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전국이 온천지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휴화산지역이기 때문에 지진의 대재앙이 두렵기도 하지만 때론 따뜻한 온천수로 목욕을 즐길 수 있는 매력도 있다.
지역에 따라, 물의 주성분에 따라, 크기나 규모에 따라 전국적으로 순위를 발표하기도 하지만 유명세 보다는 작은 온천이라 해도 아기자기하게 꾸며논 온천의 모습을 대하게 되면 모두들 찬사를 보낸다.
이맘때쯤, 아니 찬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올 때쯤 그 매력은 더욱 돋보이게 된다.
삶의 현장에서 피로에 지친 몸과 마음을 가볍게 풀어줄 수 있는 따뜻한 온천욕은 그 어떤 쉼보다 편안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온천지역을 찾는다.
일본에서는 그리 멀리 움직이지 않아도 온천을 만날 수 있다.
잘 발달된 철도 중심의 교통편과 관광 상품으로 짜여진 온천관광 패키지 상품은 이런 가을날이면 넘쳐난다.
가을단풍+온천욕+지역특산물로 준비한 맛 여행까지.
그래서 가을시즌에 온천관광지는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지역 기후상 습기 영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일본인들은 정말 목욕을 즐긴다.
다양한 목욕 문화는 물론 목욕과 관련된 건강 책자도 서점의 일부를 장악할 정도다.
일본의 관광지 온천장은 대부분 24시간 영업을 한다.
우리나라처럼 밤10시면 폐쇄 되는 곳이 없다. 관광객들에게 최대한의 온천욕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그것도 숙박객은 횟수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별도의 추가 요금을 받지 않는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아침에 일어나서 한번, 외출하고 돌아와서 다시 한번, 잠자기 전 또 한번 온천욕을 즐기기 때문에 숙박객들은 하루 평균3회이상 온천욕을 한다.
물론 치료 목적으로 오는 사람들도 많다. 장기간 숙박 하면서 온천욕을 즐기는 것이다. 일종의 요양 손님도 많다.
그리고 또 다른 편리함이 있다.
「유가다」라 불리는 욕의(浴衣)을 입고 조리라 부르는 게다를 끌고 호텔내부는 물론 인근 상점, 주점까지 마음대로 오갈 수 있어 편리하다.
선물가게에서 지역 토산품도 사고 가까운 음식점에서 지방 특유의 음식맛도 보면서 일본 특유의 지방술인 지사케(地酒)를 마시는 여유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일본의 온천은 탕 자체가 넓고 유리창문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정말 멋진 곳이 많다.
단순하게 목욕탕이라 해서 폐쇄된 공간이라기보다 풍경을 눈으로 보며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게 만든 곳이 대부분이다.
멀리 강과 산이 보인다든지, 바다가 펼쳐지는 그런 모습들이 많다. 물론 개인적인 프라이버시는 철저하게 보안되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온천관광지 목욕탕은 노덴부로라(노천탕(露天湯))불리는 옥외탕을 겸하고 있어 언제든 밖의 바람을 쏘이며 목욕을 즐길 수 있다. 쉼 없이 솟아오르는 뜨거운 온천수.
작은 정원수와 물길을 만들어 아기자기하게 꾸며논 바위속 같은 탕에서 목만 빼꼼히 빼고 몸은 온천수에 담근채 몸속의 뜨거움과 찬 머리를 공유할 수 있는 즐거움을 맛 볼수 있다.
한겨울이면 흰 눈이 펑펑 내리는 곳에서 온천을 즐길 수도 있다. 머리엔 찬 눈이 내려 쌓이고 뜨거운 온천수에서 증발되는 뿌연 증기는 물안개를 만들기도 한다.
또 한여름 비가 내릴 때는 밀짚모자를 머리에 쓰고 목욕을 즐기기도 한단다.
노천탕 한쪽 벽에 밀짚모자가 걸려있다.
참으로 여유스럽고 낭만적인 그들만의 풍경이다.
가을날.
노천탕 주변 조경수에서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이 노천탕 위를 한조각의 배처럼 떠다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일엽편주랄까?
몸은 뜨겁고 머리 위를 스치는 바람은 시원하고…
지금쯤이 아마도 온천의 제계절인듯 싶다.
그리고 대부분의 온천관광지에선 남, 여 대온천탕을
매일 교대로 바꾸어 사용한다. 주의하지 않고 어제 목욕한 대온천탕을 다음날 다시 찾았다간 큰 실수를 범할 수도 있으니 일본 온천 방문시에는 꼭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 목적은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똑같이 만들었지만 위치에 따라 느껴지는 풍광이 다르기 때문에 모두가 한 번씩 즐기라는 것이고 교대로 사용하면 목욕탕 특유의 냄새가 중화되는 현상이 있다는게 그들의 설명이지만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일본은 온천의 별천지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한국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큐슈의 벳부.
