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 금산신문

지금 길은 어디에나 있다.
먼저 태어났던 사람들이 걸었던 길.

뒤를 쫓아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따라 걷고 또 언젠가 모든 생명들이 지나야 할 필요가 있을 때 그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면 걸었던 흔적이 남고 또 남고 또 남으면서 그 곳엔 하나의 길이 만들어진다. 그러기에 길은 처음부터 있지 않았다.

태초에 지구가 생성되고 물이 흐르고 동·식물들이 생겨나고 살아가면서 그들의 필요에 의해 길은 만들어지기도하고 없어지기도 했다.

어릴 적 뒷동산에 오르면 토끼가 다니는 길이 있었다.
산토끼는 늘 같은 길로만 다니는 습성이 있게 때문에 사람들이 그 곳에 철사로 만든 올무를 설치해 놓고 그들을 잡곤 했다.

지금은 동물 보호 차원에서 위법으로 관리되고 있지만 우리 어릴 적엔 그렇지 않았다.

길.
작은 시골 길이 사람이 늘어나고 자동차가 늘면서 新作路가 되고 1970년대초 서울 인천 간 고속도로를 첫 시작으로 서울, 부산간 428Km의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새로운 길 문화가 싹트기 시작하였고 전국이 하루 생활권으로 바뀌는 획기적인 도로망으로 바뀌어갔다.

지금은 남·북을 연결하는 고속도로와 중간 중간 동서를 연결하는 도로가 개통되고 또 공사가 진행중이어서 머지않아 전국이 바둑판처럼 사통팔달로 연결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

요즈음 고속도로는 물론이고 국도, 지방도도 왕복 4차선을 기본으로 하여 산이 있으면 터널을 뚫고 물이 있으면 높게라도 다리를 놓아 연결한다.

옛날처럼 산을 돌고 언덕을 넘는 그리고 큰 강을 피해가는 그런 도로는 만들지 않는다.
도로 공사의 핵심인 토목 기술 공법 연구와 건설 중장비의 획기적인 개발은 그런 공사를 가능케 만들었다.

그렇게 직선화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얻는 물류비 절감은 천문적 숫자가 되리라 생각된다.
도로 공사 비용은 더 들겠지만 그 위를 오가는 차량들의 연료비, 그리고 시간절약은 계산으로 어려우리 만큼 엄청난 득을 보고 있다고 본다.

아마도 도로의 개설이 현 시점을 따라 오지 못했으면 국내 자동차 보급도 현재보단 많이 떨어졌으리라 본다. 세계를 향하는 우리나라 자동차 공업.

그것은 단지 그들의 개발과 제조 능력뿐이 아닌 국가 산업기반인 신도로의 개설 및 확장도 그 몫을 했다고 본다.

지난 일요일 가족 모임 관계로 충북 제천을 갈 일이 있었다.
고향 충주에 잠시 들려 부모님 모시고 제천으로 가는 길, 충주 제천간 왕복 4차선 국도가 훤히 뚫렸다.

새로운 길이 개통되기 전에는 국도 왕복 2차선인데다가 다릿재, 박달재를 넘는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산길이어서 충주에서 제천까지 거의 2시간 가까이 걸렸는데 지금은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이렇게 새로운 길은 시간 개념을 반으로 줄여 놓았다.

박달재 터널(길이 1960m)은 ‘97년 개통되었지만 다릿재 터널은 지난해 개통되어 충주-제천간이 새로운 길로 바뀌어졌다.

박달재.
제천 10경중 하나다. 해발 453m 충북 제일의 고갯길. 대중가요 “울고 넘는 박달재”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터널 개통전에는 오가는 모든 차량이 이 재를 넘어야 했다.

박달도령과 금봉낭자의 애절한 전설이 서려있는 곳.
가족 모임 행사시간에 다소 여유가 있어 제천가는 길에 터널을 통과하지 않고 우측으로 핸들을 돌려 박달재로 향한다.

구불구불한 옛길이 그대로 있다. 차량도 없는 한적한 도로.
새로운 길이 만들어지고 나니 옛길은 찾는 사람이 적다.

