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자락을 찾아서(Ⅱ)

사성암,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다

구례 사성암은 얼마 전 KBS1에서 밤 9시 뉴스전(前) 배경화면으로 몇 번 방영된 적이 있어 그 모습이 내 머리에 남아 꼭 한번 가보고 싶던 곳이었다.

해발 530m의 오산에 있는 암자로 원효, 의상, 도선, 진각 등 4명의 고승들이 이곳에서 수도했다 하여 사성암이라 부른단다.

실제는 오산사 사성암이다.
차를 입구에 주차하고 가파른 시멘트 포장길을 10여분 오르면 바로 사성암이다.
오르는 길 양편엔 대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우후죽순이라는데 가랑비는 내리고 있었지만 죽순은 보이지 않는다.
아직 비가 멈추지 않아서 일까? 짧은 길이지만 너무 가파라서 숨이 찬다.

사성암엔 일주문, 사천왕문은 물론 넓은 마당도 없다.
바위 절벽에 까치집처럼 3개의 기둥을 세우고 약사여래불을 모시기 위한 절집을 예쁘게 2층으로 지었다.

금강산 내금강에 있는 보덕암 모습과 너무나 닮았다.
우선 마애 약사여래불이 있는 곳으로 오른다.

원효스님이 선정에 들어 손톱으로 그렸다는 사성암의 불가사의한 전설이자 자랑거리다.
약사 전 오르는 길목은 좁은 돌계단이다.
비 내리는 계단을 우산을 쓰고 오른다.

많은 불자들이 약사여래불을 향하여 절을 하고 있었다.
바위에 새겨진 약사여래불, 그 손톱자국 돌 틈에 금을 입혀 선명한 선(線)을 유지하고 있고 유리 창문을 통해 불자들을 내려다 보는듯한 자비로운 시선이다.

건물이 허공에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바치고 있는 것은 밖으로는 바위에 앉은 기둥 세 개뿐이고 안으로는 암벽에 기대어 구조물을 지탱한다.

약사전 밖에 있는 발코니 통로에 서서 저 아래 산자락을 내려다보면 그 아름다운 산 모습에 이곳이 얼마나 멋진 곳에 자리잡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조선일보에 연재되는 「조용헌 싸롱」 36명당(明堂) 에 보면 사성암은 “풍수의 산진수회(山盡水回)의 원리가 교과서적으로 나타나 있는 터이기도 하다.

산자락이 끝나는 곳을 섬진강이 반달처럼 둥그렇게 감싸면서 흐르고 있는 모습이 아주 볼만하다고 기록하고 있는 명당중의 명당이다.”라고 적혀 있다.

약사여래불이 있는 이곳이 사성암의 주된 암자다.
아직 대웅보전이 없다.

대웅보전을 짓기 위한 불사가 접수되고 있다는 안내판이 서있다.
장소는 좁지만 암벽아래 자리 잡은 요사채를 들어내고 그 자리에 짓는단다.

마당이 없어 조금은 어색할지 몰라도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공간이기에 어쩌면 더욱 아름다운 대웅보전이 될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옆 계단을 오르니 수령 800년의 귀목 느티나무를 만난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사성암의 역사와 함께한 느티나무, 그는 그곳에서 사성암의 어제와 오늘을 나이테에 적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권의 역사책을 만들듯이 느티나무는 수령이 오래되면 귀목이라 부르고 죽고나면 괴목이라 부른단다.

귀목나무를 뒤로하고 또 계단을 오르면 소원 바위와 산신각이 나타난다. 소원바위, 무슨 소원들이 그리 많을까?

누구나 이곳에 오면 소원 한가지씩 빈다는데…
그 옛날 뗏목을 팔러 하동으로 내려간 남편을 기다리다 지쳐 세상을 떠난 아내와 아내를 잃은 설음에 숨을 거둔 애절한 전설이 깃든 소원바위를 돌아가면 사람하나 겨우 빠져 나갈만한 도선굴이란 자연굴을 만나다.

