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이가 되면 모두들 동신(童心)이 되나 보다
지난 세월은 힘들었으나 하나의 추억이 되고
언제나 삶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줄 모른다
고달프기만 했던 삶이 아름답게 승화되고, 어려웠던 날들이 훈장처럼 빛나며
부끄럽지 않다. 자신도 모르게 이끌어온 삶이 대견스럽기도 하고
때론 스스로를 용감했다고, 칭찬해주고 싶은 심정은 무엇을 의미할까?
물질의 풍요는 마음의 풍요까지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
같이 성장하지 못했다
삶은 엄청나게 좋아졌으나 행복 지수는 늘 제자리에 머물렀다
아니 어쩌면 뒷걸음치는지 모른다 물질의 풍요는 마음의 풍요와 비례하지
못하는 것일까?
정신이 지배하는 삶은 늘 목마르고 부족하다
그 목마름은 삶을 팍팍하게 만들고 정으로 똘똘 뭉쳐야 할 사회에,
가정에, 크나 큰 희생을 만든다
강호순 사건이 그렇고, 용산 철거민 사태가 그렇다
10년이 넘게 살아도 옆집이 무얼하는 사람인지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서로가 서로를 귀찮아 한다
섣불리 접근하려 하면 오히려 경계의 벽을 쌓는다
무엇이 우리사회를 그렇게 만들었고 그 책임은 누구일까?
불신의 시대가 만든 반갑지 않은 부산물이다.
팍팍한 도시의 삶, 경제불황은 더욱 그런 삶을 심각하게 만든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더욱 우리네 삶을 조여온다. 오고만 있다
날씨 화창한 지난 토요일.
비내리고 난후라 시계도 멀다. 저 먼산도 눈안에 들어온다
바람시원하고, 공기 맑고, 계절은 겨울의 막바지 이지만
느낌은 봄의 중심에 서있다
예년의 3월 중순과 같은 기온이라니 한달이 앞서 가는 것이다
추억 한장 찾아 충주로 향한다
내 어린시절 꿈이 자라고 내 동심이 영글었던곳.
그곳은 생각만 하여도 기쁨이 넘친다
그저 큰 계획없이 떠나는 짧은 시간여행. 그 시작만으로도 즐겁다
달리는 길에서 가끔 차창을 내리고 이른 봄바람을 차안에 가득 담는다
벌써 싱그러운 봄 내음이 느껴진다
우선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를 찾아 가고 있다
그것도 내가 걸어 다녔던 길을 따라간다
그 시절엔 비포장 우,마차 길이었지만 말끔하게 아스콘으로 포장된
지방도. 길은 포장되고 구불진 도로 가 직선화된것 이외엔 그대로다
저 산이 있었고, 그 언덕도 그대로다 불어오는 서풍 때문에 무척 추웠던 날맹이 언덕.
이름도 한대(寒大)고개 였다
산자락에 작은 공장이 하나 새로 생겼을뿐 고개 옆 농가도 그대로 있다
그집엔 초등교 동창 친구가 살았었는데... 그 친구는 안양으로 가고
지금은 없다
제천과 조치원을 잇는 충북선 철도, 개울가 다리밑을 지난다
내 어릴적 웅장한 불도저가 그 철길을 만들었다
단지 변한것은 그 당시는 단선이었지만 지금은 복선이 된지 오래고, 디젤 기관차
대신 전동차가 오가고 있는 것이다
'기차길 옆 오막살이, 아기 아기 잘도 잔다'... 라는 동요가
이런 마을을 보고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제천, 단양의 시멘트와 충주비료공장의 요소비료가 이 철길을 따라
전국으로 옮겨졌다
철다리를 지나면 방앗간(정미소)이다
어린시절 부자집은 술을 만드는 양조장과 쌀을 찧는 방앗간이었다
지금 그 자리엔 남겨진 고가가 사는 사람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고
정미소의 흔적은 온데 간데 없다 발동기가 '펑펑'소리내며 돌고
피대줄로 연결된 동력전달 장치는 어지럽게 돌고있었는데...
