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 다가온다.
그 옛날 성스런 새해의 시작을 우린 언제부턴가 “구정”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한때는 이중과세라 해서 구정을 세지 못하도록 통제하였던 때도 있었다.
양력설(신정)은 왜놈들 설이라해서 더욱 거부하는 반감도 있었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풍습은 바뀌어지지 않았고 우리네 설날로 자리매김 했다. 결국 구정전후 3일간이 정식 공휴일로 지정되면서 참다운 설날로 바뀌었고 몇 시간씩 밀리는 교통 대란 속에서도 고향을 찾는 아름다운 가족애의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내 어린 꼬맹이 시절.
집에서 차례지내고 성묘를 다녀온후 온 동네 어른들을 찾아 세배를 드리러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 다녔다.
“꾸벅”절하고 나면 과자, 떡 등 먹을것을 챙겨주기도 했다.
세배돈은 그 당시 시골에선 보기 힘들었다.
워낙 가난했기에 돈은 구경하기 힘들었고 배고픈 시절 먹을거리로 대신하는 정겨운 모습이었다.
요즈음은 어떤가?
아직 대부분의 우리네 부모님들은 고향을 지키고 계신다. 명절 때면 집 마당엔 자식들이 타고 온 차로 가득하다. 어릴 적엔 명절준비로 며칠 전부터 시끌벅적했지만 지금은 대부분 차례상만을 위한 준비이기에 그렇게 분주하지 않다. 자식들이 사전에 연락해 서로 서로 분담해서 가지고 온다.
그저 전날 부침개, 전 정도 만들면 되는 그런 모습들이다.
주로 도심 아파트에서 생활하던 손자, 손녀들은 시골생활에 익숙치않아 고충이 심한 모양이다.
우선 춥고, 씻기 힘들고, 화장실 불편하고, 컴퓨터가 없어 게임도 못하게 되니 도착하는 시간부터 언제 갈 것이냐고 묻기 시작한다.
젊은 세대의 며느리들도 불편하긴 마찬가지.
그래서 명절 증후군이란 말까지 생겨났고 잘 적응안된 사람들은 티격태격 싸우는 바람에 부부지간에 때 아닌 냉전기가 유지 되기도 한단다.
즐거워야 할 명절이 그렇지 못한것이다.
조금만 서로 이해하고 참으면 될것을…
하지만 잘 안되는게 현실이고 그러려니 이해하는 편이 나을것 같다.
서로 살아온 생활습관이 다르기 때문이리라.
설날이면 나는 시골에 가야한다.
내가 태어나고, 자라고 부모님이 계신 그 땅에.
차가 밀려도 싫지 않다.
즐거운 마음으로 다녀오리라.
뒷산에도 올라보고 어릴적 뛰놀던 충주댐 아래 강변도 돌아보고 전교생이 100명 이하로 줄어들었다는 옛 초등교 교정도 돌아보아야겠다.
벗들은 아무도 없겠지만 운동장 울타리 주변의 플라타너스 나무와 늘 오가던 교문 문설주는 그대로 남아있으리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벌써 몇 차례 변한 세월이 흘렀다. 그래도 매년 봄, 초등교 총동문 체육대회가 빼먹지 않고 열리고 있어 그 옛날을 회상하고 벗들과의 반가운 만남이 지속되어 즐거운 하루가 된다.
지금 눈 높이로는 작아만 보이는 운동장. 멀게만 느껴지던 등교길도 이젠 말끔히 포장된 아스팔트 도로 덕분에 자동차로 달리면 금새 도착한다. 어릴적 책보자기를 등에 매고 뛰고 달리던 오솔길.
고개를 넘고 작은 개울을 건너야 했다.
홍수가 나면 돌 징검다리가 물에 잠겨 신발을 벗고 바지 걷어 올리고 건너야했던 길.
뛰기라도 하면 등 뒤에선 양철로 만든 필통에서 몽당연필 덜그덕 거리는 소리. 양은 도시락 안에서 반찬통과 젓가락 흔들리는 소리가 어우러져 교향곡을 울려댄다.
이젠 모두가 흘러가버린 전설이 되어버렸다.
“산 옛산이로되 물은 옛물이 아니로다.
주야에 흐르니 옛물이 있을소냐.
인걸도 물과 같아서 가고 아니 오는 매라” 라는 옛글이 머리를 잠시 스쳐 지나간다.
요즈음은 모두가 바쁜 삶의 굴레에서 오랜 기간 벗어날 수 없다.
명절 휴무가 공식적으로 3일이긴 하지만 대부분 전날 도착해서 차례 준비하고 다음날, 차례 모시고 산소 찾아 성묘하고 난 후 다시 상경 길에 오른다.
설날 오후면 대부분 시골을 떠난다. 귀경 길에 처갓집에 들려 세배도 드려야 하는 사람들은 일정을 서둘러야 한다.
시골집을 떠나야 할 시간.
어머니는 비닐봉지에 주섬주섬 물건을 챙겨 귀경하는 자식들의 차에 실어주기 바쁘다.
마른고추, 고추장, 된장, 들기름, 밤, 대추, 은행알, 배추김치까지… 아니 쌀까지 챙겨 주신다.
가볍던 트렁크가 가득차면서 무거워진다.
어머니는 더 못주어서 아쉬워하신다.
큰 선물도 준비 못한 자식들은 왠지 부끄러워지고 손자 손녀들은 속도 모르고 빨리 가자고 보채기만 한다.
차가 떠나고 나면 부산하던 시골은 다시 엊그제의 상태로 돌아간다.
한적한 시골마을로 원상복귀된다.
다시 우리네 나이드신 부모님들만이 시골을 지키시고 계셔야 한다.
그렇다고 자식따라 도심의 콘크리트 캐비넷같은 아파트에서 생활하자니 더욱 숨막히는 고통을 느끼신단다.
찾아갈 이웃도, 벗할 사람도 찾기 어렵다.
의학 발달과 영양제 보급, 생활체육 개선으로 수명은 늘어나고 노인계층의 인구는 증가한다.
새로운 복지 정책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노인들이 평화롭게, 노년을 건강하게 보낼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 할때다.
설날이 다가온다. 즐거운 명절이 되었으면 한다.
어려운 사람들도 찾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더욱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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