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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지진 사태를 보면서[1/3]

지난 3월 11일 14시 26분 일본의 동북부 센다이시 앞 바다에서 진도 9의 대지진이 발생했다.일본에서 발생한 전후 최대의 이 지진은 금새 쓰나미를 일으키며 10M 높이의 바닷물을 몰고 오며 일본 동북부를 강타했다.나는 그날따라 밖에서 업무를 보고 저녁 식사후 늦게 귀가하는 바람에 낮에는 인터넷 신문도 보지못했다.결국 내용도 모른채 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데 일본에서 대지진이 발생했다는 뉴스 자막만 보고서 대수롭게 생각지 않았다. 일본은 늘 지진을 염두에 두고 사는 나라라 그럴수도 있겠지하는 단순한 생각만했을 뿐이였다.

하지만 귀가후 늦게 접한 뉴스특보는 엄청난 사실을 생중계 하듯 정규 프로를 중단하고 방송하고 있었다. 센다이 주변해역에서 발생한 진도 8.8의(당시는 8.8이라했다.) 대 지진에다 그 여파로 발생한 쓰나미때문에 온통 일본 동북부가 물 바다가 되였단다.T.V 화면에 나타나는 쓰나미현상은 상상을 초월했다. 시속 6~700KM의 속도로 밀려드는 시꺼먼 바닷물,그건 바닷물이 아니라 물 포탄이였다.밀려오는 물 폭탄에 집이 무너지고, 떠 다니고, 자동차가 곤두박질치고,육중한 선박마져  육지위에 넘어져 있었다.도심을 휩쓴 물폭탄, 쓰나미는 농경지마져 휩쓸며 처참하리만큼의 큰 상처를 입히고 있었다.달리던 열차가 뒤집어지고 센다이 국제공항마져 물에 잠겨버렸다.

게다가 뒤집혀진 선박에서 흘러나온 오일에서 화재가 발생, 일부 도시는 전체가 화염에 휩싸이고 수출 전용부두에서 출하를 기다리던 수백대의 신차에도 불이붙어 시꺼먼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정유공장의 오일 탱크에도 불이 붙고, 진앙지 바닷가 주변은 지도가 바뀔만큼의 큰 변화를 주고 있었다.아비규환이였다, 아마도 지옥이 있다면 이런 상황이 아니였을까?

자고나니 새벽에 배달된 조간신문마다 1면에 큰 활자로 "일본 침몰"이라는 타이틀로 전면을 메우고 었었다.처음 발표때는 진도 8.8이였으나 곧 바로 진도 9로 수정되면서 여진이 남아있을 것이란 예보가 일본인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쓰나미에 사랑하는 가족을,이웃을, 정든집과 재산을 잃은 그들.평소 지진에 대처하는 연습을 수시로 해온 그들이였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자연의 위력앞에 그들도 제대로 손을 쓸 틈조차 없었으리라.

T.V와 라디오 방송에서는 일본지진 뉴스로 연일 뉴스특보가 편성되고 거의 모든 시간을 할애해 지진현황과사망자, 행방불명자, 피해액,우리 교민대책등이 쏟아지고 있었다. 너무갑작스런 쓰나미 여파로 사람들이 피할새도 없이 당하고만것 같았다.우선 공식적으로 당시에는 발표되지 않았었지만 엄청난 규모의 희생자가 있을 것이라 나는 추정했다. 물론 평상시 교육과 잦은 훈련으로 지진시 대피요령이나 규칙을 잘 따르는 것이 일본인들이지만  너무 갑작스런 쓰나미 여파에 손을 쓸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게 사실이라 그렇게 믿어졌다.

하지만 하루가 가고 이틀이 지나면서 일본인특유의 모습을 볼수 있었다.어떠한 상황에서도 국가를 신뢰하고, 따르고 있었다.남을 배려하는 국민성,남에게 피해를 주지않으려 자신의 고통과 어려움을 스스로 감내하고 있었다. 약탈은 물론 사재기 소란도 없었고 새치기도 없었다 그 상황에서도 최후까지 마이크를 붙잡고 "빨리 도망치세요"라며 대피방송을 했던 센다이시의 25세 말단 동사무소 직원.그는 쓰나미에 묻혀버렸다.그라고 도망가고 싶지않았겠는가? 살고 싶지않았겠는가? 무엇이 그를 마이크에서 손을 놓지못하도록 만들었을까? 나 하나 희생이 많은 시민을 구해줄 수 있을것이란  사명감 때문이였을 것이다.    

질서는 유지되고 줄 서기는 지켜지고 있었다.물과 비상식량, 구호품이 늦게 전달되여도 불평하는 사람들을 볼수 없었다.추위에 떨어도 지급되는 담요는 한사람 당 1장씩만 받아들고 있었다. 생필품을 사기위해 4KM씩 줄을 서며 2~3시간 기다림도 이겨내고, 1~2시간 기다리며 겨우 주유한 휘발유는 10리터였지만 불평없이 뒷사람을 위해 양보하고 있었다.

 
일본인들은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움직인다. 그래서 일본 사회를 매뉴얼 사회라고도 부른다 그 누구도 그것을 부정하지않는다. 일단 정해지기까지는 의견이 분분해도 정해지면 이견없이 따른다.우선 나보다 남을 먼저 배려한다.마음속으로 울면서 얼굴로는 웃는다.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상대방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다.내가 울면 나보다 더 큰 불행을 당한 이에게 폐가 된다고 그들은 생각한다.그들은 그것을 메이와쿠(迷惑.폐) 문화라 일컫는다.그런 큰 지진이 삶의터전을 강타했지만 피난민 보호소는 대부분 조용했다,아니 평온했다. 자신들이 살아 남아있슴을 기뻐하기보다 오히려 살아오지못한 행방불명자들에게 미안함을 전하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세계의 모든 언론들은 그들의 모습을 격찬하고 있었다.침착하게 순응하는 모습에서 또 다른 일본의 저력을볼수 있었다고 극찬했다.부끄러운 얘기지만 저런 모습은 일본이였기에 가능하다고 나 자신은 생각한다.나는 일본을 최북단 홋카이도부터 남쪽 끝 나가사키까지 참 많이도 방문했고 여러계층의 일본사람들을 만났다. 물론 회사 업무가 주였고 지금도  사업을 목적으로 교류를 하고있다.내가 일본을 처음 방문한것이 1980년도였으니 30년이 지났다.그런 상황속에서 나는 일본인들의 책임감, 성실성,약속지키기등 사소한 문화까지 터득할 수있는 기회가 되였다. 옛 역사는 밉지만 이젠 힘들어하는 일본인들에게 우리가 응원을 보내야 한다고생각한다.[계속]

      

 

      

최한용  webmaster@ig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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