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동 성당에서 거행되는 대구에 사는 친구의 딸 결혼식에 참석차 서울로 가는 길이다.
한양천리란 말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새로 개통된 고속 전철 KTX는 대전→서울을 52분만에 주파한다.
서울 시내서 변두리 어느 곳을 가는 것과 같은 시간대이다.
그러다 보니 유통시장에 대 변혁이 일어났다고 한다.
소위 명품점이란 명칭의 고급 쇼핑을 위해 대전 사람들이 서울로 움직이고 있단다.
그리고 대형 병원의 진료를 위해 서울로, 서울로 몰리고 있다고 한다.
시장 경제 원리에 따르는 것이라 무어라고 말할 순 없지만 우리네 같은 사람들에게는 남의 나라 얘기처럼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KTX요금이 만만치 않다.
대전→서울이 편도 22,900원이다.
차안에서 커피라도 한잔하면 교통비만 왕복 50,000원이 넘는다.
게다가 대전역 광장 주차료까지 감안한다면 비싼 교통요금을 지불하여야 서울을 다녀올 수 있다.
물론 시간을 길게 소비할 수 있다면 무궁화 열차나 고속 일반버스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편리함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자꾸만 더 편리해지려함을 뿌리치기가 어렵다.
KTX가 대전역을 출발했다.
휴일이라 그런지 역방향까지도 빈 좌석이 없다.
만석에 일부는 입석 승차권으로 탑승한 사람도 있다.
좌석 공간이 좁다.
단지 하나 빠르다는 것 외에는 그 옛날 새마을 열차보다 나은게 없는게 사실이다.
대전→서울간은 신설된 철로를 시원스럽게 달린다.
열차 내 모니터에 스피드가 자막으로 표시된다.
시속 280km…290km…300km를 넘나든다.
하지만 승객들은 그 빠름을 인식하기가 어렵다.
대전 시내를 빠져 나오면 곧바로 전답이 펼쳐진 들녘을 지난다. 황금 들녁이다.
화창한 가을 햇살에 고개 숙인 벼들이 바람에 출렁인다.
벌써 추수를 한 논도 가끔 보이고 콤바인으로 벼베기가 한창인 논도 지난다. 콤바인이 토해낸 볏짚이 논바닥에 깔렸다.
우리 어릴적만 해도 기계화 영농은 꿈도 꾸지 못했다.
모든게 사람의 힘에 의존했다.
볏짚은 잘 보관했다가 이엉으로 엮어 초가지붕을 덮었는데 지금은 덮을 지붕도 없지만 그 많은 노동을 수행할 사람도 없는게 사실이다.
연로하신 우리네 부모님들이 농촌을 지키고 계신다.
비가 많이 내려 큰 걱정을 했는데 그나마 요즈음 한낮 햇살이 따가워 다행인듯 싶다.
풍성하게 익어가기를…
도로 한켠에는 벼 건조가 시작되고 농가 마당에는 붉은 고추가 널려졌다.
마을 산자락 감나무에는 주황색감이 주렁주렁 달려 수확을 기다리고 있는 듯 보인다.
옛날 같으면 벌써 아이들 손이 거쳐갔을 텐데 지금은 손대는 아이들도, 어른도 없다. 높은 나무에서 감따기란 정말 어렵고 힘들고 위험한 일이기 때문인가 보다.
빠르게 스쳐가는 들녘, 산, 터널통과 소음도 잠시 고속 철도 차량은 광명역에 진입한다.
당초 광명역을 출발지점으로 기획된 고속철도, 웅장하고 넓게 지어진 청사건물이 화려하건만 사람들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것이 예산낭비의 대표적 실체 아닐까?
차량은 도심에 접어든다.
그 빠르던 스피드도 일반열차와 다름없이 진행된다.
한강철교를 지난다.
푸른 물이 넓은 강폭을 가득 메우고 흐른다.
유람선이 강물위에 유유히 떠가는 것과 대조적으로 올림픽 대로엔 휴일이지만 차량들이 빼곡히 밀렸다.
강변로에는 자전거 타는 사람, 인라인 스케이트를 즐기는 사람, 걷는 사람, 달리는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 땀을 흘리며 가을의 바람을 만끽하는 모습이 너무나 좋아 보이고 활기가 넘쳐 보인다.
그 맞은편 고수부지에는 야외 사생대회라도 열리는 모양이다. 삼삼오오 그룹을 이루며 하얀 도화지 위에 가을을 담는 모습이 너무 평화롭고 한가롭다.
