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았다.
주식인 쌀이 턱없이 부족했다. 친구들과 미군부대로 숨어들어 물건을 훔쳐보았지만 배고픔은 여전했다.
유년시절부터 청년기까지 그의 인생은 가난과의 싸움이었다.
그러다 미군부대에 일용직 페인트공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미군부대 안은 그야말로 바깥세상과는 완전 딴 판이었다.
모든 것이 풍족한 그래서 어쩌면 인생을 한번 바꿔 볼 수 도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청년은 일부러 그들의 언어인 영어를 외면 해 버렸다.
필요하면 바디랭기지로 그들과 소통했다. 청년에게는 조선왕조의 고고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청년이 본 미국은 제국주의였다. 그런 제국주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조상들에게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여겼다.
이사장이 석재사업에 뛰어든 것은 73년도였다. 서울에서였다.
특유의 성실함과 신뢰로 고객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면서 사업이 잘 되어 78년에는 공장을 가질 정도로 번창했다.
배움의 끈을 놓치지 않았던 이 사장은 마흔 두 살에 동국대학교 대학원 신문방송학과에 입학을 했다. 정치를 하기위한 전략이었다.
재력을 갖춘 사업가로써 또한 타고난 카리스마와 달변 그리고 사람을 리드하는 능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체질은 정치인 성향을 두루 갖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변의 권유와 함께 82년에 정치 입문을 시도한다.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총재로 있었던 평민당 구리시 지구당 위원장에 추대되어 시의원과 도의원에 두 번 출마 했다가 낙선을 했다.
잠시 숨을 고른 다음 다시 국민당으로 당적을 옮겨 코미디언 이주일과 국회의원 후보경선에서 붙었다가 떨어졌다.
사선을 넘어 온 이북사람 특유의 강한 기질을 가지고 도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사업하던 사람이 정치판에 뛰어 들었다가 실패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된다는 걸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당선이라는 환상을 쫏아 가는 자신에게는 이후의 시간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싶질 않았다.
이제 그에게 남은 건 좌절감과 허탈감 그리고 배신감 때문에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차라리 현기증 정도에서 끝날 것 같았으면 다행이었다.
급기야 사업체가 부도를 맞았다.
어느 한 사람 자신을 안아주는 사람도 없었고 또 갈 곳도 없었다.
위원장님 하면서 따라다니던 사람들마저 선거에서 떨어지고 나니 앞면을 싹 바꿔버렸다.
어떻게 해야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막막함이 그를 무겁게 압박했다. 넋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어느날 꿈을 꾸었다.
바람결에 비단 한 폭이 산자락위에서 휘날리는 아름다운 모습이보였다.
"비단이라, 비단이라.. 비단 장사를 하란 말인가.."
그건 아닐 듯 했다.
"그렇다면 금산으로 가라는 뜻인데.."
이 사장이 충남 금산에 내려 온 것은 93년이다.
빛만 잔뜩 진 채 맨주먹으로 내려왔다. 금산錦山이 '비단으로 쌓인 산'이란 그 매력에 이끌려서 였다. 태조 이성계가 남해 금산에서 백일기도를 하면서 제왕이 되면 산 전체를 비단으로 덮어 주리라고 했던 그 금산보다 더 깊은 뜻이 있는 금산 일 것이라고 믿었다.
금산은 고려 공민왕이 도읍지를 옮기려고 했던 곳이 아닌가.
다시 동향석재라는 상호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동안 쌓아온 신용을 바탕으로 자재는 외상으로 들였고, 땅도 빌려서 공장부지를 마련해 초등학교 때 황무지를 개간하듯 조금씩 사업을 진행시켜 나갔다.
하지만 선거후유증은 정신은 물론 육체까지 괴롭혔다.
장종안 webmaster@ig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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