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5월 뜻밖의 죽음을 맞이한 진화 이론계의 거두 윌리엄 해밀턴 경의 넋을 기리고자 그가 재직한 옥스퍼드대학에 모였다가 BBC의 전 세계 독점생중계하에 주요 토픽별로 토론을 펼치게 된다는 가상의 설정으로 써진 책이다.
내가 처음 이 책을 대하고 느낀 건 평소 인문학에, 토론에, 지식의 편식에 한 2%쯤 늘 아쉬움이 있던 터에 만난 모처럼의 풍성한 식탁 상차림이랄까? 게다가 제목도 「다윈의 식탁」이라니, 책표지 안쪽의 저자 소개 글에 동덕여대교수로 학생들에게 ‘자연과 인문의 공생’을 가르친다는 말도 딱 내 코드다.
몇 년 전에 국립중앙도서관 초청강연회에서 만난 저자는 책을 통해 과학적 진리란 정답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접근법의 타당성과 설득력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 속에서 이론이 정립되고 발전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다윈이 진화론이 처음이지만 ‘생명의 나무’를 그린 최초의 사람이라면서 그 중요성과, 또한 다 읽고 난 다음 책에 출연(?)하는 그 무수한 사람들 중에 해밀턴과 윌리스만큼은 꼭 잊지말아달라는 그의 말에 나는 장대익이 어떤 학문을 하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저자가 진화론을 알려주기 위하여 등장시키는 인물들은 엄청나다.
도데체 누가 누구란 말인가? 하지만 인물들을 기억하지 못해도 치열한 논쟁의 묘미와 자연스레 알게 되는 지식의 참맛 때문에 한번 손에 잡은 이 책을 단박에 읽게 되었다.
진화생물학계를 양분해온 두 유파의 좌장 리처드 도킨스와 스티븐 제이 굴드를 필두로 내로라하는 진화론의 고수들이 양 진영에 포진해 있다.
이들이 장장 엿새에 걸쳐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서로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가상의 논쟁이 흥미진진하다.
책속의 책 이야기도 대단하다.
취업 이후 다양한 주제의 책을 읽지 않고 진화론도 그저 학창시절 교과서 지식으로만 일관해 온 나도 이 책을 접하고 나니, 다윈의 「종의기원」, 굴드의 「풀 하우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어봐야겠단 결심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을 입문서라고 하고 싶다.
이 책을 읽게 되면 다른 여러 가지 학설도 궁금해지는 만큼 평생교육을 위한 직장인도 좋지만 청소년들이 읽는 다면 미래에 또 한명의 다윈, 해밀턴, 그리고 장대익을 잇는 열정적이고 재기발랄한 과학자가 탄생하지 않을까?
한동안 시, 소설, 역사 등 한 가지 음식만을 줄창 나게 먹어서 독서의 편식에 식상해 있는 분이 계시다면 나처럼 「다윈의 식탁」으로 모처럼의 풍성한 식탁을 즐겨보시길...
박찬희 webmaster@ig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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