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택 운조루와 칠불사 아자방’을 보고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에 피어오르고 새들은 날기에 지쳐 둥우리로 돌아오네」의 문구에서 첫머리 두 글자를 취해 이름 지었다는 운조루(雲鳥樓).
현존하는 조선시대 양반가 고택이다.
운조루는 좌청룡, 우백호의 산세와 함께 내수구(앞도랑)와 외수구(섬진강)가 제대로 되어 있는 명당 터라는데.
운조루가 자리한 곳은 평범한 농가 마을이었다.
입구에 차를 세우고 들어가려고 하니 1인당 1,000원씩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글쎄, 찾아오는 것도 반가울텐데 입장료라니, 잠시 거부의 기분이 들었지만 멀리서 왔기에 입장료를 지불하고 대문에 들어선다.
대문위에 매달아 둔것이 호랑이 뼈라는데 무슨 의미인지 아는 사람이 없다.
옛날 머슴들이 살았을만한 1자형 바깥행랑채와 T자형 사랑채, ㄷ자형 안채, 안마당의 곡간채가 연결된 일체형 구조의 집이다.
류이주의 후손들이 지금도 이집에서 살고 있는 듯 안채에선 아이들 재잘거리는 소리와 뒷곁엔 빨래가 줄줄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주택관리 상태는 다소 미흡했다.
정리정돈 및 청소상태, 관리상태가 불량했다. 유지보수가 후손들의 힘으로 어렵다면 문화재 관리국의 도움이라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잡초가 마음대로 자라고 건물엔 손때 묻은 흔적이 없다.
반짝임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여기 저기 새들이 날아들고 안채 처마 밑엔 제비가 새끼를 부화시켜 키우고 있었다.
진흙을 물어다 처마 밑에 반원형으로 지은 제비집.
노란 주둥이의 새끼 제비는 엄마, 아빠 제비가 물어다 주는 벌레를 달라고 입을 크게 벌리며 보챈다.
정말 오랜만에 대하는 제비집이다.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우리 어릴적엔 시골 집집마다 날아들어 새끼를 낳고
키워 다시 강남으로 돌아갔는데 요즈음은 시골에 가도 볼 수 없는게 제비다.
이집 곡간에는 보기 드문 목독 뒤주가(나무로 만든 항아리) 있다.
그 마개에는 他人能解(타인능해)라는 글씨를 써두고 누구나 가난한 이웃사람이 쌀을 꺼내 끼니를 이어 갈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음덕을 베풀고 적선을 하는 것이 가진 자의 도리임을 보여주는 문중의 상징물이란다.
경주 최씨 가문에 십리밖까지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 아니겠는가?
서기 1776년 지었다고 하니 현존하는 230년이나 된 고택(古宅)이다.
동학과 여순 반란 사건.
6·25의 한가운데인 지리산 자락에 있었으면서도 불타지 않은 이유는 이처럼 남을 배려한 조선시대의 선비정신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곳 저곳 고택을 둘러본다.
그 당시 저 처럼 굵은 나무는 어디서 구했을까?
천정을 높게 보이기 위해 굴곡진 나무라든지 툇마루 목재를 보면 그 건축물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댁 주인이 이용했다는 우마차 수레바퀴도 사랑채 마루 아래 잘 보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당 한켠엔 알 수 없는 나무가 한 그루 있어 관리인에게 물어 보았더니 「위성류」라는 나무란다.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선물로 받아와 심겨진 나무로 류씨 집안의 자랑거리란다.
향 때문일까 작은 꽃망울엔 벌들이 ‘윙 윙’거리며 꿀 따기에 정신이 없다.
대문밖에는 작은 연못이 있고 그 연못엔 연꽃이 자라고 있었다. 중간에 돌담을 쌓아 작은 섬 처럼 만들고 다리를 놓아 양반들이 휴식을 즐기던 곳으로 이용된 듯 보였다.
한그루 소나무도 아름답고, 하지만 집주위에 정리되지 못한 비닐하우스라든가 길옆 정자에 걸린 주차금지란 팻말 등은 방문자들의 마음을 서글프게 만들었다.
좀더 세심하게 관리하고 유지 보수를 했으면 하는 작은 마음이 들었다.
