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겨울답지 않다.
그 많이 내리던 눈은 어느 곳에 쌓였고 내 귀를 얼게 만들던
삭풍은 어디로 숨어 버린걸까? 진정 12월의 중순이 지났건만
평상의 기온은 가을날의 막바지쯤 되는것 같다.
젓갈의 고장. 강경을 지나 금강위에 놓여진 황산대교를 건너 부여 임천면
대조사를 찾아 가는길.
금강 하구언에서 막혀진 물길은 흐름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잔잔하다.
강인지, 호수인지는 알려진 선입감으로 밖에 메모되지 않는다.
강변은 도로를 중앙으로 양편이 모두 비닐 하우스 집단촌으로 바뀌어 버렸다.
방울 토마토 산지란다. 부여군 세도면. 전국물량의 40%가 이곳에서 생산된다고 하니
그 규모 또한 대단하다.
한 겨울이지만 하우스속은 여름이다 농한기가 아니라 농번기 란다
4계절, 쉬는날이 없다는 방울 토마토. 농가는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할수 있는 일이 있다는것이...
겨울 농촌은 빈들뿐이다.
푸르름은 모두 갈색으로 변하고 잘려진 벼 밑둥만이 흔적을 남기고 있다.
농수로엔 흐르다 남겨진 물이 웅덩이에 고여 있다. 그 옛날 우리 어릴적
같으면 지금쯤 미꾸라지 잡느라 농수로 물을 퍼냈으려만 요즈음은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단다. 아니 어쩌면 농약피해로 미꾸라지가 없을지도 모른다.
생활모습도 늘 변하기 마련이니까.
강경에서 15Km쯤 달리면 임천면 중심지를 만나고 그곳에서 20여분 걸어오르면 성흥산성을 만난다.
그 산자락아래 남향으로 작은 사찰 대조사(大鳥寺)가 포근히 자리잡았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 6교구 마곡사(麻谷寺)의 말사(末사)인 작은 절이다.
나는 부여에 올때면 가는길에 가끔 들린다.
성흥산성을 향해 오르는길
면사무소 주변에 차량을 주차시키고 산길을 따라 오른다.
참새무리가 "푸드득"날아오른다.
낙곡이라도 주워먹으려고, 산자락 밭둑에서 옹기 종기 모였다가 내 발자국 소리에 놀란듯 날아
나무숲으로 달아난다 우리 어릴적엔 참새가
참 많았는데 요즈음은 그 수가 많이 줄어든 느낌이다.
참새떼 보기가 그리 쉽지않다.
무슨 천적이라도 나타난 것일까?
산탄 연발 새총 갖고 다니는 사람도 정말 보기 힘든데...
겨울산, 가랑잎 구르는 소리가 좋다.
억새의 마른가지도 바람에 서걱이며 합창을 한다.
산성 오르는길, 대조사로 향하는길, 갈림길이다.
대조사 입구 철문이 열려있다.
한겨울이지만 솔가지의 푸르름과 조리대의 푸른 잎새는
아직 변함이 없다.
포장되지 않은 흙길, 그 푹신한 느낌이 발에 전해진다.
절집이 눈에 들어온다. 아니 언제 새로 지었을까?
옛날 요사채를 철거해버리고 아담한 한옥 기와집으로 새로 지었다.
아직 단청을 하지못한것으로 보아 요 근래 지었는 모양이다.
햇살이 포근히 원통보전 아래 내린다.
스님 한분이 예쁜 꽃사슴의 등을 쓰다듬고 계신다.
아니 웬 꽃사슴.
꽃사슴 목에는 방울달린 끈이 걸려있고 사람을 보아도 도망치거나 눈을 크게
뜨지도 않고 여전히 스님앞에 서있다.
이곳에서 새끼때부터 키운 꽃사슴이란다 황견과 함께 이곳 절집의
한식구가 되었단다 묶어두지 않아도 멀리 도망가지 않고
주변 산자락을 오가며 먹이를 찾아 스스로 먹는단다.
원통보전앞에 있는 대조사 석탑. 그리고 범종각 작은 규모있지만 정(情)이 느껴지는 산사다.
바람에 풍경이 운다 고요를 깨운다.
뒷편 거대한 석조 미륵보살 입상이 눈에 들어온다.
미래세계에 나타나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보살을 형상화
한것으로 높이가 10m나 되는 거구이다.
머리위에는 이종의 보개를 얹은 네모난 관(冠)을 쓰고 있으며 보개의
네모서리에는 작은 풍경이 달려있다 관밑으로는 머리카락이 짧게 내려져 있는데 이와 같은
머리 모양은 관촉사 석조미륵 보살도 마찬가지란다.
논산에 있는 관촉사 석조미륵보살 입상과 쌍벽을
이루는 작품이란다.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왼손은 배에 대어 연꽃가지를 잡고 있다.
석조 미륵보살입상은 밝은 미소를 머금은채 저먼 동쪽 하늘을 한없이 쳐다보고 있다.
미륵 보살도 일품이지만 그옆 바위틈에 뿌리 내린 한그루 소나무는 정말
아름답다 못해 절세미인 형상의 유연한 모습이다.
마치 미륵보살을 위한 그늘을 만드는듯 휘감아 뻐친
가지 가지는 그저 보아 넘기기 어려운 자연 모습이다.
소나무가 있어 더욱 빛나는 미륵보살입상
그 아래 새로지은 융화보전은 내부에 불상을 별도로 모시지 않고 유리문밖의
미륵불에 참배하도록 배치했다.
대조사 석불. 말 없이 동쪽 하늘을 응시하며 밝은 미소를 전한다.
뒷편 가지런히 뿌리내린 장송들
어느것하나 거져 생겨난 모습이 아니다.
크고 작고, 그리고 산신각에 오르는 오솔길사이 숲은 나름대로의 마음 수양길이다.
욕심을 버리고, 가지고 있는 것보다 버리고 가야하는것들을 알려준다.
마음을 비우라고 바람이 솔잎을 흔들며 깨우쳐준다.
작은 산사 대조사. 일주문도 없고 사천왕상도 없다.
그 흔한 경내 울타리도 없다. 오르는길이 산이고 절집이다.
아무것도 가지지 말고 가벼운 걸음으로 오라고 손짓한다. 무거운 마음 둘곳이
없다면 가지고 와서 놓아두고 가란다.
허름한 옷차림으로 와도 좋고
세련되지 않아도 좋단다.
그대의 무거운 마음의 빚을 놓고 가란다.
삶이 힘들면 언제든 찾아오란다.
향기있는 감로수 한잔으로 목 축이고 가란다.
꽃사슴도 보고 같이 놀다 가란다 마음의 평화를 느낄수 있는곳
겨울산사는 그렇게 나를 편하게 맞아 주었다.
지금도 귓전에 남아 울리는 풍경소리
그 소리가 다시듣고 싶고 미륵불의 미소를 보고 싶을때
언제든 다시 가 보리라. 겨울 햇살이 따사롭다.
겨울바람이 차지 않고 훈풍처럼 느껴진다.
작은산사 대조사.
그렇게 내마음에 각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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