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 날, 현암사에 가다.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두 번 산사(山寺)를 다녀왔습니다.
한 번은 부처님 오시기 전날 계룡산 동학사를 다녀왔고, 또 한 번은 부처님 오신날 대청댐 산자락 위에 위치한 현암사(縣岩寺)를 다녀왔지요.

연초록 빛깔 아름다운 5월의 산(山).
신록이 정말 싱그럽고 너무 예쁘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파리 하나하나가 작품이고 예술이었습니다.
아무리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도 그 아름다운 색감을 똑같이 표현하긴 어려울 겁니다. 불가능하겠지요.
어느 나무, 무슨 풀이 아니라 자라는 나무 잎새, 풀 한포기 모두가 아름답기만 했습니다. 잡초란 우리들이 붙인 이름 뿐이지요.

그 아름다운 신록과 시원한 바람, 따사로운 햇살, 흐르는 물소리, 새들의 지저귐, 모두가 이맘때면 느낄 수 있는 자연의 신선함이었지요.

계룡산 동학사 오르는 길.
매표소를 지나자 길 양옆으로 연등이 걸렸습니다.
노랑, 빨강, 청, 연분홍등 오색의 연등이 바람에 일렁이며 방문자를 환영합니다. 그 연등은 동학사까지 무려 2km도 넘는 긴 행렬이 양측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곳곳에 불기 2552년을 봉축하는 현수막이 걸렸습니다. “수행전진으로 세상을 향기롭게”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옵니다.

물소리, 바람소리 들으며 도착한 곳은 동학사 바로 아래, 우선 문수암, 실상암, 미타암, 관음암등 암자를 먼저 만납니다. 암자엔 스님들과 보살님, 불자들이 내일 행사를 위한 준비로 분주함이 엿보입니다.
천막이 설치되고 연등은 넓은 암자의 마당을 다 덮어 버렸습니다. 형형색색의 연등이 빼곡이 걸려 그림자를 만듭니다. 그림자는 또 다른 연등을 연출하고 있었지만 모두가 한 가지 색 뿐입니다.

법당엔 꽃꽂이가 한창이고 큼직한 화환도 벌써 몇 개 자리 잡았습니다. 내일 법요식 행사를 위한 준비랍니다.
시대의 조류에 따라가는 걸까? 사찰에도 형형색색의 풍선장식이 또 다른 묘미를 주고 있었습니다.

암자 입구에는 “연등접수”란 팻말을 세워놓고 오가는 행랑객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주소와 이름을 적고 연등을 달아 줍니다.
소원성취 글귀에서부터 가족 건강, 사업운을 바라는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사월 초파일은 불가에선 가장 큰 행사이지요.
개회 전 범종을 타종하는 명종부터 시작하여 개회, 삼귀의, 반야심경, 찬불가, 봉축사, 축사, 관불의식으로 마무리되는 1부 법요식과 2부 방생법회 3부 점등 및 탑돌이 행사로 진행된다고 한 스님이 귀띔을 해 주시네요.
고마웠습니다.

공양간에서는 내일 맞이할 손님을 위해서 스님들이 앞치마를 두르고 보살님들과 바쁜 일손입니다.
앞치마 두른 비구니 승을 보니 그 감회가 새롭습니다.
삶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는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였습니다.

동학사, 대웅전 법당 안.
많은 탐방객들이 좌우 옆문을 통해 입장하여 삼배를 올립니다.
지그시 내려다보시는 불상의 미소가 아름답습니다.
부드럽습니다. 인자합니다.

대웅전 안에도 연등이 빼곡이 걸렸습니다.
연꽃 모양의 손수 만든 연등입니다. 이름 중에는 “비구니○○”이란 글자가 유독 눈에 머뭅니다.
아! -스님들도 “연등을 다시는구나”하고 다시한번 놀랐습니다.

다시 대웅전을 내려와 은선폭포 쪽으로 조금 오르다보니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는 곳 마당에 연등이 바람타고 출렁 입니다. 승가대학 강원입니다.
오월 산사마당은 온통 연등의 아름다움으로 채워졌답니다.
색색의 꽃이 피어난 듯 합니다. 저녁엔 저 연등 안에 밝은 불이 켜지겠지요.

