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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 자녀들과 같이 살아가기...최한용

비 내리는 일요일 오후. 가까운 산에라도 갈가 했는데 비가 내려 거실에 앉아 TV를 보고 있다.

정말 오랜만의 휴식이다. 성격 탓인지 몰라도 휴일 나는 낮잠을 자거나 집에서 TV를 보며 소일한적이 거의 없다. 가까운 산이나 들, 아니면 사우나라도 가서 땀을 흘리지 집에서 누워 딩굴 거리지 않았다.

잠시 외출했던 집사람이 들어오며 조용하던 집안에 목소리가 커진다.

『야! 동근아 현관에 신발이 이게 뭐니, 그리고 은영아! 화장실 바닥이 이게 뭐야. 신문을 보았으면 정리를 해야지.... 수건은 쓰고나서 걸이대에 걸던지. 아니면 세탁물 함에 넣어야지 여기저기 버려두면 누가 치우니. 그리고 양말 짝은 도너츠 처럼 돌돌 말아 방바닥에 널부러져 있고 보던 책은 책 꽂이에 꽂아 두면 어디가 덧나기라도 하니. 버리는 사람 따로 있고 정리하는 사람 따로 있고..... 그리고 앞으로 네 방은 너희들이 정리 정돈 좀해. 이제 이 엄마도 두 손 들었다』

그러자 컴퓨터 하던 아들도, 머리 말리던 딸 아이도 서둘러 제 물건 챙기기에 바쁘다. 이어지는 집 사람의 불만 그리고 "은영이 너 휴대폰 요금 네 통장으로 자동이체 옮겨, 이번달에 얼마 나왔는지 알아" 집안정리로 시작된 불만은 휴대폰 전화 요금으로 까지 번졌다. 부끄럽지만 가끔 반복되는 우리집 풍경이다.

요즈음 아이들은 다 그럴까. 아니면 우리집 아이들만 그럴까 통 정리정돈에 별 관심이 없다. 자기 물건 챙기는 것도 우리 클때와 많이 다른 느낌이다.

소득 수준이 올라가고 문화의 척도가 달라지면 의식도 변화되는 것일까 아니면 복잡한 것 싫어하는 "클릭세대 이기 때문일까? "클릭(CLICK)세대" 요즘음 청소년들을 흔히 부르는 별칭이다.

모든일을 쉽고도 단순하게 대하는 컴퓨터 클릭 동작과 닮은데서 연유했다는 신조어로 다소 부정적 의미의 뜻으로 쓰이는게 사실이다.

우리 어린시절 충청도 산골에서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살아오신 우리 부모님, 농번기엔 해 뜨기 전 새벽 논 밭에 나가셨다. 저녁 어둠이 내려야 집에 돌아 오셔서 저녁을 드셨다.

그런 농촌에서 태어난 우리 8남매. 연년생인 우리들은 그만그만 하게 자랐다. 부모님이 농사일로 바쁘시니까 누나와 형은 동생을, 그 동생은 그 아래 동생을 보살피며 키웠다.

요즈음으로 보면 애가 애를 키운게 사실이다. 이렇게 농사일로 바쁘시니 집안 청소와 정리정돈, 간단한 빨래와 식사는 우리네 누나들이 해결했다. 그 당시 세탁기는 물론 뜨거운 물도 없었다. 동네 개울가 빨래터에서 빨래하고 집 마당 빨래줄에 길게 널어 말렸던 시절이다.

식구가 많으니 세탁물도 많고 식사 준비도 많이 해야 했다. 지금처럼 가스렌지는 구경 할 수도 없었고 아궁이에 장작으로 불을 때서 가마솥에 밥을 하던 시절 이였다.

어려운 삶 속이였지만 우리네 부모님들은 늘 예절과 청결, 정리정돈을 강조 하셨다. 특히 장날 술 한잔 하시고 얼굴에 취기가 오르실 때쯤 돌아오시면  온 가족을 안방에 모아 놓고 훈계를 하셨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각자의 몫이 나누어져 있었고 무언속에 지켜졌다. 마당 한구석의 빗자루도, 낫도, 괭이도 늘 지정된 곳에 정리 정돈 되어 있어야 했다.

이런 반복된 습관에 내 삶의 모습은 허트러져 있는 것을 보고 그냥 지나 칠 수 없는 틀이 되어 버렸다. 작게는 손톱 깎기에서부터 가위 하나 까지 쓰고 나면 제 자리에 두어야 하는 습성이 배어 버렸다.

하지만 요즈음 아이들은 성장하고 커가면서 교육을 시키지 않아서인지 부모들이 늘 치워주니까 그런지 정리정돈, 집안청소, 작은설것이 제 물건 관리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학교에 갔다 돌아오면 현관에 들어서자 마자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 놓고 가방은 현관 구석에, 교복은 소파 위에 , 양말은 뒤집어 진 채로 벗어 놓고 컴퓨터 앞에 앉기 바쁘다. 물을 마시고 나면 빈 컵은 늘 책상 위에 놓여있고 목 마르면 또 새 컵으로 가져온다. 기왕 움직이는거 빈 컵은 싱크대 설것이 통에 넣어주면 좋으련만.... 신세대와 쉰살 세대들의 살아가는 차이는 이토록 크기만할까?

요즈음은 자녀들이 많아야 둘 정도이니 늘 "오냐오냐"키워서일까 아니면 쉰살세대 본인들이 경험한 성장시기 고통을 내 자식에겐 주지 않겠다는 짧은 생각에 멋 모르는 자녀들의 의식이 편승 된 것일까?

아니면 내가 강조 받으면서 배워온 모습에 익숙해져 내 삶의 방식이 인간 행동의 근본 이라고 생각하고 항상 내 방식은 옳고 자식들이 주장하는 원칙은 "틀려먹었다" 거나 " 고집 부린다" 고 생각하는 것인가?

늘 밤늦게 까지 컴퓨터하고 게임에 빠지고 들어보면 핵심 얘기도 없으면서 전화는 길게 하는 신세대들, 이제 대학에 들어갔으니 좀 하고 싶은 것 해도 되는 것 아니냐는 아들의 변명.

시집가기 전 실 컷 놀고 할 것하고 가고 싶은 데도 가야 한다는 딸의 요구.

모두가 자신들의 무장은 있다, 물론 즐겁게 삶을 만끽하며 사는 생활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절제는 삶에 진정 필요한 요소다.

신세대라고, 네가 무엇을 아느냐고 윽박지르지만 말고 그들의 의견도 들어보고 같이 삶을 이어가는 진정한 분위기 조성이 필요 한 것은 사실 이다. 내 모습도 바꾸자, 이제까지 답습한 삶을 반복하면 우리 자녀들도 그 모습으로 살도록 요구만 할뿐이다.

기성세대는 늘 옳고 신세대는 무조건 잘못 되었다는 편견을 버려야 할 때다. 그들의 의견도 존중하고 그들 세계에 한번쯤 들어가서 진정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즐기고자 하는지 진실을 살펴보고 그들의 눈 높이에서 이해 할려고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가족 모두가 행복하고 푸근한 쉼을 제공하는 좋은 가정을 만들어 보자. 5000년전 벽화에도 "요즘 젊은것들은"이란 글자가 있었다고 한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신세대 자녀들과 호흡을 맞추며 바른 삶으로 이끌어 줄 책무가 우리 부모들에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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