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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군에 자리한 대성산 정취암에 오르다[2]

절집을 돌아본다.
원통보전 모퉁이에 매달린 풍경이 바람에 운다, 그 소리가 청아하게 이 아름다운 계곡으로 내려앉는다.
원통보전,응진전,삼성각,요사채,종무사무소, 해우소까지 작은 바위자락에 예쁘게도 자리잡았다.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곳 저곳 돌아보며 역사의 숨결을 느껴본다.
지금이야 자동차 도로도 연결되고, 전기도 들어오고, 식수를 위한 별도의 탱크도 설치되여 어려움이 없겠지만 그 옛날 이곳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앞선다.
아니면 그런 고통속에서 또 다른 정진과 수행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정취암은 암벽으로 둘러쌓인 양지 바른곳이다.
저 아래는 꽃샘 추위가 한창이였지만 이곳은 아늑하게 막힌 덕분에  생강나무가 벌써 꽃을 피우려고 노란 꽃망울을 보이기 시작했다.옆의 진달래도 일반 산자락보다 빨리 개화할것 같았다.

그리고 절집앞의 큰 나무 위에는 까치가 집을 짓어놓고 있었다.
이번에 지은 것 같지는 않고 전에 부터 있었던 것 같다.새로운 생명 탄생을 위한 준비인지 까치 두마리가 연신 옛집을 기웃거리고 있다. 새로 지을 것인가? 지금 집을 보완해서 쓸것인가? 를 고민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물론 까치가 말을 할 수 없으니 내 주관적 판단이긴 하지만-----.

어릴적 시골에서 자란 경험에 의하면 까치는 이렇게 높은 산위에 집을 잘 짓지 않는다.
민가 근처나 산자락 나무에 높게 집을 짓고 새끼를 키운다. 요즈음은 나무가 적다보니 도심에선 송전탑이나 전봇대 위에 집을 짓어 봄철이면 한국전력과 까치와의 전쟁이 이어지기도 한다.
아무튼 좀 색달랐다, 이렇게 높은 산 위에 까지 까치가 올라와 집을 짓었으니---.

절집은 조용했다, 가끔 방문자들이 부처님 앞에 절을 올릴 뿐 적막이 흐른다.
뒤편 산신탱화는 불화라고 하지만 산신이 호랑이를 타고 행차하는 모습에서 그림의 주제는 토속신앙을 표현 한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원통보전에 모셔져 있는 관음보살좌상은 50CM정도의 크기로 안정감이 있고 단아한 인상을 주었다.
절집을 돌아보고 저 아래 풍경을 다시보기위해 놓여진 의자에 앉았다.
내려다 보이는 조망이 으뜸이다. 이렇게 아름답다 보니 산청9경에 정취암 조망이 들어갈 수 밖에---.

여기서 산청9경을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계절 아름다운 풍광과 일출의 멋스러움을 간직한 지리산 천왕봉.
깊은 물 줄기와 울창한 원시림을 간직한 대원사 계곡.
철쭉이 개화 했을때 장관인 황매산 철쭉,피라미드 모양으로 자연석을 쌓아올린 가락국의 마지막 왕 구형왕능.
거울 같이 맑고 주변 경관이 수려하여 래프팅의 명소 경호강 비경.
전통한옥의 아름다움과 옛것을 소중히 지켜내는 남사 예담촌,남명의 경의사상을 되새겨 보는 남명 조식의 유적지.
풍광이 아름다운 정취암 조망,류의태,허준 선생등 수 많은 명의를 배출한 전통한방의 전통 한방 휴양관등이 산청 9경이란다.

이제 정취암에서의 내려가야한다.
올라온 자연석 돌계단을 따라 다시 내려간다. 뽀얀 봄 햇살이 대지에 살포시  내린다.
바람도 잠들고, 따뜻한 봄볕받은 대지에선 새싹들의 숨소리가 들려오는듯 하다.
머지않아 이마른 대지위에 푸른 잎들이 솟아오르리라.올라갈때 헉헉대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그만큼 경사가 가파른 오르막 길이였다.차는 다시 산 정상을 넘기위해 아직 정식 개통되지않은
2차선 길을 오른다.
산 정상을 넘을때쯤 저 멀리서 차창으로 들어오는 정취암의 모습이 장관이다.
한폭의 그림이다. 나무로 사각틀만 짜서 걸어두면 그건 분명히 아름다운 액자속 풍경이 될것이다.

대성산 위쪽엔 분지가 넓었다, 그곳엔 예쁜 전원주택이 들어서고 펜션도 자리잡았다.
한가한 농촌 모습,여유로움이 넘쳐난다, 집앞 양지쪽엔 벌써 마늘잎이 푸르게 자랐다.
이곳까지 와서 정취암만 보고 가기엔 위쉬움이 남아 류의태 약수터와 구형왕능을 돌아보기로 했다.

차는 콘크리트 좁은 길을 올라 류의태 약수터로 오른다.
동의보감 저자인 허 준의 스승으로서 조선중기 최고의 신의(神醫)로 알려진 류 의태.
이곳 왕산의 자생약초에 이 약수를 넣어 탕액을 조제한것으로 알려진 약수터로 돌 너덜아래의 서출동류수(西出東流水)로 위장병과 피부병등 불치의 병에 효험이 있다고 안내판에 적혀있다. 도로에서 200여M 정도 오르니 약수터가 있었는데 물이 쉼없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우선 시원한 물을 한 바가지 퍼서 마셨다, 좋다고 해서 일까? 속이 시원해진 느낌이다.
준비해간 프라스틱 물통에 가득 담아 내려온다. 동행한 김 사장님에 의하면 찻물로 쓰면 확실히 다르단다.
물도 마시고 준비해간 통에 물도 담고 이제는 천천히 내려가며 구형왕릉으로 향한다.

입구 간판에 전 (傳) 구형왕릉이라며 전(傳)자를 붙혀쓰고 있었다.
아마도 확실한 기록물 없이 전해내려오는 얘기라는걸까? 아무튼 역사적 기록물 여부보다 돌탑 무덤이 잘 정비되여 있었다.왕릉을 빙둘러 쌓은 돌이 제주도 돌담을 연상하게 만들었다.
가야 10대 임금인 구형왕의 무덤으로 전해지고 있는 이 피라미드형  돌 무덤은 김 유신의 할아버지이며 신라 법흥왕(532)에게 영토를 넘겨줄떄까지 11년간 왕위를 유지했다고 한다.

국내유일의 돌로 쌓은 왕릉으로 이곳의 돌에는 이끼도 끼지않고, 칡 덩굴도 피해가며, 낙엽도 이곳엔 떨어지않고, 새도 똥을 싸지않는다는 설이 전해오고 있단다.
석비에는 가락국호왕릉(駕洛國護王陵)이라 적혀있었고 묘지앞 문무인석(文武人石)과 상석(床石)과 장명등(長明燈)도 설치되여 있었으나 그 당시 물건은 아닌것 같고 후세에 만들어 세워 놓은듯 하였다.
아무튼 깨끗하게 관리되고 보존되여 있었다,국내에서는 처음보는 돌 무덤이였다.

약수터와 구형왕릉을 돌아보고 차는 대전 진주간 고속도로 생초 인터체인지를 통과하며 대전으로 향한다.
차도 북으로 달리고 봄 내음도 차를 따라 북으로~~북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청정 이미지의 대명사, 산청군 나들이. 즐겁고 행복한 하루였다.

  

    

 

최한용  webmaster@ig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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