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1월이 시작 되었다.
늘 되새기고 지나버리면 후회하지만 시간의 흐름은 참으로 빠르다. 아니 늘 같은 시간의 흐름이지만 자꾸 빠르게 느껴지는 것은 왠일일까.
벌써 나이듦의 징조일까? 마음은 청춘이고 생각은 늘 그대로이건만 세월의 흐름엔 쉼이 있을 수 없나 보다.
자기가 자신을 보아선 잘 알수 없는게 세월의 흐름인 것 같다.
가족은 늘 보기 때문에 잘 모른다. 하지만 정말 오랜만에 소식을 들으면 벌써 그렇게 되었나 싶다.
친구의 첫딸 돌 잔치에 참석했던 기억이 아직 머리에 남아 있는데 엊그제 청첩장을 받았다. 24년이 지난것이다. 옛말에 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고 했는데 벌써 그사이 두 번 반이나 바뀐 세월의 흐름이었다. 그동안 만나지 못한 인연이 그를 성년으로 성장시켰고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해진다.
벌써 가을이 간다. 2004년 가을도 다시 올수 없는 하나의 지난 역사로 묻어진다.
늘 푸르던 잔디도 누렇게 변했고 아침이면 그 풀숲에 하얗게 서리가 내린다. 풍요롭던 들녘도 이젠 모두 거두어 들이고 빈들이 되어 버렸다.
주황색 감도 누군가가 다 따버리고 앙상한 검은 가지만이 다가올 겨울 준비를 한다. 한, 두알 남은 감은 날 짐승들을 위해 남겨둔 까치 밥이라 했던가?
금년 가을 단풍은 유난히 아름다웠다.
여름내 풍부하게 내려준 빗물, 충분한 일조량, 조금 늦은 듯 찾아온 추위. 그 모두가 하나로 합성되어 전국을 아름다운 산하로 만들었다.
이곳 대둔산 단풍도 몇 년만에 처음보는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잎새 하나 하나가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들이 모여 능선과 계곡, 산하를 꾸민 모습은 절경을 이루었다.
비단으로 쌓아 올린 금산. 굽이굽이 계곡과 능선을 이루고 기암절벽과 어울어진 만산 홍엽은 저 유명한 내장산 단풍도 부럽지 않을 만큼 충분한 것이었다.
특히 대둔산 오르는 관광지 입구도 아름다웠지만 그에 못지 않게 뒤편 태고사로 오르는 산자락도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저수지에 그득한 물. 살랑 살랑 바람결에 물결은 미동치고 그 아래 햇살 내리니 반사 되는 물빛은 아침이슬에 머문 햇빛처럼 영롱하게 빛난다. 잘 포장된 구불 구불한 도로, 저위 골프장까지 내려온 단풍모습은 한폭의 풍경화다. 단풍나무, 소나무, 갈참나무 등 여러 수종이 나름대로 싹을 틔워 살아가면서 아름다운 잎새를 만들고 또 떨군다.
움푹 파여진 곳엔 벌써 낙엽이 쌓였다.
절집을 향해 오르며 상쾌한 기분을 한수 시(詩)로 적어 본다.
태고사(太古寺)가는 길
저수지 물길따라 절집가는 길
산 자락 아래까지 가을이 내려 앉았다
아니 머물렀다. 온 산이 불탄다
가을 산길이 이토록 아름다울수 있을까?
구비구비 계곡따라 능선따라
단풍 물결이 흘러 내린다
눈은 아름다운 단풍잎새에 매료되고
청량한 산속 바람은
시원하게 내 가슴을 적신다
절집 찾아 가는길.
오르는 산행길 힘들기 보다
낙엽 밟는 재미에,
흔들리며 떨어지는 잎새 모습에,
가을 산속 은은한 향기에
발걸음은 마냥 가볍다
가을은 그렇게 산에 머물고 있었고
풍경소리 귀를 스치니
절집은 저만큼 와 있었다
이렇게 가을날 산에 오르며 낙엽 밟는 소리 듣고 바람에 일렁이는 마른가지 움직임을 보면서 내 어린시절 생각에 잠긴다.
