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의 달 6월이 왔다.
학창시절 6월의 교정은 각종 전시회나 행사로 분주했던 기억이 새로운데 그 중 웅변대회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 행사였다.
학교 운동장에서 전교생이 모인 가운데 6·25 상기 00주년 호국안보 웅변대회라는 타이틀이 걸린 행사에 반을 대표해 출전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고 운이 좋아 입상이라도 하게 되면 상장과 함께 에센스 영어사전을 부상으로 받으며 어깨가 으쓱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40년이 훌쩍 넘은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옛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웅변대회에 나가려면 가장 필요한 것이 웅변원고인데 학원이라든지 개인 지도를 받을 만한 곳이 없었던 시절이라 아버지나 형님들의 도움을 받아 신문 사설을 베끼다 시피해 겨우 원고가 작성이 되면 국어 선생님을 찾아가 검사를 받고 완성됐다 싶으면 방과 후 텅 빈 교실에서 혼자 고래고래 목에 핏줄 세우며 연습을 했던 기억이 난다.
68년 김신조 사건 이후 총력안보라는 구호가 각 기관의 벽을 장식할 정도로 안보의식이 대단했었는데 향토예비군이 창설이 되고 학도호국단이 만들어져 교정에서도 학생들이 교련과목의 군사훈련을 받는 시대였는데 ‘무찌르자 공산당! 때려잡자 김일성!!’ 반공, 방첩 등의 포스터와 표어가 시내 전봇대에 즐비하게 붙어있었다.
웅변대회의 열기도 뜨거웠다.
학교를 대표해 학교 대항전 성격의 웅변대회는 각 학교 응원단이 별도로 참석해 청중석을 가득 메웠는데 옆 학교의 여중생, 여고생들이 응원을 하며 나를 바라봐 주고 내 웅변을 들어주며 가끔은 팬까지 생겨 팬레터도 날아올 지경이었으니 공부는 좀 못해도 웅변 하나 잘하는 것만으로도 친구 사이에 인기가 ‘짱’이었던 학창 시절이었다.
웅변대회의 입상과는 관계없이 6·25를 이야기 하고 반공을 외친 내가 괜스레 나라에 충성을 한 것 같고 한장 한장의 상장이 모아질 때마다 애국자가 되어 가는 느낌이었다.
70~80년대에는 웅변의 전성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 학교에서는 웅변 잘 하는 학생들을 특기생으로 선발해 각종 장학혜택을 주고 웅변을 장려하던 때였는데 그 대표적인 학교가 보문고, 대성고, 남대전고 등이었고 각 학교별로 웅변을 잘하는 레젼드급의 연사들이 많이 있어서 지금과는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는 들어볼만한 웅변 대회였다.
그 시기에는 자고 일어나면 터지는 북한측의 도발이 자주 일어났는데 1.21청화대 습격사건, 울진 삼척 무장공비 만행사건, 이승복 추모웅변대회, 8.18도끼 만행사건 등이 있었고 사회계몽 웅변대회도 많았는데 예비군 창설 0주년 웅변대회, 4-H 경진 웅변대회, 새마을 운동 웅변대회 등 헤아리지 못할 정도의 웅변대회가 관 주도로 행해지고 있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행사는 『육영수 여사 서거 추모웅변 대회』가 육여사 생가인 옥천 문화원에서 75년부터 열리기 시작해 3회 대회 까지 열린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온통 울음 바다가 되어 행사가 끝이 나고 보면 눈에 핏기가 어릴 정도로 충혈이 되어있고 눈이 퉁퉁 부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각이 난다.
이렇듯 한 시대를 풍미했던 웅변대회가 입시제도의 변화, 단체 관람을 했던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지금은 사라진지 오래 되었다.
낡은 앨범 속에 색 바랜 사진으로나 추억을 이야기해야 하는 웅변이 된 것이다.
힘차게 외칩니다.
매년 교육청 주관으로 실시되었던 학생들의 반공 웅변도 사라진지 3년이 되었고,자유총연맹에서 주관하는 대통령상패 전국 웅변대회도 각 지부의 예산 부족으로 슬그머니 지역 예선이 사라졌다.
6월의 웅변대회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몇 가지의 아쉬움을 토로하고자 한다.
첫째, 학생들의 발표력 기회를 박탈하지 말아야 한다.
웅변대회의 참여 기회를 통해 커나가는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며 자신감을 얻는 교육의 장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천편일률적인 입시 위주의 서열 매기기 학습이 아니라 발표와 표현으로 상대를 설득 시키는 스피치의 교육이야말로 리더의 품성을 이어가는 최고의 덕목이다.
매년 실시되던 웅변대회마저도 ‘예산부족이다. 참여율 저조다.’라며 책상 앞에서 기안을 짜는 담당자는 행사 자체가 귀찮고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웅변대회란 말인가? 하며, 뒷짐을 지고 있는 사이 우리 아이들의 발표력 기회가 박탈당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지도자는 사자후를 통해 민중과 함께 했고, 그 품성과 자질을 키울 수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둘째, 감성 언어를 잃고 있는 청소년이 많다.
스마트 폰 시대에 살고 있는 요즘의 청소년들은 쓰고 말하기 보다는 문자로 의사를 소통하는 세대들이다.
SNS의 댓글을 보면 무슨 말인지 그들만이 알아 볼 수 있는 국적 불명의 단어들이 춤을 춘다.
그만큼 감성언어를 잃고 있는 청소년들이 많다는 이야기 이다.
글을 다듬어 보고 이를 표현하게 하는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어단어, 수학공식 몇 개 외우는 공부 보다는 자기의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표현하는 말하기 학습을 먼저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말속에 예의와 범절이 있고 절도가 넘쳐나며 끊고 맺는 자기주장이 분명할 때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 어디를 보더라도 말하기, 발표력 교육을 시키는 현장도 없고 이를 권장 하기는 커녕 있는 행사마저도 축소를 하고 없애려 드니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청소년들의 손에 한권의 시집이 들려있고 이를 감성적으로 표현하는 청소년들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장미꽃 향 그윽한 호국 보훈의 달 6월을 맞이해 각 학교의 교정에 다시 학생들이 웅변하는 모습과 힘차게 외치는 사자후가 들리기를 기대해 본다.
나라사랑의 정신도 배우고 발표력도 증진 시킬 수 있으니 일거양득의 교육적 효과가 있을 것이다.
지금도 내 귓전엔 공산당을 무찌르자는 까까머리 학창 시절의 모습이 아련히 보이는 듯 하다.
김진 webmaster@ig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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