물, 바람, 가을 햇살, 억새꽃 하얗게 핀 모습에서 잠시 도심의 혼잡함을 잊게 만든다.
고속열차는 예정시간대로 서울역에 진입하고 명동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4호선 지하철 출입구로 걸음을 옮긴다.
역시 서울은 복잡하다. 분주하다. 사람들도 많다.
모두가 바쁜 걸음이다. 한참을 걷고 내려가니 4호선 지하철을 만날 수 있었다.
회현역 다음 정차역이 명동이다.
⑤, ⑧번 출구로 나가야 명동성당이 가장 가깝단다.
정말 오랜만에 찾는 명동이다. 몇년만인지 기억도 새롭다.
출구를 빠져 명동거리에 다다르자 젊은이들로 거리는 붐빈다.
명동은 늘 활력이 넘친다.
젊은 여성들의 과감한 노출의상, 화려한 상가 인테리어, 각종 노점상의 호객행위, 귀를 찢는 듯한 야외무대의 스피커 소리, 소음 때문에 휴대폰 받기도 불편할 정도다.
명동성당에 서둘러 도착했다.
민주화 열기와 각종 노동 투쟁의 피난처로 인식된 명동 대성당.
지금 그곳에는 천막이 없어졌고 시위하는 사람도 없었다. 단지 성당 외벽이 보수 공사중이라 천막에 가려 있을 뿐이다.
결혼식 예배가 많은 모양이다.
모두가 하객처럼 말쑥한 정장차림 사람들 뿐인것을 보니…
혼주와 인사를 나누고 찾아준 벗들과 그동안의 안부를 묻고 나서 명동성당의 주변을 둘러본다. 깨끗한 도로 바닥, 역사의 향기가 풍기는 그 무엇이 느껴진다.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 대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본당이자 한국천주교회의 상징이다.
이곳에 신앙 공동체가 형성된 것은 1784년 명례방 종교집회였다니 223년이나 되었다.
한국 초기의 벽돌조 성당이며, 순수한 고딕양식 구조로 사적 제258호로 지정되었단다.
본당 뒤편 사제관과 수녀원으로 쓰이는 붉은 벽돌 건물 외벽에 푸르게 오른 담쟁이가 너무 아름답게 보인다.
윤기있는 깨끗한 잎새, 하지만 이제 그들도 단풍이 들고 낙엽이 되고 또 새로운 내년 여름을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곧 결혼식이 시작될 모양이다.
성당 내부로 들어간다.
크리스마스 때면 TV에서 중계되는 예배 모습을 보던 그 성당 내부.
대성당의 평면은 라틴 십자가형 삼랑식이고 23m나되는 높은 천정, 글라스로 장식된 천정 일부.
붉은 벽돌이 더욱 아름답고 품위있게 보여진다. 장식적 요소를 배제한 순수고딕 양식이다.
촛불이 켜지고 웅장한 스피커에 음악이 흐르면서 결혼식은 진행된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신부의 하얀 드레스가 길게 끌리며 주례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 옮겨진다.
성당내부는 장엄하면서도 순수한 그 무엇을 느끼게 만든다.
아치형 복도, 스테인드 그라스 등으로 공간의 미를 살렸다.
또한 곳곳의 제대, 성화, 성상 등 종교 예술품은 명동성당의 종교적, 미술적 가치를 더해준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럴까?
아무리 악한 심성을 가진 사람도 이 거룩한 성당 내부에 들어오면 우선 손을 모으게 되는 모양이다.
본인도 모르게 압도당하는 그 무엇이 있다. 그게 아마도 종교의 힘이리라. 아니면 나약한게 인간이리라.
성당 제대 하부에 위치하여 미사장소와 성해 안치실로 쓰이는 지하 성당, 루르드 성모 동굴, 무염 시태 성모상, 김대건 신부 동상 등을 돌아보며 1970ㅎ·80년대 근 현대사의 격동기에 한국사회의 인권 신장 및 민주화의 성지로서 역할을 한 명동성당 구석구석을 새로운 마음으로 돌아볼 기회가 되어 정말 좋았다.
별도로 일부러 오기는 어려우니까.
결혼식 당사자 두 젊은이.
영원히 행복하기를 빌어주며 다시 대전을 향해 서울역으로 향한다.
한강 철교 아래 푸른 강물 위, 햇볕이 내려 번쩍이는 보석을 만든다.
그렇게 하루는 지나가고 빠른 열차KTX는 대전을 향해 서울 도심을 벗어난다.
서울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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