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영화 "워낭소리"를 보고

내가 영화관에 간 기억은 아물 아물하다
아니 아득하다 기억의 저 편에 머물고 있었다
그런 요즈음 입소문으로 전해진 다큐 영화.
"워낭소리"얘기를 듣고 정말 오랜만에 극장을 찾았다.

나는 유별나게 "다큐멘터리"프로를 좋아한다
좋아한다기 보다 이 나이때면 누구나 좋아한다는데 사실인지 모르겠다
TV프로그램 중 보는 프로가 주로 "인간극장" "다큐인(人)" "세상에 이런일이"
"다큐멘터리 3日, "일요 스페셜"정도다

그 이유는 꾸밈이 없어 흥미롭다. 다 내 주변의 얘기를 가식없이 펼쳐가는
그들의 순수함에 끌리는것 같다

이번 보게된 다큐영화 "워낭소리"도 그런류의 잔잔한 감동을 주는 가족물이다
당초 감독의 제작 의도는 TV프로그램을 목적으로 제작 했단다
하지만 채택되지 못해 영화관에 올려진 작품이란다 투자자 없이
제작비 1억원 정도 투입된 순수 독립 영화란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어릴적 침을 잘못 맞아 한쪽 다리가 불편한 팔순 할아버지 농부와
15~20년 밖에 살지 못한다는 소, 하지만 40년이나 살고 있는 소,
할머니의 거친 입담이 양념처럼 맛을 더 하는 경북 봉하군
산골, 농촌 마을의 감동적인 소와 사람의 살아가는 얘기이다

제목이 주는 의미도 새롭다
"워낭"이란 소의 귀에서 턱밑으로 늘어 뜨려 단 방울이란다.
나도 농촌에서 자랐지만 우리고장에서는 절집 처마에 매달려 바람에 우는
소리와 비슷하다고 하여 쇠풍경 이라고 불렀다
워낭이란 소리를 들은것은 이 영화 때문이었고
국어사전에도 명확히 나와 있었다

그 워낭의 의미는 소의 위치를 알려주는 역활을 했다
농촌에서 주로 낮에는 산자락 넓은 풀밭에 아침에 매여 놓았다가
저녁에 다시 집으로 몰고 오곤 했는데 좀 늦어 어두워지면 그 소리를
듣고 소를 찾기도 했다

팔순 농부, 최 노인과 40살의 소
그것은 모두가 삶의 기적이었다. 이변 이었다
소는 최노인에게 베스트 프렌드이자, 최고의 농기구 였고
유일한 자가용 이었다

귀가 멀어 잘 듣지 못했지만 희미한 워낭소리는 어떻게 알아 들으셨는지...?
그리고 40년 평생 할아버지와 호흡을 맞추며 일한 소.
사람과 동물의 기묘한 감정을 연결시켜주는 감동이 묻어나는 장면이 참으로 많다

그리고 풀 벌레소리, 새소리, 빗소리, 장작타는 소리등
배경과 어울리는 효과음도 한결 분위기를 돋운다
게다가 아름다운 우리나라 농촌의 그림 같은 영상도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기에 충분하다

내 어릴적 전원풍경이 머리속에 간혹 남아 있다.
5,60대 연령의 관객들이 많은것도 그 이유중에 하나라고 본다

유독히 소를 사랑하는 최노인.
소를 위해 농약 묻은 풀을 먹지 못하도록
음직일때는 꼭 소의 입에 멍에를 씌운다
그리고 기계영농과 농약을 치는 농사를 한사코 거부하고
자연 친화적으로 힘들게 몸으로 농사를 짓는다

모두가 소를 위함이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사료 한번 주지 않고
오로지 풍성한 풀과 직접 끓여주는 소죽으로 대신한다
그런 고집스런 최노인의 소사랑과 힘들게 짓는 손농사에
할머니는 늘 불만이다
할머니의 거침없는 말이 순수하게 펼쳐지는 영화속에 웃음을 만들곤 한다