운조루를 뒤로 하고 우리 일행은 하동 화개 장터를 거쳐 칠불사로 이동 중이다.
그 유명한 칠불사 아자방(亞字房)을 보기 위함이다.
조영남의 「화개장터」노래로 더욱 유명해진 곳.
‘있을 것 다 있다’는 화개장터를 지나 하동 차밭 마을을 거쳐 칠불사로 오르는 길.
쌍계사 벚나무 터널을 지나면서 계곡은 아래로 아래로 흐른다. 나는 지금까지 그저 우리나라에서 차밭 하면 보성 녹차 밭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하동 차밭도 보성에 못지않다고 한다.
오르는 길목에 거북이 등처럼 펼쳐진 차밭이 경사진 산자락에서 차 잎을 키우고 있고 도로변엔 찻집이 즐비하다.
시간이 있다면 녹차 한잔 우려 마시면서 하동의 차맛을 음미하고 싶지만 그럴만한 시간이 없어 그저 눈으로만 보고 길을 재촉한다.
길옆 쌍계사는 한번 방문한 적이 있어 곧바로 칠불사(七佛寺)로 향한다. 굴곡진 길을 올라 ‘지리산 칠불사’라 쓰여진 일주문에 도착했다.
칠불사는 쌍계사 북쪽 20리 되는 곳인 지리산 토끼봉(1533m)아래 800m 고지에 있는 절이다.
산허리에 구름이 걸려 있는것을 보아도 꽤 높은 곳임을 금방 알수 있다.
전설에 의하면 선사옥보를 따라 출가한 가락국 수로왕의 7왕자가 지리산에 운상원을 짓고 수행하여 6년만인 103년 8월 보름에 성불했기 때문에 칠불암으로 고쳤다고 한다.
칠불사는 1948년 여순반란군 토벌때 불에 타버려 다시 지었다고 한다.
일주문 주차장에서 약 2~300m 걸어 올라야 칠불사를 만날 수 있었다.
높은 산이라 그런지 습한 기온 때문인지 나무들마다 푸른 이끼가 자라고 있었고 절앞에는 산위에서 흘러 들어온 물론 이루어진 작은 연못이 있었다.
하지만 웬지 모르게 물은 탁하기만 했다.
한적한 칠불사(七佛寺).
계단을 올라 대웅전으로 향한다. 어느 중년의 보살님이 합장을 하고 대웅전을 돌고 계신다.
TV에서 보던 탑돌이처럼 엄숙함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사찰은 이렇게 언제나 엄숙함과 경건함이 존재해 방문자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기도 한다.
대웅전 좌측에 그 유명한 아자방(亞字房)이 복원되어 있었다.
정진중이란 안내글 때문에 들어 갈수도 없고 유리창을 통해 그 내부를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담공선사가 선방인 벽안당(碧眼當)건물엔 아자(亞字)와 형(型)으로 구들을 놓았는데 한번 불을 때면 석달이상 따뜻했다고 한다.
탁월한 과학성을 자랑하고 있어 1979년 세계 건축협회에서 펴낸 ‘세계 건축 사전’에도 수록 되어있다고 한다.
어릴적 내 살던 초가집 생각이 난다.
그 당시는 대부분의 농가 집들이 아궁이에 불을 지펴 구들장을 달구어 난방을 하는 온돌방식이었다.
따라서 초저녁엔 뜨겁고 새벽녘엔 차가워 지는 것이 상례였다.
하지만 어떤 과학적 근거로 구들을 놓았기에 3일도 아닌 석달씩이나 구들이 온기를 유지하고 있었을까?
이해가 가질 않았다.
넓은 칠불사 경내를 돌아보면서도 그 의문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초기 당시의 벽안당은 불타 없어졌고 새로 복원 했다고 하니 한번 과학적으로 증명해볼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건축학계의 논문감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칠불사를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간길을 돌아 내려온다.
깊은 계곡, 푸른 숲, 맑은 물, 벚나무 터널, 경사진 차 밭, 모두가 아름다운 한폭의 그림이다.
비안개는 산허리에 걸쳐 있고 초록은 싱그럽기 그지없다.
비는 그치고 구름 틈으로 햇살이 내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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