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엔 못다 핀 그리움이 있다

명절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설날과 추석, 두 명절이 우리들에겐 어릴적부터 기다림의 대상이었다.

아주 어릴적엔 주로 명절이 되어야 새 옷을 입을 수 있었고 맛있는 음식도 마음껏 먹어 볼 수 있는 날이었다. 배고픔과 남루한 옷의 그림자엔 늘 명절이라는 희망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기 한번 제대로 먹어 볼 수 없었고 늘 걸치는 옷들은 화려함 보다는 실용적인 몸 가리개였다.
그런 날들이 사라진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40년이 채 못 된 시절이다. 정말 지구 생성과정에 비하면 순간이 될지도 모르는 짧은 시간이건만 우리네 삶의 모습은 무척 빠르게, 엄청나게 변한것이 사실이다.

먹거리도 풍부해지고 삶은 모든 면에서 풍요로워졌다.
대가족 제도에서 자연스럽게 핵가족 제도로 변화되고 그 많던 형제들도 많아야 둘, 하나도 많다고 하는 시절이 되었다.

이맘때쯤 하얀 박이 초가지붕 위에서 익어가던 주거 형태는 이제 콘크리트 숲, 아파트로 많이 변해 버렸다.

프라스틱이 조롱박의 임무를 대행하고 개나리 봇짐지고 걷던 고개길은 탄탄한 4차선 국도로 바뀌었고 그 위를 자동차가 질주하고 있다.

배 꺼진다고 손자들의 과도한 뜀박질을 말렸는데 이젠 비만 때문에 돈을 들여가면서 몸관리를 해야 하는 시절이 되었다.

비만은 당뇨로, 당뇨는 합병증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어 국가에서 강조하는 건강관리 지침이 되었다.

예전 생활 속에서 걷고 뛰던 삶의 패턴이 이젠 별도로 걸어야 하는 생활로 바뀌어 버렸다.
자동차 타고 시장가고 3층 아파트에 오를 때도 엘리베이터로 오른다.

백화점엔 에스컬레이터가 쉼없이 가동되고 계단보다는 전동으로 오르내리는 구조로 건물이 바뀌어 버렸다.

사람들이 움직일 기회가 적어졌다. 아니 없어졌는지도 모른다. 음식은 기름지고 칼로리는 높아지고 덜 움직이는 삶이 연속되다 보니 모두들 살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말았다.

먹는데 돈 들이고 또 그것 때문에 생긴 비만을 줄이기 위해 돈을 투자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세상 속에서 쳇바퀴돌듯 모두들 바쁘게 살아간다.

그런 바쁨 삶속에서도 변하지 않은것은 아직 명절이라는 풍습이다.
고향을 찾고 가족들과 오랜만에 만나 차례지내고 성묘를 간다.

옛 삶의 터전을 찾아 가는 길.
그런 고향길은 늘 즐겁다. 아련한 그리움과 말 못할 가슴속 정(情)이 그립기 때문이리라.

고향가는 길은 차가 밀려도 짜증스럽지 않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가기 때문일까?

아니면 곧 마주할 그리움의 내 어린시절 삶터에 간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일까?
평소에 자주 갈 수 있는 길이지만 명절때 온가족이 가는 길은 그 무엇이 다르게 느껴진다.

고향 마을길로 접어든다.
부모님이 시골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참 오랜만에 찾아오는 길.

2차선 양 옆도로엔 열병이라도 하듯 간격을 맞추어 심겨진 해바라기가 환한 웃음으로 우리를 맞아주는듯 하다.

예년엔 주로 코스모스가 심겨졌었는데 마을에서 아마도 정성스럽게 심고 가꾸었나 보다.
높게 자란 키. 태양을 닮은 꽃모습.

노란 꽃잎으로 둥그렇게 핀 해바라기.
그 속엔 알알이 씨앗이 박혔다.
마치 벌집모양의 꽃안엔 벌들이 꿀을 따기에 바쁘다.

차량속도를 늦추며 긴 해바라기 가로수(?)를 감상했다.
이렇게 작은 꽃모습에서도 고향의 정이 듬뿍 느껴진다.
해바라기 길이 끝나자 정겨운 코스모스가 우리를 반긴다.

코스모스가 활짝 피었다. 잦은 비속에서도 그들은아름다운 꽃잎을 피어냈다.
산들산들 바람에 일렁이는 꽃길이 너무 정겹다.

이제 시골에도 초가집이 없다.
초가집을 보면 민속촌이라도 가야될 것이다.
초가지붕이 없어진지는 꽤 오래되었다.

새마을 사업과 연계된 지붕개량 공사는 아주 빠르게 바뀌어 갔다. 이엉을 벗겨내고 그 위에 스레트나 기와를 얹었다.
지금은 또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조립식 판넬로 지어진 집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젊은이들은 직장 따라 도심으로 떠나고 시골엔 나이드신 분들이 남아계시다 보니 고급스럽게 집을 짓기보다 싸고 빠른 조립식 건물이 많다.

우리 마을도 예외가 아니다.
60~70호 되던 마을이 지금은 20여호밖에 남지 않았다.
사람들이 떠난 옛집은 흉물스럽게 남아있다.

마당엔 잡초가 무성하고 문짝은 떨어져
바람에 일렁인다. 지붕한쪽은 벽이 무너져 비스듬하게 기울었다.

농촌을 떠나면서 정리하지 못하고 그대로 두고 간 집이다.
집도 사람이 살지 않으면 이상스럽게도 빨리 망가지는것 같다.

