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병원에서 바라 본 현실은

둘도 없는 친한 고향 친구의 아버지께서 곧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연락을 받고 가끔 인사드렸던 분이기에 혹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인사를 다니러 병원을 찾았다.

그곳은 노인 전문병원이었다.
친구도 이미 와 있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기에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는 불효의 변을 슬픈 얼굴로 말해주고 있었다.

연세는 86세, 병명은 뇌졸중, 우리가 흔히 중풍이라고 부르는 병이다.
뇌혈액 공급에 장해가 있어 손발의 마비, 언어 장애가 따르는 병이란다.

초기엔 집에서 요양하셨는데 장애가 심해 얼마 전 이곳 병원으로 옮기셨단다.
우선 인사를 드렸다.

정신은 이상 없으셨는지 단박에 나를 알아보셨다.
하지만 병상에 누워 계신지가 오래되셨기 때문인지 몸 상태는 아주 엉망이셨다.
너무 마르시고 핏기가 전혀 없으셨다. 가냘픈 몸매뿐. 젊은 시절 그 호기는 사라지고 없으셨다.

생로병사의 과정을 밟고 있는 사람들.
아니 나도 그 과정을 밟아야 할 사람.
‘꽃이 진들 저렇게 추하게 질까’하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친다.

이곳은 노인전문병원.
지방자치단체 주관으로 병들고 힘들어 하는 노인들을 위해 새로 설립된 병원이란다.
규모는 120병상, 우선 새 병원이라 깔끔했다.
휴게실도 넓고 모든 시설도 웬만한 병원 못지않다.
병실은 6인실이 대부분이고 할아버지, 할머니 방으로 구분되었다. 6인실에 1명씩 전문 간병인이 배치되어 보호자 없이 운영되는 곳이다.

집중관리 병실이 따로 있어 중환자들은 그리로 배치된단다. 병실은 만실이었다.
환자들은 모두들 연세 지긋하신 할아버지, 할머니들 대부분 홀로 거동이 불가능하여 휠체어나 보조기구를 이용하기도 하고 대, 소변도 받아내는 환자도 있으시단다.
병원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희망을 잃은 초점들이다. 그저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라면 너무 과격한 내 표현일까?

삶의 목적을 잃은 사람들, 홀로 이동하기도 불편하고 씻기도 어려운 분들이다.
아들, 딸들은 모두 있지만 맞벌이 부부, 핵가족화 등으로 집에서 모실 수 없는 사정이 있기에 이곳으로 모셨을 것이다. 한 달 비용도 만만치 않다.

환자 상태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평균 일백이십 만 원 정도 된단다.
적은 돈이 아니다. 하지만 노인전문병원에 부모님이 계시다고 하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연로하신 부모님들을 모시기 싫어 악덕 요양원이나 옛날 정신병원같은 곳을 연상하기 때문이란다. 밥도 주지 않고 창살 있는 방에 가두고 죽기만을 기다린다는 그런 악성 루머도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노인전문병원은 결코 그런 곳이 아니다.
정말 선택된 요양원이다.
가족들의 고충도 덜고 전문 의료인의 보살핌으로 환자들도 안심하고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노인문제는 점차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의료기술의 발달, 위생적인 생활습관, 영양식 등으로 인류의 평균 수명은 점차 늘어만 간다.
하지만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다. 영생할 수는 없다.
스스로는 그런 상황을 잊는다.
자기만은 영생할 것처럼 죽음을 생각지 않는다.
“밤새 안녕”이란 말처럼 삶을 마감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요즈음은 병들도 많다.
암은 물론 중풍, 치매 같은 질환이 더욱 문제다.
언젠가 신문에서 제목으로 뽑은 글귀가 생각난다.
치매환자 100만, 고통 받는 가족 500만. 정말 남의 일이 아니다.

기억을 잃어버린 삶. 가족도 몰라보고 지난날도 기억 못하는 치매환자, 본인은 모든 것을 잃어버려 어쩌면 쉬운 삶을 영위할지 모르지만 가족들의 고통은 얼마나 클까? 과연 그런 삶이 의미있는 일일까?
생명만 부지했을 뿐 삶이 아니다.

혹자는 자식이지만 치매 걸린 엄마의 삶을 보고 삶을 종결지었으면 고맙겠다는 마음도 먹었단다.
옛 어른들이 알았으면 호로자식이라고 엄청난 비난을 받았으리라.
하지만 냉정하게 판단한다면 그런 삶의 연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식도 몰라보고 오로지 생명만 유지되는 삶, 머릿속의 기억은 망각되고 또 기억되지 못하는 삶, 슬픔이나 기쁨같은 희노애락을 느끼지 못하는 삶이 바람직한 삶일까?
따라서 안락사의 정당성도 부각되는 모양이다.

몇 년째 식물인간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환자들도 있다. 의료비용은 물론 그를 바라보며 간호하는 가족들의 고통도 말이 아니다.

그러니 어쩔 수 없는 현실에서 산 자들만이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가족들의 고통도, 그로 인한 의료비 지출도 천문학적 비용일 것이다.
이제 이런 노후 비용은 개인적인 측면을 떠나 사회문제가 될 것이다. 국가가 부담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복지비용의 증가가 따르겠지만 진정한 노후 보장을 위한 복지국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책임져 주는 부유국가가 되었으면 한다.

또한 옛날에 비해 엄청나게 좋아진 것도 사실이다. 의료보험으로부터 노령 연금에 이르기까지 많은 비용을 국가가 지불하지만 아직은 멀었다. 누구나 걱정없이 노년을 맞이할 수 있는 그런 시점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인사를 드리고 친구와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5남매가 있지만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단다.
딸이라고 빠지고 막내라고 등한시하고 모두들 부담되는 비용에 고개를 흔든단다.

초기에는 자주 면회도 오고 방문도 했지만 그 횟수와 기간이 멀어지고 있단다.
부모들은 그 모습에 더욱 서러워한단다.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이제는 멀리하려 한다는 서운함에 더욱 분노를 느낀단다.
진정한 삶은 무엇일까?
바람직한 가족애는 어떤 것일까?

친구의 아버님을 뵈면서 다시 생각해 보는 내 자신이다.
나도 남의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병원을 나서는 마음이 무겁다.

연로하시고 아파하시는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가는 길에 부모님께 들러 갈 예정이다.
아프지 마시고 제발 늘 건강하세요.

아버님, 어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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