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봄빛
3월이 간다.
세월 빠르다는건 요즈음만은 아니었지만 정말 빠르게 지나간다. 벌써 엊그제 시작된 새해같지 만 2008년도 1분기가 지났다.
600년 된 홍매화가 있다기에 순천의 조계산 선암사를 찾아가는 길이다.
봄날의 여행은 그저 즐겁다. 날씨는 비가 올 듯 꾸물거렸지만 춥지 않은 날씨. 간혹 구름 사이로 화사하게 내리는 햇빛. 살랑이는 바람. 이름모를 조그만 야생화. 매화, 산수유, 벚꽃, 진달래 등.
무더기로 피어내는 이른 봄꽃무리들.
그들을 만날 수 있기에 늘 가슴 설레는 기쁨이 함께 한다.
또한 봄날은 자연의 소리가 귓전을 울려 보고 듣는 그런 여행이 된다.
자세히 귀대고 들으면 나무위로 오르는 수액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리고 땅에선 새싹들의 힘찬 성장 소리가 내 발걸음을 가볍게 만든다.
꽃이 피고, 새가 울고, 벌 나비 찾아 드는 그런 숲속을상상해 본다. 언땅에서 새싹이 움트고 마른대지는 푸르름을 토해낸다.
아른아른 아지랭이 피어오르고 오수에 지친 얼룩배기 황소도 하품을 길게 하며 한가로이 봄볕을 쪼인다.
밭둑에 외롭게 서있는 미루나루 한그루.
그 가지위에 까치 부부는 새 둥지를 만들었다.
열심히 온 겨우내 나뭇가지를 물어 나르더니 새 생명의 탄생을 위한 아름다운 집을 짓고 포란을 시작한 듯 부부까치는 열심히 들락거린다.
머지 않은 날.
새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서, 하늘을 비상하며 새로운 삶을 이어갈 꿈이 영글어 갈 것이다.
이렇게 봄날은 모든 생명들에게 희망을 주는 계절이다.
새싹, 새꽃, 새희망, 새꿈 모두가 봄과 어울리는 단어들 아닐까?
순천길은 초행(初行)이다. 몇 년전 지인의 부고를 받고 야간에 다녀오긴 했지만 그땐 오가는 시간만이 중요할 뿐 밖을 감상할 시기도, 시간도 아니었다.
유성에서 접어든 호남 고속도로.
휴일이지만 한가롭다.
서해안고속도로 개통과 천안 논산간 민자고속도로 개통으로 이 구간은 정말 한가로운 길이 되었다.
앞에도 뒤에도 따르는 차량이 없어 서둘지 않아도 막힘이 없어 좋다.
봄은 남쪽에서부터 올라온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작은 땅덩어리지만 내려가면 갈수록 푸르름이 다르다.
천변 물가에 심겨진 능수버들엔 벌써 연두색, 초록색 색실이 걸려 일렁인다.
바람이 불때마다 일렁이는 늘어진 버들가지에서 봄의 여유가 피어난다.
그야말로 바람부는 대로 흔들리고 있다.
아니 흔들리는게 아니고 바람이 알려주는 박자에 맞추어 춤이라도 추는 것일까?
요즈음 젊은이들 중 버들피리를 불어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물오른 버들가지를 잘라 속나무가지를 빼어낸 후 껍질로 만들던 버들피리.
논뚝이나 산자락 또는 들녘에 앉아 구성지게 불어대던 버들피리.
이젠 그 소리 듣기도 어렵다. 언젠가 한번 그 옛 시절을 생각하며 만들어 보고 싶다.
제대로 소리가 날지 궁금하다.
그런 저런 생각 속에 차는 선암사 방향으로 핸들을 잡았다. 산자락에 간혹 연분홍 진달래가 외롭게 피었다.
우리 어릴 적엔 온산이 울긋불긋 진달래꽃으로 장식되었는데 지금은 저렇게라도 만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나무가 울창하고 숲이 무성하다보니 그늘에 가려서인지 진달래는 생존이 어려운 모양이다.
그 옛날에는 나무를 화목으로 쓰기 위해 나무가 자랄새가 없다보니 초목들이 활성화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산속에 들어가기도 어렵게 무성해진 것이다.
그리고 노랗게 산수유도 꽃을 피웠다. 매화마을이라도 지나는 것일까? 온통 매화꽃이 길옆을 메웠다.
만개한 모습. 너무 화사롭다.
해마다 남도의 봄소식은 섬진강부터 시작된다.
섬진강 매화는 남으로부터 올라오는 봄의 전령사이다.
섬진강 매화축제는 지난 3월16일 끝났다지만 이제 이곳이 그 중심에 들었나보다.
매화가 질 때쯤 산수유가 만발한다니 봄은 언제나 꽃 속에서 시작되고 꽃 속에서 끝나는가 보다.
주차장에 도착했다. 날씨 때문인지 사람들이 그다지 많은 편은 아니다.
선암사 오르는 길. 선암사는 태고종의 유일한 총림인 태고총림으로서 강원과 선원에서 수많은 스님들이 수행하고 있는 종합수도 도량이란다.
좌측 계곡에선 조계산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이 제법 큰 소리를 내며 흐른다. 오르는 길이 정겹다.
그 흔한 아스콘 포장도, 시멘트 포장길이 아닌 자갈박힌 흙길이다. 그래서 발에서 느끼는 촉감도 좋다.
우선 부도밭은 만난다. 커다란 부도탑이 여러 개, 비석도 많이 서있다. 정진하시던 스님들이 잠들어 계신 곳이다. 한참을 올라 경내에 이르니
냇가를 건너는 무지개 모양의 승선교가 2개 나타난다.
승선교는 조선 후기의 석조홍교(石造虹橋)로써 돌을 연결한 솜씨가 정교하다 못해 예술품에 가까워 보인다. 한차례 보수공사를 한 후 재 단장한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반원형 다리 밑으로 보이는 강선루는 멋진 선암사의 대표적 상징물로 사진가들이 즐겨찾는 곳이란다.
고개를 숙여 거꾸로 바라보니 반원형 속에 나타난 강선루가 한 폭의 그림처럼 각인된다.
조금 오르니 조계산 선암사라 쓰인 일주문이 나타난다. 일반 사찰과는 달리 돌계단과 높이가 어울려 경내가 시원스럽게 보인다.
일주문 뒤쪽에 자리한 범종루.
1층은 불교용품을 파는 매점이고 2층은 범종이 자리잡았다.
선암사 경내는 지금 매화꽃 세상이었다.
간혹 노랗게 핀 산수유 꽃이 대조를 이룬다.
잘 다듬어진 정원이 아닌 그저 자연스럽게 형성된 내부이기에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선홍빛 동백도 아름다움을 더한다.
소문 듣고 온 600년 된 매화나무를 보기 위해 뒷산 가는 벚꽃길로 오른다.
600년 된 매화나무는 홍매화였다.
고귀함이 한마디로 아름답다.
직박구리 한 쌍이 꽃잎을 먹는지 꿀을 먹는지 방문객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봄철 산란기라 그럴까?
세레나데를 뽑아내며 뒤집는 재주도 보여준다. 아마도 수컷 직박구리가 암컷에게 구애를 하는 모양이다.
금산신문 webmaster@igsnews.co.kr
<저작권자 © 금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4 금산 보곡산골 산벚꽃축제 성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