사람의 온기가 없어서일까?
아니면 보이지 않는 기(氣)가 있기 때문일까?
사람이 떠난 집은 몇년가지 못해 주저앉고 만다.

참 흉물스럽기 그지없다.
그 언젠가 저집도 알콩달콩 사람들이 살던 집이였는데…
사람이 떠난지 1년여 남짓. 그 집에선 작년 추석때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집 떠난지 1년만에 집은 들어가기도 섬뜩해질 정도다.
도시로 떠난 빈집. 마당엔 호랑이가 새끼를 처 나갈만큼 잡초가 무성했다.

방안에 있는 호마이카 장롱, 그리고 자개가 박힌 화장대.
그 언젠가는 누군가 그토록 갖고 싶었던 가구들이었으리라.

그 화장대 거울엔 아름다운 여인 모습이 아닌 누렇게 빛바랜 벽지와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옷가지 쓰레기가 비추어 지고 있었다.

빨래줄엔 빨래대신 멧새가 날개를 접고 쉬고 있다. 아무리 다시 찾지 않을 집이라도 정리라도 하고 떠났으면 좋았을 것을…
농촌의 빈집은 이토록 보기 싫다.

그 옛날 추억은 어디로 갔는가. 저 굴뚝에 검은 연기가 피어 올랐었는데…
마을을 한바퀴 돌아본다.
큰 변함은 없다.

사람이 떠난 것 외에는…
산자락 개간 밭은 예외 없이 다시 산이 되고 말았다.

일할 노동력이 없어 힘들고 천박한 곳의 전답은 묵고 있었다.
그 누구도 그곳에 곡식을 심으려 하지 않는단다.

가끔은 그 옛날 상답이라고 얘기 들었던 곳까지 잡초가 무성한 곳도 있었다.
소유주는 도심으로 가고 그 누구도 그곳에 경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벼 한포기 심을만한 곳도 서로 소작이라도 할려 했었는데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이젠 접은지 오래란다.

동남아 시장에서 수입되는 농산물 때문에 경쟁력이 없어 그저 힘닿는데 까지만 겨우겨우 농사짓고 있단다.

슬픈 일이다.
단순하게 벼 심고 보리심어서는 생계 자체가 어렵단다.

인건비는 오르고 농약과 비료대금 때문에 계산이 되지 않는단다.

별도의 특용작물이 아니면 어렵단다.
우리나라 농촌은 앞으로 어찌해야 되나.
개울가 천변 옆 마을회관.

깔끔하게 새로 지어진 건물이다.
정부 보조로 지었단다.
그 안에 경로당이 있다.

할머니 방, 할아버지 방으로 구분되고 마을 어르신 몇 분이 담소하고 계셨다.
73세 되신분이 제일 어리다고 하신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란 말이 있는데 지금은 70세 정도면 경로당에서 물 심부름 해야 한단다.

연세가 많고 적음이 문제라기보다
건강하게 사셔야 할텐데…
막걸리와 두부찌개를 주변식당에서 준비해 노인분들게 드리고 발길을 돌린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온데간데 없다는 옛 싯구가 머리를 스친다.

주변 산하는 숲과 나무로 울창해진것 외에 바뀐것은 하나도 없다. 단지 그립던 친구들의 모습을 볼 수 없고 만날수도 없다.

연못에서 여름이면 개 헤엄치고 개울가에서 송사리 잡던 그 친구들.
겨울이면 눈사람 만들고 산자락에서 눈썰매 타던 친구들.

가을이면 도토리 줍고 남의 산에서 도둑 밤 줍던 친구들.
고구마, 옥수수 서리해 불 피우면서 굽던 친구들.
봄이면 진달래 한아름 꺽어 먹던 친구들.

아! 그 친구들이 그립다. 그 시절이 그립다.
토실토실 여문 밤을 주으려 뒷동산에 오른다.

30여년전 참나무를 벌목하고 심겨진 유실수다.
밤을 줍기 위해 나무 밑 숲은 형님이 예초기로 미리 깨끗이 깍아 놓으셨다.

그래서 밤줍기에 좋다.
밤을 나무를 털어 따는게 아니다.

흔들리는 바람에, 때론 스스로 밤을 떨군다. 그저 밤나무 밑에서 주워 담으면 된다.
옛날처럼 가시 밤송이를 벌려 따갑게 밤을 뺄 필요가 없다.

여기저기 밤새 많이도 떨구었다.
금새 큰 비닐봉지를 가득 채운다. 줍는 사이에도 밤은 ‘툭툭’여기저기서 떨어진다.

아무도 가지 않은 밤나무 골. 그곳엔 지천으로 밤이 널려 있었다. 고향 찾아 밤도 줍고 산바람도 쏘이고 숲속의 향기도 느낀 그런 좋은 시간이었다.

이젠 머리에 희끗희끗 서리가 내린 친구들.
누구는 벌써 할아버지가 되고 할머니가 된 친구들.

추석명절이 되었지만 온가족이 떠난 친구들은 이곳에 오지 않는다.

그래서 만날 수 없다.
굴렁쇠 바퀴 굴리면서 달리던 마을길은 아스팔트 포장으로 바뀌어졌고 옛 코스모스 길은 변함이 없건만 그저 못다한 그리움만이 고향엔 피어나고 있었다.

고향엔 늘 못다 핀 그리움이 아쉬움이란 꽃으로 피어나는가 보다.

금산신문 webmaster@ig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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