그저 관광 드라이브 코스로 안성맞춤이다.
언덕에 오르자 넓은 주차장이 나오고 스피커에선 울고 넘는 박달재 멜로디가 구성지게 퍼져 나간다.

1년 365일 계속 들려준단다. 휴게소는 옛 그대로이건만 규모에 비해 찾는 이가 적다.
그 아래 아름다운 펜션이 생겼고 연수원 건물이 보인다.

휴일이라 연수원 주위는 한가하고 넓은 휴게소엔 몇 사람이 이곳 특산품이라는 도토리 음식을 들고 있다.

주변엔 새로이 목공 공방이 생겼다.
큼직큼직한 나무 등걸로 장승을 깍아 세우고 상품으로 판매도 하는 모양이다. 큼직큼직한 남근 모습도 보인다. 부끄러운 듯 조심스럽게 카메라에 담는 여인의 모습이 더 인상적이다.

넓은 주차장, 햇살이 맑다. 하지만 산위라서일까. 지나는 바람은 아직 매섭다. 아직 봄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터널이 개통 되기 전 이곳 도로는 차량이 꼬리를 물고 넘나들었다. 단양에서 시멘트를 가득 실은 대형화물 차량이 이곳을 넘어 남부지방으로 옮겨갔다. 한여름엔 아스팔트 도로에 화물차량 바퀴 눌림 자국으로 굴곡이 생기곤 했다.

그리고 힘겹게 고개를 올라온 화물 차량은 이곳에서 기사도 차량도 함께 쉬어 가곤했다. 바퀴에서 전달되는 열 때문에 타이어 펑크를 우려한 어떤 기사 분들은 타이어와 휠 부분에 냉각을 위해 한여름엔 물을 뿌리기도 했다.

지금은 중앙고속도로 개통으로 대구, 부산 등 경상도 지방으로 가는 화물은 이곳을 경유하지 않고 곧바로 고속도로를 이용한다.

다시 잠시 휴식과 쉼을 뒤로 하고 박달재 옛길을 따라 제천 쪽으로 차를 움직인다. 내려 가는 길. 모퉁이 산자락엔 하나, 둘 전원주택이 생겼다.

도심의 콘크리트 구조물과 소음을 피해 이곳에 아름다운 집을 짓고 자연과 호흡하며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집인가 보다.

한적한 도로 옆, 산세 수려하고 햇살 풍요롭게 내리는 남녁을 향한 집. 우선 한마디로 예쁘다. 그림 같다. 마당 넓고 돌로 조성된 정원이 산세와 어울린다. 저 정도면 정말 새들도 와서 놀고 가지 않을까.

잠시 지나며 바라본 집이지만 부럽다. 저기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아마도 마음 너그럽고 삶을 여유롭게 사시는 분들이리라.

옛길은 이렇게 버려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주거 문화를 만들어 간다. 도심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새로운 길을 만들기 위해 환경을 훼손할 필요도 없다.

그저 언덕길 따라 하나, 둘 주거 문화가 형성되어 가는 듯 하다. 예쁘게 아름답게 집도 지어진다.

도심의 아파트처럼 획일적인 사각 콘크리트 구조물이 아닌 제각기 소유주 의도에 따라 모양도 마감재도 그리고 외부에서 보는 칼라도 다르다.

숲 속에 아니 산속에 지어진 삶의 공간.
공기 맑고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오를 수 있는 산이 있고 계곡엔 늘 물이 흐른다.
새들도 찾아오리라. 그런 여유로운 삶터엔 행복이 머물고 있으리라.

늘 꿈꾸던 그런 집.
몇 년 후 나도 그런 집에서 멋진 노후의 삶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길.
새로운 길은 계속 만들어 지리라.
옛길을 넓히고 똑바르게 하는 선형 변경 공사도 계속 되리라. 그 길처럼 우리의 국력도 가계 생활도 쭉쭉 뻗어 나갔으면 좋겠다.

모두가 행복하게, 부강하게 사는 나라. 그런 기반을 만드는 길처럼 스스로도 마음의 길을 만들어 나가야 겠다.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성실하게 삶에 매진하는 자신이 되기를 희망하면서 길 위에서 길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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