동경 후지산 근교의 하꼬네. 훗카이도의 노보리벳츠 등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곳이고 많은 사람들이 다녀온 곳이다.
내가 이번 가을여행에서 머문 곳은 공교롭게도 모두 온천 지역에서 보냈다.
그것도 장소를 이동하면서 머문 3박을 모두 다른 온천에서 지냈다는 것이다.
첫날은 고마쯔(小松)공항에서 내려 업무를 보고 이동한 곳은 노도 반도를 따라간 야마나까(山中)이라는 온천지역이었다.
우리나라 동해와 접해있는 곳으로 바닷가를 따라 달리는 해변도로는 일품이었다.
화사하게 내리는 햇살, 잔잔한 푸른바다, 그 바다와 접해진 해안도로, 주변나무들은 모두 해풍(海風)때문인지 반쯤은 굽어진 상태로 육지를 향해 가냘픈 가지를 뻣으며 바람을 이겨내고 있었다.
차량은 바닷가를 지나 한참을 달리더니 산중 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쭉쭉 뻗은 리키다라 불리는 나무들이 산들을 빼곡히 메우고 있었다.
이름 그대로 야마나까(山中).
산속에 자리한 온천 리조트 호텔이었다.
버스가 도착하자 기모노를 입은 종업원들이 손을 흔들며 우리를 환영하고 있었다.
첩첩산중(疊疊山中).
보이는 것은 호텔을 중심으로 둘러 쌓인 산, 숲, 나무들, 그리고 하늘뿐.
들리는 것은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낙엽 지는 소리뿐…
그리고 느껴지는 것은 피톤치드(phytoncide)향 뿐이다.
이 산속에 예쁘고 아름답게 지어진 호텔.
호텔 뒤편으로 큰 계곡에서 흐르는 물들이 합쳐서 꽤나 큰 개울을 만들고 높은 산속 계곡에서 우렁찬 물소리 내며 흐르고 있었다.
방을 배정받았다. 다다미방이다. 일본 전통 가옥구조를 호텔방에 적용한 것이다. 우선 대부분의 호텔방이 좁은 것이 일본인데 이곳은 휴양지라 그런지 넓다.
차를 마실 수 있는 넓은 탁자, 그 위에 준비된 뜨거운 물과 녹차세트. 그리고 과자 한 조각.
화병에 꽂혀진 꽃 한송이. 정갈하게 정리된 방.
그리고 예쁘게 세탁되어 준비된 유가다 한 벌.
우선 느낌이 아늑하다. 꼭 방에 들어온 기분이다.
서둘러 옷을 유가다로 바꾸어 입고 대욕장(大浴場)을 찾아간다.
피로를 씻기 위함이다.
유가다는 옷의 방향을 맞추어 입어야 한다.
왼쪽 방향이 오른쪽으로 겹쳐지게 입어야 한다.
겹치는 방향을 반대로 하면 일본에서는 수의를 입는 꼴이 된다는 얘기를 언젠가 한번 들었기 때문이다.
유가다는 단추가 없다.
그저 몸에 걸치고 오비라 부르는 끈으로 매어주면 된다. 입기도 벗기도 쉽다.
유가다를 입으면 우선 몸이 편하다.
옷이 겹침이 없고 불편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걸쳐진 천이라 생각해도 된다. 욕장은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고 목욕탕을 찾은 사람도 우리 일행뿐이다.
샴푸, 물비누, 칫솔은 물론 면도기까지 준비되어 손님을 기다린다.
일본은 아직 일회용 규제가 우리처럼 까다롭지 않다.
손님을 배려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넓은 욕장, 우선 깨끗함이 좋고 넘쳐흐르는 물이 좋다. 같은 탕 안에서도 물의 흐름 방향을 이용해 온도를 구분해 두고 있다.
42℃, 41℃, 40℃ 곧바로 뒤편에는 노천탕이 있다.
밖에 나가자 바람이 차다. 물속에 몸을 담그고 부는 바람소리, 낙엽지는 소리를 듣는다. 유유자작이다.
여유로움 그 자체다. 몸의 피로가 온천속에 녹아 든다.
나는 그런 온천을 3박동안 즐겼다.
첫날은 야마나까에서, 둘째날은 알펜루트 우나쯔끼에서, 마지막날은 나고야 근교 기후켄의 게로 온천에서였다.
그 온천의 따스함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아 따스함이여! 부드러움이여.
그리고 온천지역에서 저녁에 제공되는 가이세끼요리(會席)는 우리네 한정식 또는 궁중음식에 비유될 만큼 정갈하고 품위 있고 맛있는 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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