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고단(老姑壇)에 오르는 길
노고단으로 향하는 길.
구례 화엄사는 몇 번 들린적이 있기에 뒤로하고 천은사를 들려 노고단에 오르기로 했다.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된 이후 사찰측과 문화재 관람료 시비가 끊이질 않는 요즈음.
지리산도 예외가 아니였다. 사찰엔 들리지 않는다 해도 관람료는 내야 한단다.
입구를 막고 있으니 방안이 없다. 1인당 1,600원씩 문화재 관람료를 지불하고서야 차량은 진입할 수 있었다.
진입로 입구에 지리산 3대 사찰중의 하나인 천은사(泉隱寺)가 있다. 관람료를 지불했기에 바쁘지만 잠시 들려 풍경소리라도 듣고 가야겠다.
주차장 옆 일주문을 통과해 본전으로 향한다.
전설에 의하면 단유선사가 절을 중수할 무렵 절의 샘가에 큰 구렁이가 자주 나타나 사람들을 무서움에 떨게 하여 한 스님이 용기를 내어 잡아 죽였으나 그 이후 샘에서 물이 솟지 않았다.
그래서 샘이 숨었다는 뜻으로 천은사(泉隱寺)라 이름 지었단다.
절에 다가가자 계곡물 소리가 요란하다.
지리산 깊은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이 큰 물줄기를 만들며 천은사 앞쪽으로 흘러 내린다.
맑고 깨끗한 물 흐름. 숲을 지나고 바위를 넘는다.
저 아래 저수지가 보이지만 홍수철 대비 때문인지 물은 모두 방류하고 지금은 바닥만 드러낸 모습이다.
절 앞에 다가가면 계곡위에 무지개 다리가 놓여있고 그 다리위에 2층 누각인 「수홍류」가 있다.
계곡과 어울어진 누각은 천은사 앞쪽에 자리하고 있어 사시사철 아름다운 모습으로 천은사를 대표하는 풍광으로 각인되고 있다.
오르고 싶지만 오르는 계단이 없다. 아마도 방문객들의 잦은 오름 때문에 철거된 듯 보인다. 흔적만이 남았다.
사천왕문 계단을 오르면 고색창연한 넓은 사찰이 나타난다.
대웅보전이 아닌 극락 보전이다. 보제루, 팔상전, 웅진전, 그리고 관음전이 있다.
요사채는 절 뒤편 계곡에 숨어 있었다.
대문을 여닫는 자물쇠 구조가 특이해 재미 있었다.
계곡의 물소리가 요란해 바람에 우는 풍경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햇빛에 반사된 초록 잎이 싱그럽다.
절 내부를 돌아보고 다시 나오는 길.
일주문 좌측 산자락에 천은사 부도전이 있다.
무성한 잡초들로 부도와 비석들이 점령당한 듯 관리가 되지 않고 있었다.
낮은 돌담장이 둘러싸고 있긴 한데 잡초라도 깍아 주었으면 좋을듯 싶었다. 대신 뒤편 울창한 소나무는 부도전을 감싸고 있는 듯 고즈넉해서 보는 이의 마음을 그나마 평화롭게 해주고 있었다.
이제 노고단을 향해 경사지고 굴곡진 산길을 오른다.
간간이 내리던 비도 이젠 완전히 그치고 구름이 두둥실 떠가는 사이로 햇살이 내린다.
차창을 연다. 맑고 시원한 자연의 바람이 차안에 가득 담기고 또 빠져 나간다.
그리고 담기고…
아! 얼마나 신선하고 깨끗한 바람이던가.
가슴속 허파 깊숙한 곳까지 파고 드는 상쾌함이란.
오르는 길목엔 차량도 많지 않다.
주말이나 여름 휴가철 또는 가을 단풍철엔 이곳 도로는 주차장이 된다.
관광버스와 승용차로 뒤범벅이 되어 움직이질 않는단다.
애당초 이 도로를 개설할 때부터 환경론자들의 반대로 말이 많았던 노고단 오르는 길이다.
그 말많던 노고단 길도 벌써 개설된지 20여년이 지났을 것이다.
그러고 나니 이젠 더 편해지려고 하는지 이곳까지 케이블카 설치를 검토중이라는 어느 분의 말씀이다.
화엄사에서 노고단 오르는 길은 참 지루하게 느껴지는 길이다.
아주 옛날 오른적이 있긴한데 워낙 힘들고 지루했던 기억만 남았다.
그 당시는 물론 이 길이 없었다. 등산로 외엔 노고단에 오를 수 없었던 시절이다.
차는 가파른 고개 길을 쉼 없이 오른다. 저기 시암재 휴게소가 보인다.
