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맛, 그리고 코스모스 꽃길

가을이 왔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다.

말만 살이 찔까?
아니다. 우리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다.

여름철 무더위로 지친 몸에 기력이 살아나면서 식욕을 돋운다.
일상의 기온, 시원한 바람, 높고 푸른 하늘, 결실의 계절은 우리들의 입맛을 당긴다.

풍성한 과일이 좋고 황금빛 들녘도 알알이 여물어 거두어 들이는게 가을철이다. 언제나 가을은 이렇게 먹을것이 넘쳐난다.

너무 풍요로움 삶은 이제 과잉 영양섭취로 비만을 걱정하게 되었고 살을 빼기 위해 많은 돈을 투자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헬스클럽이 여기저기 생겨나고 아파트 주변 하천가 오솔길은 걷는 사람들로 붐빈다.
산(山)도 등산객들로 붐벼 휴일에는 서두르지 않으면 하산(下山)길이 막히는 곳도 많다.

그래도 이렇게 스스로 운동하고 걸으면서 하는 운동요법은 정말 좋다. 하지만 약물요법이나 의술에 의한 다이어트는 몸에 무리가 가고 오히려 몸을 망치는 결과가 되기도 한다.

최상의 방법은 적당히 먹고 적당히 운동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그 ‘적당히’란 말이 어렵다.

맛에 이끌려 과식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몸은 무거워지고 무거워진 몸은 스스로 덜 움직이는 편안함에 길들여져 비만으로 복부가 늘어나는 악순환에 접어든다.

늘어난 체중은 더 많은 영양을 요구하고 그에 맞추다보니 늘 과식과 맛있는 육류나 튀김 같은 기름진 음식에 입맛이 맞추어져 점점 그 유혹을 뿌리치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가을은 마냥 즐겁기만 하지 않은 계절이라고 불평하는 사람들도 있다.
44size를 입어야 한다는 젊은 여성들 말이다.

하지만 가을의 전설, 전어(錢魚)맛을 알고나면 그냥 지나칠 수 없단다.
내일 당장 산수갑산을 갈망정 일단 먹고 보아야 한단다.

전어의 맛을 찬미하는 표현도 많다. 얼마나 맛이 있었으면 그토록 많은 말들이 생겨났을까?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만든다는 전어’
‘가을 전어는 깨가 서말’

‘전어는 며느리가 친정간 사이 문을 걸어 잠그고 먹는다.’
‘자살을 위해 강둑에 섰던 사람도 전어 굽는 냄새에 마음을 돌린다.’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그런 전어의 맛을 찾아 세상 살아가는 재미로 모이는 동료 몇분과 횟집을 찾았다.
가을 전어는 지금이 제철이다. 통통하게 살 오른 전어.

섬세하게 회를 뜨기보다 투박하다 싶을 정도로 두툼하게 썰어야 그 특유의 찰진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예쁜 그릇보다 투박한 막그릇에 대충 던져 넣은 듯 담겨진 것이 더 어울린다.
물론 세꼬시처럼 뼈째 썰어야 함은 물론이다.
전어의 고소함은 뼈속에 배어있기 때문이다.

고추냉이를(일명 와사비)푼 간장 소스나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전어는 다진마늘, 고추, 참기름 등을 섞은 된장에 찍어 먹어야 제맛이다.

쌈으로 먹을 때는 상추보다 깻잎이 더 좋은 느낌이다.
소주 한잔 마시고 뼈가 씹히는 전어 쌈을 안주로 먹으면서 마음 좋은 벗들과 나누는 삶의 얘기는, 밤이 깊어도 끝날 줄 모른다.
한잔에 또 한잔…

왜일까?
마음이 통하고 정이 느껴지고 편안함이 있기 때문이다.
가을이 깊어가기 전 몇 번은 더 마시고 먹어야 할텐데…

전어(錢魚)는 돈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다고 해서 돈 전(錢)자를 쓴다고 한다.
일반 생선회에 비해 값이 저렴한 편이지만 최근 가을 전어의 맛이 과잉 소개되면서 점점 귀하신 몸이 되어가고 있는게 사실이다.

