭고 부드럽다. 오랜만에 걸어보는 들녘 흙길이다.
일하는 사람 보기가 어렵다.

내 어릴 적엔 논둑의 풀도 깨끗이 깎았건만 지금은 그대로다. 그 당시는 예초기도 아닌 오로지 낫으로 하는 힘든 일이었지만 깨끗하게 깍았다. 지금은 그저 무성한 곳은 제초제를 뿌렸는지 누렇게 말라 버렸다.
연세 드신 노인들이 농사일을 하고 계시니 논둑, 밭둑, 풀을 깎을 여력이 없다.

바람이 분다.
들녘의 풍요로움이 바람 따라 실려오고 실려 간다. 넉넉함, 여유로움, 그런 것이 있어 가을은 향기롭다.
그 향기로움을 詩 한수로 적어본다.

벌써 가을이련가

아침 기온이 다르다.
열렸던 창문을 닫았다.
후덥지근하던 열대야 얘기는 사라진지 오래다.
새벽녘엔 가벼운 이불에 손이 간다.

청명한 하늘, 하늘은 높고 가볍게 부는 솔바람에
메밀꽃 하얀 모습이 출렁인다.
경사진 산자락 자투리 밭에 하얀 소금을 뿌려 놓은 듯
온통 메밀밭은 하얗게 꽃망울 터뜨리고
그 위에 날고있는 벌들의 소리가 요란하다.
막바지 겨울 양식인 꿀 모으기에 한창인가보다.

산자락 칡넝쿨 푸르름은 아직 그대로이고
맨드라미 두툼한 꽃술도 붉기만 하건만
길섶 코스모스엔 가을이 넘실거린다.
붉은 꽃, 연분홍 꽃, 그리고 흰 꽃.
실바람에 연약한 모습 하늘거리며
늦여름 보내고 초가을을 영접한다.

시골 농가 마당엔 붉은 고추 널려있고
짚으로 올려진 쉼터 정자 지붕 위엔
잘록한 조롱박이 하나, 둘 하얗게 익어간다.
태풍과 큰 홍수 비켜간 자리엔
알알이 벼이삭 고개 숙이고
맑은 햇살 따사로움에 노랗게 여물어간다.

푸른 잔디 위를 걷는다.
방아깨비도 뛰고 귀뚜라미도 뛴다.
농약 피해 살아남은 메뚜기 무리
"푸르르…"날갯짓하고 그 위엔
빠알간 고추잠자리 여유롭게 날고 있다.

금산신문  webmaster@igsnews.co.kr

<저작권자 © 금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금산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