충청도 두메나 산골 우리집 뒤편 산에는 유난히 큰 참나무가 많았다.
때문에 사슴벌레도 많고 도토리도 많았다.
이런 가을날에는 온 식구가 떡메들고 참나무를 두드리면 도토리가 우르르 우르르 쏟아졌고 우리는 풀섶을 헤치며 주워 모으기 바빴다.
이렇게 주워모은 도토리가 가을 끝자락이면 다섯, 여섯 가마니 정도 되었다. 반쯤은 팔아 비용으로 쓰고 반쯤은 도토리 묵이나 부침개로 만들어 부족한 식량에 대응하기도 했고 손님이 오시면 별식으로 내 놓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시골에도 보일러로 난방을 주로 하지만 그 당시에는 오로지 땔감에 의존하던 시절이었다.
참나무가 많다 보니 이파리도 많이 떨어졌다.
그래서 우리 꼬맹이들은 지게에 가마니를 지고가서 갈쿠리로 가랑잎을 담아와 땔감에 보태곤 했다. 지금 시절이라면 낙엽속에 나뒹구는 것이 낭만적일지 모르지만 그 당시는 노동이었다.
가랑잎을 가마니에 긁어 담고 한사람은 더 많이 들어 갈수 있도록 가마니 속에 들어가 꾹꾹 밟다가 가마니가 넘어지면서 같이 굴렀던 기억도 새롭다.
그리고 여름철 참나무 숲속은 비가 내리고 나면 다음날 버섯이 많이 솟아 올랐다. 남들이 먼저 올까봐 이른 새벽 종다래끼 메고 버섯따러 나서야했다.
푸르스름한 청둥버섯. 노오란색의 꾀꼬리 버섯 갓버섯 등 늘 보고 먹던 버섯을 따러 다녔다.
지금도 알수 없는 것이 특히 독이 있는 버섯은 유별나게 윤기가 있고 색깔도 아름다웠다.
우리는 식용버섯과 독버섯을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배웠고 또 아버지 어머니는 그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들어오신 지식으로 구별 할수 있어 버섯을 먹고 잘못된 기억은 전혀 없다.
그리고 옛날 시골에는 여름철이면 파리가 참으로 많았다.
위생관념도 문제였지만 소, 돼지우리, 재래식 화장실 등이 파리가 생겨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버섯중에 작고 노오란 파리버섯이라는 독 버섯이 있었다. 그 버섯은 따로 따서 남은 밥과 서로 으깨여 접시에 놓아두면 그곳에 앉아 빨판으로 입을 댄 파리는 곧 죽어 버렸다.
현재 사용하는 파리채보다 또는 살충제(킬라)보다 더 파리를 잡는데 효과적이었다.
가을이 간다.
쓸쓸해진 들녘.
나무들도 하나, 둘 잎새 버리고 겨울 맞을 준비를 한다. 억새도 흰꽃씨를 바람에 날리며 삶을 접는다.
푸르던 모습이 갈색으로 변하고 이제 산도 차츰 속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푸른 잎새에 가려 보여지지 않는 계곡. 산자락도 마른 잎새 서걱이며 눈쌓일 날을 기다리는가보다.
이렇게 사계절은 어김없이 돌아가고 다시 겨울이 저 만큼서 기디리고 있다.
겨울.
춥지 않아야 하는데 걱정이다.
원유값은 계속 뛰고 난방은 기름 보일러 구조로 모두 바뀌어 다시 구들장 구조로 만들수가 없다.
산에 나무는 지천이지만 그 누구도 나무하려 하지 않는다.
어려운 경제에 난방비 부담은 큰 짐이 되는데 어찌해야 하나.
가는 가을을 붙잡을수도 없고 그저 답답한 가을날의 끝자락에서 한숨만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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