바위 하나하나가 기암으로 만들어진 자리에 이해할 수 없는 동굴이 있다. 동굴 내부에는 얼마전까지 소원을 빌었는지 아직 촛불이 켜져 있었다.

키가 작아도 머리를 숙여야 하는 곳이 있고 때론 뚱뚱한 사람은 몸을 비켜서야 겨우 빠져 나갈 수 있는 자연굴이다.

그곳을 돌아 나와서 내려다보면 저 아래 펼쳐지는 구례, 곡성 평야가 한눈에 펼쳐지고 멀리 지리산 자락이 눈앞에 다가온다.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
구례 곡성 평야를 적시는 젓줄이다.

저 아래 펼쳐진 넓은 뜰.
그곳에선 우리들의 먹거리가 자라고 반달처럼 오산을 휘감아 도는 섬진강 물 흐름 따라 심성이 곧아진다.
그것을 굽어보는 사성암의 자비로움.

늘 흐르는 물은 새로운 물이다.
어제의 물이 같은 장소에서 흐를 수 없듯이 우리네 인생살이도 그들 물줄기와 같지 않을까?

세월엔 멈춤이 없다.
인생살이도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불만스런 날이라고 그 날을 뺏어낼 수 없듯이 우리들은 삶의 계단을 하나 하나 올라야 한다.
두 계단을 오르려면 무리가 따르고 반 계단을 오르려면 밟을 장소가 없다.

그렇다. 삶은 순리(順理)를 따라야 하는 것을 중생들은 늘 욕심만 채우려 한다.
더 많이 가져야 하고, 남보다 더 잘나야 하고 더 많이 내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속성.
그런 ‘더’라는 굴레속에 평생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오늘도 허덕이는 인생이 아니련가.

아마도 스님들은 이곳에서 저 아래 속세를바라보면서 그런 한탄을 하실지도 모른다.
삶은 본래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을(空手來, 空手去) 무엇이 그렇게 아까워 그렇게들 살까 하고…

산 아래 저 길위의 모든 차들.
차량들이 질주한다.

빗길이지만 모두들 바쁘기만 하다.
무엇을 향해 우리는 질주하여야만 하는가.
앞만 보고 달리는 브레이크 없는 인생들이다.

이런 암자를 찾아오면 그런 삶의 여유를 느끼면서 내 마음의 행로도 한 템포 느리게 하여야 한다고 늘 다짐하지만 그것은 그날뿐이다.

그런 마음으로 법정 스님의 “무소유 삶”을 일행들과 얘기 하면서 아름다운 사성암을 내려온다.
대웅보전이 새롭게 자리 잡고 오산사로 거듭 태어날 때쯤 꼭 다시한번 찾아오리라.

맹세해 본다.
그때는 좀 더 성숙된 마음으로 삶을 찬미하면서 여유롭게 오르리라.

내려오는 길. 가파른 경사길이라 조심해야 한다.
브레이크만이 아닌 엔진 블록(저단기어 사용)을 사용하라는 팻말이 도처에 붙어 있다.

계곡물은 내리는 빗줄기와 함께 산속의 새로운 울음을 만들어 낸다.
‘좔좔’흐르기도 하고 바위를 타고 떨어 지면서 물보라를 만들기도 한다. 아름답다.

자연은 자연속에서 인간의 손댐없이 스스로 꾸려 나갈 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

하천을 바로잡으면서 유속이 빨라져 또 다른 피해를 만들고 계곡 천변에 도로를 만들면서 하천 폭을 줄여 홍수시 좁아진 내폭 때문에 또 다른 큰 피해를 남기게도 한다.

자연은 자연대로 살아가도록, 이어가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자연손상의 가장 큰 적은 역시 우리 사람들이다.

계곡을 내려와 사성암의 멋진 모습에 아쉬움을 남기면서 우리는 다시 운조루(雲鳥樓)로 향한다.

조선 영조52년(1776년)에 당시 삼수부사를 지낸 류이주가 세운 99간(현존73간)의 대규모 주택으로 조선시대 선비의 품격을 상징하는 품자형(品字型)의 배치 형식을 보이고 있는 양반가 저택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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