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한밭수목원에서

최한용 DY엔지니어링대표/수필가

야! 정말 대단하다, 멋지다. 도심속에 이토록 넓고 아름답게 조성된 수목원이 있다니…! 같이 대전 한밭수목원을 둘러보고 놀랐다는 친구의 말입니다. 옆으론 늘 맑은 물 흐르는 갑천(甲川)이 있고, 그 뒷편엔 ’93 엑스포과학공원. 그 뒤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우성이산의 푸른 모습이 한밭수목원의 풍치를 더해줍니다. 고향 충주에서 친한 벗이 결혼식 참석차 대전을 방문했기에 잠시 겨울, 한밭수목원을 안내했지요.

날씨가 조금 풀려서인지 지난 일요일 오후, 남문 광장과 수목원엔 가족단위 방문객이 북적이고 있었습니다. 넓은 남문 광장엔 연인들의 2인용 자전거타기, 꼬마들의 작은 전동차 시승, 젊은이들의 인라인 스케이트 타는 모습. 장난감 무선 자동차 경주 등… 다양한 놀이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그 틈에서도 통제하곤 있었지만 어묵(오뎅), 커피, 떡볶이 등 길거리 판매상들이 오가는 손님들을 끌어들이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차가운 겨울 날씨에 따뜻한 어묵(오뎅) 국물은 일품이었습니다.

한밭수목원. 이번 방문으로 4계절을 모두 보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꽃피는 봄, 수목 울창한 초록의 여름 숲, 단풍이 아름답고 억새가 하얗게 핀 가을, 그리고 습지가 꽁꽁 얼어버린 겨울. 그 겨울 모습 속으로 빠져듭니다.

우선 동원(東園)을 먼저 방문합니다, 늘 뿜어오르던 분수가 깊은 동면에 들어갔습니다. 꼬맹이들이 한 여름이면 옷을 적셔가며 드나들던 바닥 분수. 12월부터 3월말까지 깊은 잠에 빠져있었습니다. 아름답던 장미원도 마른 가지에 가시만이 남았습니다. 여름날의 붉은 꽃을 피우기 위해 지금 그들은 추위와 싸우고 있는 중이랍니다. 고난을 이겨본 사람만이 더 큰 행복을 쟁취하듯그들도 추운 인고의 날을 이겨내야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울지도 모릅니다.

정자가 아름다운 큰 연못. 꽁꽁 얼어버렸습니다. 그 위에 하얗게 눈이 아직 쌓였습니다. 물레방아도 멈추고, 물 흐름도 정지되어 버렸습니다. 그 위 보도 데크를 따라 걷습니다. S자 형으로 굴곡된 보도테크가 참 아름답습니다.

식이 식물원 쪽으로 오릅니다. 지난 가을 방문시 꽃보다 열매가 더 아름다운 피라칸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피라칸타 열매는 어찌되었을까? 궁금해서이지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그 많던 열매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새들이 모두 따먹은 것이지요.

겨울날 먹을 것은 없고 그 열매를 다 따먹은 겁니다. 일부 바닥에 떨어지긴 했어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피라칸타의 생존법이지요. 새들을 유혹해서 자기의 종자를 멀리 보내는 겁니다. 영역 싸움이 되는 것이지요. 자연의 섭리는 참으로 묘하고 기특합니다. 종족 보존의 본능이기도 하지요.

전망대에 오릅니다. 주변의 모든 풀과 나무는 잠시 성장을 멈추었습니다. 겨울이라는 혹한의 계절을 스스로 껴안는 것입니다. 그 아름답던 숲도 그저 누렇게 변해버린 마른 모습입니다. 땅도 꽁꽁 얼어버렸습니다. 생명이 있긴 하지만 멈추어버린 시기입니다.

그래도 까치 등 날짐승들은 먹이 찾아 열심히 숲 주변을 헤매이고 다닙니다. 사람들이 흘려버린 과자 부스러기, 음식물에 매혹되어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나 봅니다. 부산 바다갈매기가 관광유람선에서 사람들이 던져주는 새우깡에 매료되어 배뒤를 졸졸 따라오며 날아드는 것과 같은 이치겠지요. 갈매기 체면이 말이 아니지요. 자칫 야생의 본능을 잊어버릴까 걱정입니다.

겨울 한밭수목원은 나름대로 매력적입니다. 낙엽 쌓인 길옆을 걷노라면 그 바삭이는 소리에 귀가 즐겁습니다. 도심 중앙에 있기에 바람도 그리 차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푸르름을 자랑하는 소나무. 싱그러운 나무와 꽃들이 피었던 자리엔 명패만이 남았습니다. 새봄이 오면 그곳엔 또 새로운 새싹이 돋아오르겠지요.

사람들도 많습니다. 뛰는 사람도, 천천히 걷는 사람도, 연인과 다정한 대화를 즐기는 사람도, 한창 즐거워 까르르 웃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곳곳에서 볼 수 있고 들려옵니다. 추운 날 땀을 흘리면서 예정된 코스를 뛰는 아저씨들도 보입니다. 발걸음이 가벼워 보입니다.

건강이 보입니다. 의료 시설도 중요하지만 사전 예방을 위한 건강시설이 더 필요한 것 아닐까요? 뛰고, 달리고, 웃고, 노래하는 즐거운 삶에는 병마가 침투할 틈이 없을 겁니다. 사전 예방과 검진으로 미리미리 건강한 삶을 준비하여야겠지요. 오래사는 것보다 아프지 않고 스스로 움직이며 살아가는게 훨씬 행복하지요. 평균 수명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좋은 현상이지만 건강하면서 오래 살아야겠지요.

동원을 천천히 둘러보고 서원(西園)으로 옮겨갑니다. 남문 광장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조성된 한밭수목원. 서원은 2005년 4월에 개원되어 수목들이 제법 이제 자리를 잡았습니다. 나무들도 무성합니다. 동원이 아기자기하고 아름답다면 서원은 울창하고 깊은 산속 맛을 줍니다.

습지원이 그렇고 명상의 숲이 그렇습니다. 피톤치드향이 뿜어져 나옵니다. 침엽수원, 굴참나무숲, 생태숲, 졸찰나무 숲을 천천히 음미하며 걷습니다.

야외 광장옆 억새숲은 아직도 가을 모습 그대로입니다. 억새의 서걱임이 들려옵니다. 단지 하얀 열매만이 바람에 날아가 버렸습니다. 바람이 불어야 좋은게 억새숲입니다. 잔디밭길, 바닥에 깔린 돌길이 정겹습니다. 꼭 개울가 징검다리를 건너는 기분입니다.

잠시 둘러본 한밭수목원. 친구의 감탄이 이어집니다. 대전에 살아서 좋겠다고…. 도심속 수목원 덕분이지요. 자주자주 들를 예정입니다. 벗이라도 타지에서 오면 컴컴한 카페 찻집보다 이곳으로 안내할 예정입니다. 공기 맑아 좋고, 입장료 없어 비용 절감되고, 주차 쉽고, 숲 향기 그윽하고…. 겨울 한밭수목원에서 느껴본 자신의 소감입니다.

금산신문 webmaster@ig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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