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저녁 물가 산책

낮에 비가 내렸다. 덕분에 뜨겁던 날씨가 조금은 서늘해졌다. 아니 초저녁엔 반팔셔츠차림에 느끼는 바람이 시원하다 못해 한기가 느껴졌다.
6월 초순. 여름이 시작되었다.
저녁 8시가 막 지났건만 이제야 어둠이 찾아든다.

아파트 옆 갑천변에 나왔다.
갑천은 산내에서 발원된 물이 대전 중심가를 흘러 내려온 물과 유성천에서 흘러든 물이 합수되어 신탄진에서 금강으로 유입되는 큰 개울(川)이다.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 천변에 잘 만들어진 자전거 전용도로를 따라 걷기와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다.
주변 잔디밭에 자리를 깔고 고기 굽는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휴일이기에 외식보다는 고기와 불판, 상추를 준비해 나온 가족단위 식구들이다.
불판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른 고기 굽는 냄새와 연기가 바람타고 이곳 강가로 흘러든다.

남자들이 몇 명 모인 곳에서는 어김없이 소주잔이 돈다.
왜 꼭 술을 마셔야 할까? 이 좋은 분위기에.
적당한 음주는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거기에서 말하는 ‘적당한’의 의미는 소주 1~2잔 정도란다.
문제는 과음이다. 어느 한계를 지나면 술이 술을 마시게 되고 정신을 잃어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실수를 하기도 하는 게 술이다.

요즈음 소주는 대부분 20도 이하로 시판되기 때문에 1병을 마셔도 초기에는 그리 취하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그것을 발판으로 다시 마시는 술이 문제다.

우리나라 술 문화.
우선 맥주잔에 소주를 첨가하는 폭탄주-양주는 비싸니까.
안먹으려고, 못 먹는다고 하면 더욱 분위기올리며 몰아대는 권주의 습성.
술 잘 마시면 대범하고 용감하고 통 큰 사람으로 대하고 술 못 마시면 쪼잔하고 소심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우리의 술 문화도 이젠 좀 바뀌어야 한다.

의무가 아닌 기호품인데,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데, 분위기 편승을 목적으로 모두를 술꾼으로 만든다.
다음날 숙취로 고생하는 모습을 알면서도 그렇게 마셔대는 이유는 무얼까?
삶이 괴로워서, 사는게 힘들어서, 삶이 너무 팍팍하니까 잠시라도 잊고 싶고픈 심정, 그걸까.
아니면 습관적으로 부리는 객기일까?

아무튼 잘못된 음주문화임은 분명하다.
자기 주량에 맞추어 스스로 통제하면 될 것을 남들이 권하는 인정에 끌려 한국식 술 문화에 어쩔 수 없이 마시는 술.
이젠 좀 선진국다워야 하지 않을까?

6명이 한 팀인가 보다.
뒤쪽엔 벌써 소주병이 즐비하다.
천천히 마시라는, 그만 마시라는 아낙네들의 소리가 벌써 귓전에 들려온다. 삼겹살은 익기 바쁘고…

천변을 파워 워킹으로 걷는다.
양손을 “번쩍번쩍”들고 좀 빠르게 걷는다.
그게 운동량이 많단다. 이왕 걸을 거 열심히 걷자.

지나는 사람도, 추월하는 사람도 많다. 자전거도 오가고 달리는 사람도 많다.
운동하는 모습도, 옷차림도, 천차만별이다.

이 어두운 밤에도 자외선 차단 마스크에 모자까지 눌러 쓴 아주머니도 계신다.
가로등에도 자외선이 있는가, 아니면 흐르는 물에 반사되는 빛을 의식함일까?

달빛도 아직 없다. 아마도 습관일게다.
지명수배된 얼굴도 아닐 것인데…
그게 어쩌면 다양한 사람 사는 모습인지도 모른다.
이젠 옛날처럼 남을 의식하는 삶보다 자기 중심의 삶을 살아가니까.

이렇게 바람부는 천변을 걷는게 얼마만인가?
여울목의 물소리는 밤이 되자 더욱 요란스럽다.
여울과 소(沼)가 반복되는 자연천 모습.

아직 잠자리 찾아 떠나지 못한 왜가리는 배가 고픈 모양이다. 둑을 막은 보 아래서 튀어 오르는 물고기를 노리고 있다.

물은 이 밤에 어디로 가는지 알고나 흐를까?
그들도 보이지 않는 생명이 있는 걸까.
그저 높낮이 차이로 흐르는 물.
환경오염이 표면화된 이후 도심의 천변도 많이 깨끗해졌다. 생활 오수를 따로 배수해 처리하고 천 주변에서 낚시 등 오염원을 줄였기 때문이다.
가끔씩 튀어 오르는 물고기가 꽤 커보인다.

천변의 가로등 불빛이 물 속에 드리운다.
물 흐름에 불빛도 출렁인다.
물 속 불빛은 가로등보다 길게 내린다.
양측에 서있는 가로등 불빛 덕분에 물가는 늘 빛의 아름다움이 연출된다.

저 건너 고속철 위로 KTX가 질주한다.
고가 철교다. 그 밑으론 천변 순환도로가 지나고 호남선과 경부선으로 나뉘는 남이분기점엔 이어지는 자동차 불빛이 하나의 선을 만든다.

대전역을 출발한 KTX는 이곳에서 속도를 한껏 올렸지만 내 눈에 들어오는 스피드 감각은 그리 빨라 보이지 않는다.
객차 수를 세어본다. 앞 전동차를 빼고 18량이다.
길다. 불빛 속 객차 안에는 어떤 사람들이 타고 있을까?

휴일을 지방에서 보내고 상경하는 주말 부부도 있을테고 모처럼 주말여행을 즐겁게 다녀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갑작스런 비보에 안타깝게 서두르는 사연도 있을지 모른다.
사람 사는 세상. 사람도 다양하지만 그 사연은 얽히고 설킨 산 속 칡덩굴보다 더 많으리라.

그 옆 인도어 골프연습장.
높은 그물망이 비추는 전등으로 확연히 보인다.
희미하게 타석의 사람들도 보인다.
골프채를 휘두르고 하얀 공은 빛 받아 허공으로 날아간다.
그래도 지금은 가장 좋은 때이다.
그리 덥지도 않은 밤공기 때문이다.

골프연습장은 1년내내 휴일이 없을 정도다.
영하의 날씨에도, 푹푹 찌는 폭서에도, 골퍼들은 자기의 스윙폼 수정에 여념이 없다.
때리고 또 때린다. 한이 맺힌 사람들처럼…

한참 걷다보니 너무 많은 길을 왔다.
아니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딱히 반환점이라고 명시되어 있진 않다. 다시 돌아온 길을 걷는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사람들이 더욱 붐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온 사람들인가 보다.

건강한 모습들이 보기 좋다. 힘차게 밟는 페달 소리도 듣기 좋다.

깊어가는 어둠이 매력적이다.

금산신문 webmaster@ig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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