밤은 깊어가고 소주의 취기가 느껴질때쯤 출출해진 배를 채우려면 회보다 전어구이가 최상이다.
전어구이는 맛 이상으로 향에 더 매력이 있다.

고소한 냄새가 1km 밖까지 퍼질 정도란다.
전어에 칼집을 내고 굵은 소금을 뿌려가며 숯불에 얹어 굽는게 최상의 맛이다.
노릿한 기름이 전어 전체에 좌르르 흐른다.

먹을 때는 머리부터 먹는게 좋단다.
굽는 과정에서 나는 연기가 머리에 가장 많이 흡수되여 고소함이 집중된다는 횟집 주방장의 설명이다.
그래서 어두일미(魚頭一味)란 말이 생겼는가?

전어는 영양학적 측면에서도 가을 보약이라 불릴만큼 뛰어나고 피로회복과 피부미용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한방에서는 장을 깨끗이 하고 「식탁위 소화제」라 불릴 정도로 위를 보호하고 기능이 뛰어나다고도 한다.

너무 심했나?
가을 전어의 평가가…
누가 알면 전어 양식장이라도 하는 줄로 아는 것은 아닌지…

전어 향기보다 사람들의 향기가 더욱 그리워지는 가을이다.
가을이면 웬지모르게 쓸쓸해지는 것은 떨어지는 낙엽을 연상하기 때문일까?
풍요로운 가을.
저 푸른 창공을 향해 전어 회 한 점과 소주한잔으로 삶의 스트레스를 날려 보자.

가을은 지루한 비와 함께 오는가 했더니 그렇게 속절없이 짙어만 가는가 보다.
맑은 날도 며칠, 주말엔 태풍 나리와 함께 또 많은 비를 뿌리며 전국을 물바다로 만들었다.

잠시 비 멈춘 길을 따라 나섰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길섶엔 코스모스가 피기 시작했다.
아직 좀 이른 꽃길이다.

피지 않은 꽃망울이 더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바람에도 그들은 고개 숙이지 않았다.

가녀린 코스모스.
바람에 일렁이는 모습이 애처롭게 보이기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바람에 부러진 코스모스 대궁은 없다. 보이지 않는다.

시련 속에서도 꿋꿋이 자신을 지켰나보다.
아니 가녀린 모습이란 내 눈에, 내 마음에 비추어진 모습만인지도 모른다. 편견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속으로 나는 ‘강하다’라고 소리치는 듯 했다.

코스모스.
그들은 거꾸로 바람을 즐기는지도 모른다.
‘살랑살랑’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찾아주는 벌들에게 ‘어서오세요’하며 손짓하는 것은 아닐까?

붉은 꽃, 분홍 꽃, 흰 꽃…
너무 흔해서 시선 받지 못하던 꽃.
어린 시절 초등학교 시절에는 학교주위 도로에 코스모스를 무척 많이 심었다.

대충심어도 강인하게 자라 가을이면 늘 코스모스 군락을 이루었다.
지금은 그런 길을 만나기가 어렵다.
별도로 심겨진곳이 아니면
대단위 코스모스 꽃을 보기가 어려워졌다.

덕유산 자락, 무주 리조트 내 관광 곤도라 출발지 옆에 큰 코스모스 꽃밭이 있다.
겨울철엔 스키장이 되는곳에 코스모스를 심어 아름답게 피웠다.
그저 잡초만 무성할곳에 예쁜 코스모스가 피어 꽃 물결을 이룬다.

짙은 꽃 색깔이 너무 좋다.
향기도 너울 너울 바람타고 오른다.
가녀린 모습이 좋다. 깨끗한 잎새도 정겹다.
그래서 꽃말도 소녀의 순정일까?

코스모스 핀 꽃길을 걷고 싶다.
꽃말처럼 순수한 소녀의 모습으로
떠오르는 그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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