바쁜 일손, 정리하는 부산한 법당을 떠나 다시 오르던 길로 내려옵니다.
오르는 사람, 내려오는 사람, 계곡에서 손 담그며 쉬는 사람 등 휴일날 모두들 표정이 밝아보입니다.

날이 밝았습니다.
불기 2552년, 부처님 오신날입니다.
바위 끝에 매달려 있는 듯한 다람절이라는 의미에서 한자화한 현암사(縣岩寺)를 가는 길입니다.
현암사는 대청댐 가는 길, 충북 청원 구룡산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청댐 전망대 덕분에 중턱까지 도로가 나있지만 가파른 철제 계단을 올라가는 길은 그리 녹녹치 않습니다.
오후 2시가 넘은 시간이지만 주변은 주차된 차량들로 통행이 지연되고 파견 나온 교통경찰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습니다. 겨우 겨우 길옆에 개구리 주차를 하고 현암사로 오릅니다.
초파일 많은 내방객을 염두에 두고 벌써 입구엔 장사꾼들이 장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가파른 계단 길을 천천히 오릅니다.
오르는 사람, 내려오는 사람이 마주 쳐 지연될 정도입니다. 한발 한발 더듬어 올라 현암사에
도착했습니다. 입구에서 한분이 부처님 오신날 리본을 달아주고 있었습니다. 연등이 현암사를
꽉 껴안고 있을 정도로 빼곡히 걸렸습니다.

빈틈이 없어 대웅전 뒤뜰까지 자리했습니다.
주소, 가족이름을 쓰고 종이 연등을 받습니다.
“소원성취, 봉축 부처님 오신날”이라 적혀있지만 “MADE IN CHINA”라고 선명히 적혀있어 조금은 부끄럽습니다. 인건비 문제겠지요.

조금 늦었지만 보살님의 권유로 점심 공양을 받았습니다.
비빔밥이지요. 콩나물, 상추, 각종나물, 도라지를 곁들인 밥, 오랜만에 산사에서 먹어보는 공양밥이라 아주 맛있었습니다.
여기저기 간이 탁자로 준비된 식탁에서 모두가 한식구처럼 먹습니다. 감사히 먹었지요. 두 손 모아 합장합니다.

음식준비하시는 보살님들의 손길이 바쁩니다.
음식준비, 설거지, 주변청소까지 모두가 한마음으로, 밝은 모습으로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울력이라 하지요. 그분들이 계셔서 방문객이 편한 것이지요.

주변을 내려다봅니다. 대청호반을 굽어보는 눈맛은 오르는 다리품을 상쇄하고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비경입니다.
물 속에 반쯤 잠긴 주변 산들의 모습이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물이 내려간 대청호수, 산과 물 사이에 누런 황토띠를 두르고 있습니다. 물이 오르내린 흔적이지요.

잔잔한 호수, 일렁이는 물결위에 햇볕이 포근히 내려앉아 보석처럼 빛납니다.
뱀처럼 휘어진 물길이 멀리까지 이어지고 댐 통수로를 거쳐 발전을 마친 물은 유유히 흘러 공주, 부여를 거쳐 금강하구 뚝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대웅보전, 용화전, 산신각, 요사채가 건물의 전부인 현암사.
좀 옹색해 보이기도 하지만 전면에 펼쳐진 대청호수가 그 좁음을 대신해 주고 있는가 봅니다.
불심(佛心)이 중요하지 절의 규모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요.

4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날.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왜 사는가? 왜 살아야 하는가?

끝없는 질문에 나는 할 말이 없습니다.
불자는 물론 신도도 아니다. 그저 맑은 바람이 좋고 그 바람에 울어주는 풍경소리가 청량하기에 나는 절을 찾았다.
가파른 오르막길도, 108계단의 철계단도 세어보지 않았다. 그 의미보다는 오르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올랐다.

이미 부처가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누군가는 내가 부처이고 내 마음이 불심이라 하지 않았던가.

천국이 따로 없다. 이곳이 천국이고 극락세상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지금이 그때이고 지금이 가장 중요한 때인지도 모른다.

불기 2552년.
수행정진으로 세상을 향기롭게 했으면 좋겠다.
성불하십시오.

테이프에서 스피커를 타고 흐르는 어느 스님의 반야심경 독경소리가 귓전을 즐겁게 합니다.

금산신문 webmaster@ig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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