소와 에쿠스가 같이 주차된 도심주차장. 한미 FTA를 반대하는 군중앞을 여유롭게
지나가는 장면등은 또 다른 웃음을 보여준다

할머니의 등살에 소를 우시장에 끌고 오긴했지만 싯가
일백만원 정도의 소를 오백만원 주지 않으면 팔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려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동안 정들었던 소를 팔수가
없다는 최노인의 정 때문이란걸 할머니도 안다

최노인은 그 소를 몰며 농사를 지어 9남매를 먹여 살리고 교육시켰다
추석날 귀향한 딸, 아들은 소를 팔고 이제 그만 일하시라고 난리들이지만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수의사가 늙은소를 보고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소가 겨울 땔감을 다 실어다 놓고 어느날 일어서지를 못했다
끝내 소가 죽자 할아버지는 40년동안 한번도 벗지 않은
코뚜레와 워낭을 벗겼다
그리고 눈이 내리는날. 밭 가운데에 포크레인 으로 구덩을 파고 그 자리에 소는 묻혔다
할아버지는 워낭을 흔들며 "좋은데 가라"고 일러준다.
그렇게 이 영화는 막을 내린다

할아버지와 소의 사랑
끈질긴 인연, 정으로 겹쳐진 세월이 묻어난다
늙은소의 걸음걸이만 보아도 위태롭다 그 상태이지만 작은 달구지를 끈다
할아버지는 불편한 다리 때문에 타고 가지만 할머니는 힘든 소를 위해
뒤에서 달구지를 밀고 있는 장면

새로 사온 젊은 소가 송아지를 낳았다
할머니는 암 송아지을 낳았다고 투덜거리지만, 송아지는 자기를 낳아준
어미소보다 늙은 소 곁을 맴돈다

같은 외양간에서 소죽을 먹을때 젊은소는 힘을 바탕으로 늙은 소를
뿔로 위협하며 밀어낸다
그 모습이 애처로워 최노인은 막대기를 들고 젊은 소를 때려준다
늙은소도 충분히 먹을 수 있게 배려하기 위함이다

이 영화는 역설적으로 어릴적 내 그리움의 모습을 들추어냈다
슬픈영화라기 보다 잔잔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한
시골 동네길을 만나는듯 했다

말못하는 동물들과의 교감
그 끝은 어디일까? 무엇이 통하고 연결되기에 가능한것일까?
과연 영혼은 있는것일까? 아니면 전생이 있어 애틋함으로 부활 한것일까?

정이 메마르고 자꾸만 각박해졌다는 현실의 삶속에 오아시스 같이 갈증을
해소시켜 주는 시원하고 감동적인 한편의 영화였다. 기록물이다

눈이 크고 둥그런 순박한 소의 눈에서 마지막 눈물이 주르르... 흐르는
장면에선 손수건이 필요했다

나도모르게 숙연해지고 눈물을 몰래 훔쳐야 했다
아마도 내가 이 영화에 감동을 받은것은 내 어릴적 우리집에도
소를 키웠기 때문일게다 소꼴도 베고 소죽도 쑤고...그건 늘 차남인 내몫 이였다.

소는 그 당시 일을 하기위한 큰 일꾼이자, 농기계였고, 아이들 교육비를
해결하는 귀중한 돈 줄 이었다
1년이면 송아지 한마리가 태어났고 그것을 팔아 등록금으로 냈다
애지중지 우리네 아버님들은 소를 아이들 못지않게 하나의
귀한 식구로 대접하기도 했다.그러다 보니 소도 영리해서 집안의 서열을 알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인지 아이들과 여자들은 늘 깔 보는 그런 모습도 많이 있었다.

감동적인 노부부와 소의 전원드라마. 구수하고 시원한 동치미 같은 휴먼다큐.

잠시 시간내어 관람해 보시고 어린날의 추억을 더듬어 보심은 어떨까요?
주저없이 추천해 드립니다. 후회 안 하실 겁니다

강추, 이럴때 필요한 언어 인가 봅니다.

금산신문 webmaster@ig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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