노고단 정상 주차장에 오르기 전 쉬어갈 수 있는 곳이다.
차도 쉬어야겠기에 주차를 하고 사방으로 탁트인 저 아래 산하를 내려다 본다.
보이는 것은 산뿐, 색은 온통 초록이다.
‘산(山), 그 아름다움에’
사람들은 왜 산에 오를까?
누군가는 그곳에 산이 있기에 오른다고 말했지만
오를 수 있는 매력이 있기에 오르지 않을까?
산에 오르면 누구나 마음이 넓어진다.
저 아래 펼쳐지는 산계곡과 대지를 가슴에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계곡과 계곡사이. 능선과 능선사이.
나무들이 무성하고 물이 흐르고 온갖 생명들을 품고 있는 산.
그 포용력에 매료되어 사람들은 오늘도 산에 오르는가 보다.
햇살이 간간이 내리긴 하지만 못다 없어진 안개가 산허리에 남아 운무를 형성했다.
바람은 위로 불어 오르고 초록 그늘 속에서도 여린 야생화는 신선한 꽃을 피웠다.
보아주는 이 없어도, 요소요소에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산(山)은 이토록 아름다운 자원이 된다.
짙푸른 녹음장막으로 햇살하나 들어갈 틈도 없어 보이는 곳에서도 작은 풀들이 습기를 머금고 파릇 파릇 생(生)을 이어 간다.
그리고 숲 뿐이 아닌 동물들도 저 보이지 않는 그늘 속에서 그들 나름대로의 생을 이어가며 번식하고 약육강식의 자연법칙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시암재 휴게소에서 휴대폰을 열었다.
맑은 바람과 초록의 싱그러운 모습을 벗에게 알려 주기 위해 전화를 건다.
참으로 문명이란 좋기도 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이런 산위에서 거침 없이 연결되는 전화, 통화음도 시내와 다를 바가 없다. 물론 통신회사 에서 기지국을 설치했기 때문이겠지만 참 좋은 세상이 되었다.
지리산자락 뿐이 아닌 세계 어디서나 통화 되는 세상이 되었으니 문명의 발달은 우리네 삶의 수준이나 질을 한층 올려준 일등공신이다.
너무 신선하고 풋풋한 바람.
초록 잎새들이 뿜어낸 산소는 여행자의 지친 가슴을 씻겨주기에 충분하다.
시암재 휴개소를 떠나 노고단 정상을 향해 오른다.
이정표가 보인다.
천왕봉 25.5km, 반야봉 5.5km.
화살표가 방향을 제시한다.
지리산 종주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루지 못하고 꿈만이 아직 남았다.
그보다 더한 백두대간 종주도 꿈꿔 보았다.
토, 일요일, 이틀간 강행한다면 몇 년 만에 종주할 수 있을까?
대략 2,3년은 걸릴 것이다.
그저 꿈으로 그려본 일정이 되었다.
무리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백두대간을 종주한 사람들의 여행기록은 많이 읽었지만 스스로는 그 대상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몇 년전 일본 「요미우리 신문」에 한 일본의 젊은 여성이 부산에서 서울까지 걸어서 탐방한 기사가 연재되기도 했고 한국에서도 그 내용이 책으로 출간된적이 있었다.
4차례 방문을 통해 부산서 서울까지 오로지 걸어서 간것이다. 대단한 인내력이 아닐 수 없다. 인내력도 중요하지만 하고야 말겠다는 각오가 더 큰것이 아니었을까?
한국 땅을 걸으며 문화를 배우고 오가는 사람들을 만나 서툰 말솜씨로 의사소통을 한 그녀. 고통이 있었기에 보람이 있었다.
서울시청앞에 도착해 꽃다발을 받기까지 모든 언론들이 그들을 주목했었다.
그렇다 불가능은 없다.
우선 백두대간 종주도 중요하지만 짧은 지리산 종주라도 계획세워 도전해 보려한다.
지금 지리산엔 등산로가 확연히 들어나 있어 길 잃어 헤맬리 없고 만일의 경우 전화가 가능하기에 문제될것 없다. 단지 하고자 하는 의욕과 달성하고 말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그것뿐이다.
지리산 노고단 (1,507m)를 지나며 각오해 보는 스스로의 마음가짐이다.
오른길 반대편으로 지리산을 내려온다.
곳곳에 카페와 펜션, 음식점이 즐비하다.
넓은 지리산 자락엔 세상을 등지고 방외 지사처럼 홀로 사는 사람들이 2,000여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들은 무엇에 심취했기에 이곳 지리산 자락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고 계실까?
무엇이 그들을 잡고 있을까?
일행은 칠선계곡 서암정사를 향해 악세레이터에 발을 올려놓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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