그곳을 지나면 곧바로 초등학교다
정문 앞에 차를 세우고 학교 안으로 걸어 오른다
매년 4월말 총동문 체육대회가 열리고 있어 새롭게 느껴지진 않지만
이렇게 토요일 오후 고즈넉하게 찾아 오기는 처음이다
이곳이 내가 6년간 다닌 초등학교.
옛 목조 건물은 모두 철거되고 아담한 스라브 구조의 교사
그 넓게 보여졌던 운동장. 그리고 주변 울타리 이렇게 작게 만 보일까?
눈높이의 중요성이 새삼 머리를 스친다 우리시절 전교생이
칠백여명 넘던 학생수는 지금 일백명이 채 안 된단다.
많이도 변했다 그 시절과 변하지 않은것은 정문 위치가 같은곳 이라는것과
동편 물레방아 설치된 곳에 있는 느티나무 한그루 뿐이다
그 느티나무에서는 세월의 흔적이 보였다
그리고는 모두가 예쁘게, 앙증맞게 변해 버렸다
학교 후문 쪽으로도 큰 도로가 뚫렸다
학교를 한바퀴 돌았다
저기는 무엇이 있었고, 이곳은 화장실이었는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리고 운동장에 남아있는 작은 모래들. 그 당시 우리는 가방 대신
책 보자기를 가지고 다녔다 가방은 고가품이었기에 꿈도 꾸지 못했다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남한강변 모래사장에서 책 보자기에
모래를 담아 고사리 손으로 날랐다 운동장이 비만 오면 질척거렸기 때문에
그곳에 모래를 덮을 목적으로 ----지금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을 내용이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학교주변도 그리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옛날 지서가 지금은 경찰 지구대로 이름만 바뀌었고 그 위치 그대로 있다
그리고 장 이섰던 장터는 집단 이주를 해야만 했다
지금이야 충주댐 준공으로 홍수의 피해는 없어졌지만 바뀐 지형은 몰라보게 변했다
양조장도 없어지고 상가도 자취를 감추었다 단지 새로 생긴것은
출주댐 준공으로 관광객이 몰려 오자 민물고기 매운탕, 송어 비빔회
횟집등 대형 식당들이 충주호반 강변과 옛날 장터에 여기 저기 생겨났다
어릴적 5일장이 섰던 모습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대장간도, 양조장도, 국수틀집도, 기름짜던 기름집도 없어졌다
고무신 팔고 옷, 양말 팔던 구멍가게는 이젠 대형마트가 대신하고
등유로 쓰던 석유 기름은 전기가 그 임무를 수행중이다
듬직한 소가 끌던 우마차는 1TON트럭이나 탈탈 거리는
경운기가 그 역활을 맡았다
아직 남은 "뻥튀기"할아버지는 마을을 정기적으로 찾아 다니시며
"뻥이오"을 외쳐 대신다
장터를 지나 충주댐으로 향한다
가뭄의 여파는 충주댐 물줄기를 저 아래로 내려 버렸다
하얗게 드러낸 강변의 알몸 모습
보이지 않던 작은 돌무덤 마져 들켜 버렸다. 선착장의 유람선도 묶여진 것일까?
주말 오후, 찾아온 관광객이 없다
시내버스 한대 만이 오지않는 손님을 기다리며 주차장에서 졸고 있다
시간이 늦어서 일까? 매점도 불을 끄고, 닫아 버렸다
넓은 주차장은 텅 비어 버렸다
낮은 호수 물결만이 실바람에 일렁인다
선착장을 지나 호반도로를 따라 오른다
화가의 집도 있고, 시인의 집도 보인다 그리고 아름다운 펜션도---
"민들레"라는 전원 카페도 예쁘게 눈에 들어온다
마당엔 모닥불이 피어오르고 연인들은 정겹게 차를
마시며 밀어를 나눈다 밥은 맛있게, 뜰은 예쁘게, 술은 거나하게,
분위기는 좋게,라는 작은 글귀가 눈에 남는다
모닥불에서 피어오르는 장작내음이 좋다
따스함이 좋다. 연기도 매케하지 않고 구수함이 느껴짐은 왜 일까?
꼬마 전구의 밝은 불빛이 어둠을 밀어내고 환하게 호반의 숲을 밝힌다
어린시절의 추억
내 고향의 흙냄새. 산 모습. 강 모습. 추억 한자락... 그리움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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