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서의 설날 풍경,

고향으로 가는 길은 마음이 한결가볍다.
서두름도 필요없다, 그저 차량의 흐름만을 따라가면된다. 마음이 여유로울땐 밀리는 차량대열에 끼어 있어도 짜증이 나지않는다. 많은 사람이 고향으로 향하다보니 교통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시와 군의 경계를 지날때는 으례 구제역 방역을 위한 소독관계로 차량이 주춤거렸다. 증평I.C를 빠져 나오자 1차 방역중이었고, 음성군에 진입할 때도, 충주시로 들어설 때에도 방역지역을 거쳐야만 했기에 충주까지 가는데 3번의 방역지역을 통과했다. 고향으로 가는 설레는 마음으로 어제 말끔히 세차를 했지만 소독액은 차량을 뒤덮고 말았다. 하지만 구제역 확산 방지를 위해서는 사소한 것을 어찌 문제 삼으랴. 어서 구제역이 사라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형님댁은 가축을 사육하지않아 다행이었지만 근교 농가에선 이번 구제역 여파로 돼지를 살처분 한 적이 있었기에 더욱 방제가 필요한 곳이었다.

방역지역에서 주춤 거리다 보니 예정보다 조금 늦게 고향에 도착했다. 동구밖 정자나무가 우선 나를 반긴다. 도로부분은 괜찮았지만 주변은 아직 온통 눈 천지다. 산이 하얗고 들이 하얗다.충주는 내가 살고 있는 대전보다 훨씬 추웠단다. 이번 겨울추위가 대단했단다, 최저 기온이 영하 20도까지 내려 갔단다. 밖에 둔 소주병마저 얼어 버렸다니--- 집 뒤 산자락에 우뚝 서 있는 소나무도 금년엔 많이 내린 눈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했나 보다. 가지 하나가 부러진 채로 매달려 있다.그렇게 고향은 구제역과 추위로 작은 몸살을 앓고 있었다.

설날 아침, 가족 모두가 모였다. 차례를 지내고 떡국을 먹는다. 내 고향에서는 설날, 떡국차례를 지낸다. 떡국이라기보다 만두국에 가깝다. 정성껏 빚은 만두가 함께 들어가기때문이다. 어릴 적엔 남자애들도 설 전날밤에는 바쁘신 어머니 손을 도와 밤이 늦도록 만두를 빚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만드신 만두는 정말 맛 있었다.만두 소 차이 때문이 아닐까? 오랜만에 서울,수원,대전 충주,음성 등 뿔뿔히 흩어져 살고 있는 가족이 모여 모였다. 막내동생 아들도 엊그제 군에 입대한 것 같았는데 20여일전에 제대해서 함께 할 수 있었다. 나 자신은 잘 느끼지 못하는데 커 가는 조카들 모습을 보면 세월의 흐름이 얼마나 빠른가 다시 한 번 느꼈다.

차례를 마치고 부모님 산소 찾아 성묘를 갔다. 그래도 다행인것은 날씨가 풀린 것이었다. 그 춥던 날씨가 설날을 전후해 확 풀렸다. 춥지않은 날씨기에 꼬마들까지 모두 산소로 향했다. 아직 그늘진 산자락엔 눈이 많이 남아 있었다. 눈을 손으로 치우고 일렬로 서서 절을 올렸다. 그리고는부모님 산소를 돌아보니 봉분 뒷편으로 곱던 잔디가 조금 망가져 있었다. 이번 돌아오는 한식날 새로 잔디를 입히자고 형제들과 약속을 하고 산을 내려왔다.

오는 길에 조카들에게 차를 먼저 보내고 마을 길을 걸었다. 우리가 자랄 때보다는 마을 규모가 훨씬 작아졌다. 빈집이 많이 늘었고 사람수도 반이상으로 줄었단다. 젊은이들은 도심으로 떠나고 나이드신 분들만이 고향을 지키고 계셨다. 동네에서 아이울음 소리가 사라진지 몇년이 되었단다. 그래도 초등교는 면 단위마다 1개교씩 남아있긴 했지만 전교 학생이 백 명 미만이란다.교실이 모자라 오전반, 오후반으로 수업을 하던 우리시절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산자락 화전밭은 밭이라는 이름을 잃은 지도 오래고 옛날 고구마 심었던 집 뒷편 밭에는 소나무가 굵게 자라고 있었다.

노동력도 부족하고 소득이 시원찮으니까 묵혀 버린 것이었다.요즈음은 밭 뿐만이 아니고 논마저 묵혀져 있는곳도 있었다. 그런 논엔 누렇게 말라버린 잡초만이 무성했다. 기계화 영농이 대부분 이루어지긴 했지만 노동력,농약대,비료대 등 투입되는 비용에 비해 떨어진 쌀값으론 수지타산이 턱없이 맞지 않으니 농사를 포기한 것이다. 그런 논을 많이 볼 수 있었다.대안은 없을까? 옛날엔 작은 다랑이 논에도 벼를 심었었는데---.

일반 작물로는 소득 올리기가 어렵단다. 비닐 하우스를 이용한 특용작물이 대안이 될 수 있겠지만 그나마도 쉽지 않은 모양이다.그러다 보니 이곳 충주까지 특용식물에 관심을 갖게 되어 인삼 재배 면적이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란다.인삼밭의 차광막 모습을 여기 저기서 볼 수 있었다. 뒷산에 올랐다. 제법 울울한 숲일 때에는 오르기 힘들었던 산이였는데 어느 분이 산을 매입해 나무를 베어 버려 민둥산이 되었기에 오르기가 쉬웠다, 나이테가 제법된 참나무 숲이었는데 지난 가을에 벌목하고는 그 자리에 봄이오면 예쁜 소나무 조경수를 심으려 한단다.

봄이면 진달래 꽃 따먹고,여름날 비내리고 나면 버섯 채취하고, 가을이면 도토리줍고,겨울이면 산토끼 몰던
동산이었는데-- 지금은 속살을 부끄럽게 드러내고 있었다. 게다가 베어낸 나무를 실어내기위해 포크레인으로 산에 임도처럼 간이 길도 만들어져 있었다. 울창하던 숲이 황량한 산으로 변해 버렸다. 얼마만큼의 세월이 흘러야 다시 산다운 모습으로 되돌아올까

명절 때면 늘 찾는 고향이지만 이제는 내 어릴 적 고향 모습이 아니었다, 세월의 흐름 속에 고향의 모습도 변해가고 있었다. 어쩌면 순리인지도 모른다. 사람사는 모습이 바뀌어가니 그 흐름에 맞출 수밖에----.농경중심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어가고 시골모습에서 도심의 외곽으로 가까워지다보니 생활의 패턴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래도 고향은 좋았다. 어머니 품속처럼 포근했다. 차츰 주변 모습은 변해갔지만 마음속에 간직된 영원한 동심은 만날 수 있었다. 소꿉장난하며 뛰놀던 내 발자취가 아직 남아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동구 밖 정자나무가, 뒷동산 오르던 길이,멱 감던 저수지가, 빈집이지만 숨박꼭질하던 그 집의 형태가 아직도 남아 있어 나를 반기고 있었다.

고향은 영원한 내 마음속 등불로 언제나 켜져 있으리라 그 속에서 내 꿈이 크고 내 몸도 성장했던 고향.
고향은 늘 그리움으로 남아 있으리라. 그리울 때면 자주 가리라, 고향 산천 만나러.. 그러나 동구 밖 정자나무는 알고 있었다. 내가 고향을 자주 찾아 가지는 못하리라는 사실을.

최한용 webmaster@ig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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