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으로 돌아본 부산 범어사(Ⅱ)

부산시 금정구 금정산 동쪽 중턱에 위치한 범어사는 신라 제30대 문무왕 18년(678)에 의상대사가 세웠다고 내력에 적혀있다.

부산하면 범어사를 칭할 정도로 부산을 대표하는 사찰로 합천 해인사, 양산 통도사, 순천 송광사, 구례 화엄사와 더불어 한국 5대 사찰중의 하나답게 고색창연한 모습을 보여준다.

「범어사」라는 절 이름은 「동국여지승람」에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단다.
한 마리의 금빛나는 물고기가 오색 구름을 타고 하늘(梵天)에서 내려와 산속 우물에서 놀았다고 하여 「금샘(金井)」이라는 산 이름과 하늘 나라의 고기(梵魚)라고 하는 절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평일 오전이라 진입로는 크게 붐비지 않았다.
곧바로 절집 아래 주차장까지 갈 수 있었다.
차를 주차하고 내렸다.

일주문을 향해 걸어 오르는데 엿과 과자를 파는 노점상이 하나 있었다.
그 주위에 사람들이 몇몇 모여 손바닥에 과자 부스러기를 놓고 손을 들고 있었다.

새를 부르고 있었다.
산속에 눈이 쌓이지도 않았는데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곤줄박이」가 먹이를 얻기위해 주변에서 날다가 사람 손위의 먹이를 물고 쏜살같이 날아간다.

생명을 담보로 한 먹이 쟁취.
조금은 슬퍼 보이지만 사람과 새가 공생하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나도 그 대열에 동참했다.

땅콩 부스러기를 손바닥 위에 놓고 손을 높이 들자 곧바로 어디선가 곤줄박이가 나타나 손위의 먹이를 물고 옆나무로 날아간다.
그리고 그뒤 또 한 마리…줄지어 물고 간다.

붉은 등 가슴털이 있는 작은새 「곤줄박이」.
손바닥에서 가냘픈 새의 발자국 느낌도 느낄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앉았다가 날아가는 새.
사람이 위협의 존재로 느껴지기보다 친근함으로 다가오나 보다.

아니면 오랜기간 익숙해진 그들의 먹이 습성인지 모른다.
주변에 참새, 박새 등 다른 종류의 새 모습도 볼 수 있었지만 그들은 사람주변에 올 생각도 않는다.

카메라를 지참했더라면 이 아름다운 모습을 촬영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새롭게 느껴본 경험이다.

야생의 새와 잠시나마 친근해질 수 있었다.
잘 활용해 홍보하면 그것도 하나의 관광 상품으로 이용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지금 이름은 잊었지만 일본의 어느 산 정상에선 야생의 새들에게 모이를 주는 관광상품을 본적이 있었다.

금정산 중턱.
지금은 저 아래 절 입구까지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이곳은 돌도 많고 나무의 수령도 꽤 오래된 산속이다.

여름철이면 나무 그늘아래 불어오는 바람이 꽤나 시원할 것 같은 산 높고 물 흐름 좋은 명당자리다.

대부분 사람들은 절집에 가면 우선 대웅전에 오르기 바쁘다. 부처님 앞에서 무언가를 빌고 싶은 욕심 때문일게다.

하지만 절집의 매력은 주변 전각사이의 공간을 살펴봄이 아닐까?
기왕 절집에 왔으면 마음을 비우고 천천히 오르면서 돌계단 하나, 기왓장 하나까지 그 시대 그 모습, 역사성을 되뇌이며 걸어봄이 좋으리라.

「곤줄박이」재롱을 뒤로하고 절집으로 오른다.
범어사는 경사진 산자락을 그대로 활용하여 돌계단을 쌓고 맨 윗편에 대웅전을 모신 형태다.

진입공간, 일주문이다. 대부분 일주문은 두개의 기둥으로 지붕을 받치고 있는데 이곳 범어사는 굵은 4개의 돌기둥을 세워 지붕을 받치게 한것이 특징이다.

금정산범어사(金井山梵魚寺).
현판의 글씨체가 힘있게 쓰였다.
경내(境內)와 경외(境外)를 구분하는 일주문.
이제 이곳부터 사찰이 시작되는 곳이다.

몇 걸음 걸어 돌계단을 오르면 불전을 수호하는 네천왕을 모시는 사천왕문(四天王門)이다.
사천왕은 동방의 지국천왕, 남방의 종장천왕, 서방의 광목천왕, 북방의 다문천왕을 말한단다.

천왕문을 지나 불이문(不二門), 보제루(普濟樓)에 오르는 길과 계단.
양옆엔 수령이 오래된 굵은 스기목이 곧 바로 하늘향해 자라고 그 옆에는 아직도 푸른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대나무 숲에서 바람에 서걱이는 댓잎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보제루를 지나자 대웅전앞 마당이 나온다.
일주문으로부터 직선으로 이어진 직선의 마지막이다.
대웅전은 축대를 쌓아 올려 마당보다 훨씬 높게 자리잡고 마당옆에는 삼층석탑이 놓여졌다.

초파일도 아니건만 연등이 밖에 질서있게 아직도 매달렸다.
연등속에는 전구가 끼어있어 어두운 밤에는 불을 훤하게 밝혀주나 보다.
절 입구로부터 일주문, 대웅전에 이르기까지 오르는 길 대웅전 앞 광장 대부분을 연등으로 장식했다.

대웅전옆 건물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별도의 법회를 하나보다. 불경소리 은은히 들려오고 신도들은 연신 합장하고 절을 한다.
대웅전 내부를 살짝 들여다 본다.

불교건축의 아름다움을 새삼 느낀다.
아담한 교창(交窓)과 섬세한 조각장식이 눈에 확연히 메모된다.
최고의 목조 건물은 평가 받을만한 구조를 지녔다.

산바람이 내려온다.
추녀 끝에 달린 풍경소리가 고요를 깨우며 유난히 크게 울린다.
대웅전 좌측 큰 바위엔 뜻 모를 글자가 많이 새겨져 있다.

사람 이름인듯 싶다.
저토록 깊게 새겨 이름을 남겨두고 싶었을까?
누구나 읽을수는 있어도 누구인지 설명해주는 사람은 없다. 무슨 연유로 새겨 놓았을까?
한낮 볼품없는 낙서로 느껴짐은 나의 잘못된 판단일까?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지만 저렇게 바위에 새겨진 이름은 무엇을 남겼을까?
꼭 남겨야 했을까?

부산 범어사.
일정변경으로 덤으로 돌아볼수 있는 기회였지만 들리길 잘했다.

금정산이 포근히 감싸고 있는 천년고찰. 범어사는 우물속의 물고기란다.
산이 하나의 커다란 우물로써 절을 껴안고 절은 한 마리의 금빛 물고기가 되어 산을 눈부시게 만들었다.

겨울 동백잎이 푸르고 꽃은 짙은 분홍색이다.
울타리, 출잎구 주변, 전각주변에 붉은
동백꽃이 찬 바람에 떨며 아름다움을 표출한다.

주변엔 등나무도 벚나무도 많다.
꽃피고 새가 우는 따뜻한 봄날.
봄꽃향기, 절집의 향기 찾아 다시 오고 싶다.

그늘진 계곡 사이, 사이로 걷기도 하고 꽃도 보면서 무거운 내 마음도 이곳에
내려놓고 가야겠다.아니 버려야겠다.
비워야겠다.

동백꽃잎 아름다운 부산 범어사.
그 향기는 맑은 바람과 함께 지금도 내 마음에 잔잔한 물결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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