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라크에서 비참하게 죽음을 당한 김선일씨에 대한 얘기가 우리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일 것이다.
이라크 사태가 우리에게 특히 중요한 것은 월남전에 참전한 것에 대한 기억이 대부분 아픈 것만 남아 있는 현 시점에서 우리의 젊은이들이 그 먼 곳에까지 나가야 하는가 하는 논쟁이 가라앉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렇듯 중요한 시점에 그것도 매우 비참하게 우리의 국민 중 한 사람이 희생당했다는 것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전국에서 비등하게 끓어오르고 있다.
이 와중에 우리의 정부기관인 외교통상부와 국가정보원, 그리고 NSC까지 대응이 미흡했고, 게다가 사태의 일부를 감추려고까지 했다는 비난을 받게되고 보니 문제가 더욱 커진 것이다.
특히 김씨가 이미 사망한 시점인 2004년 6월 22일 오후 10시에 노무현 대통령이 외교통상부 청사에서 아직 희망이 있다는 등의 상황을 보고받는 장면이 공개된 것은 정부기관이 얼마나 무능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가장 큰 예가 되겠다.
지난 1998년에 서울 보라매병원에서 발생한 소위 「보라매병원사건」이 대법원까지 올라와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일이 있다.
「보라매병원사건125의 개요는 이렇다.
1997년 12월 4일 오후 김모(당시58세)씨는 술에 취해 화장실을 가다 넘어져 머리를 심하게 부딪힌다. 급히 서울시립 보라매병원으로 이송된 김씨는 응급 뇌수술을 받고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김씨의 부인 이모(54)씨는 병원비를 감당하기 어렵고, 치료를 계속해도 회생 가능성이 거의 없을 것 같다는 의사의 진단에 따라 남편의 퇴원을 요구했다.
이에 의사 양씨 등은 “퇴원하면 바로 죽는다. 돈이 없다면 차라리 도망가라”고 극구 만류했지만 이씨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병원측은 사망하더라도 법적으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은 뒤 입원 이틀만에 김씨를 퇴원시켰고, 당시 수련의였던 강모(33)씨는 병원구급차를 이용해 김씨를 집으로 옮긴 뒤 인공호흡장치를 제거했으며, 김씨는 5분쯤 뒤 호흡곤란으로 사망했다.
검찰은 지난 98년 1월 양씨 등에 대해 “의학적 판단에 따라 관리해야 할 중환자를 보호자의 퇴원 요구만으로 내보내 죽게 한 것은 살인 행위”라며 사법사상 처음으로 살인죄를 적용, 불구속 기소한 것이다.
대법원의 판결 요지는 환자가 퇴원할 경우 사망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보호자의 요구에 따라 환자를 퇴원시킨 의사의 조치는 살인방조죄가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 사건에 연루된 두 명의 의사들은 1심에서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이, 2심에서는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되었다.
이 사건에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죄'에 대한 ‘벌'이라는 것은 그 ‘죄'를 지은 사람에 대한 ‘벌'의 의미도 있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조심하게 하는 경종의 의미가 더 크다. 그래서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유명한 문구가 있지 않은가?
하지만, 다음에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 의사를 처벌한다고 해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가족들은 치료비가 없다고 하고, 의사가 치료비를 대신 내줄 수도 없는 입장일 것이다.
그렇다고 정부에서 그 역할을 떠맡을 의사도
없다면 의식이 없는 환자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고귀한 자신의 생명을 다른 사람이 좌지우지할 수는 당연히 없겠지만, 아무리 하나밖에 없는 마누라라고 해도 환자 자신은 아닌 것이고, 치료비가 없어 산 사람이라도 살아야겠다고 남편을 죽게 만들겠다는 마누라를 설득할 수 없다면 이번에는 의사가 살인방조죄를 뒤집어써야 한다.
이렇게 되다 보니 이 소식을 접한 의사들은 ‘살인죄 기소’를 면하기 위해 관례적으로 퇴원시켜왔던 회생 가능성 없는 환자도 퇴원시키기를 거부했다.
게다가 보건복지부가 이 판결의 후속조치로‘의료서비스 제공의 단절이 사망의 원인이 될 가능성이 있는 환자에 대해서 퇴원조치를 해선 안된다’고 유권해석을 함에 따라 이 같은 현상은 더욱 심화됐다.
이렇게 되다 보니 중환자실 부족현상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게 되고, ‘과잉진료’라고 주장하며 퇴원을 요구하는 환자 가족과의 갈등도 최고조로 높아졌다.
하지만 어떤 미친 인간이 살인방조죄를 뒤집어쓸 줄 뻔히 알면서 죽을 사람을 퇴원시키겠는가?
차라리 화가 난 보호자들에게 뺨을 한 대
맞고 마는 게 낫지.
‘김선일씨 사건'과 ‘보라매병원사건'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행정시스템이 돌아가는데 있어 아주 커다란 구멍이 있고, 그
구멍으로 우리 국민들이 빠져 희생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 같으면 이런 해결책이 있다.
우선 의사는 그 부인을 국가에 고발한다. 그러면 국가는 그
부인에게서 친권을 빼앗고, 치료비를 국가가 부담한다. 그리고는 그 부인에게 민사, 형사적인 벌칙을 적용하면서 또 구상권을 행사한다.
우리에게도 그런 해결책이 있는가? 나는 듣지 못했다.
이렇게 우리의 국가기관들은 잘못한 국민을 야단치고 벌을 주는 것에는 익숙하면서, 다시 말해 국민에게 부담은 잘도 지게 하면서, 어려운 정황에 빠진 국민들이 곤경에서 빠져나가게 만드는 자혜에 대해서는 온통 구멍투성이라는 것이 이 두 사건의 교훈인 것이다.
국가를 믿다가는 언제 어떻게 당할지 모르니, 나 살 길은 내가 스스로 알아서 챙겨야 한다는 진실을 외국에 나가 있는 우리 교민들은 이미 경험으로, 그리고 들어서 다 알고 있다고 한다.
법은 상식이라고 한다. 그리고 법은 우리 국민들을 편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절대로 구속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상식이다.
얼마나 기다려야 이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올 수 있을까?
언제까지나 원시적인 돌망치인 공무원의 ‘부정부패 단속'과 ‘법대로'라는
낡은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구멍없는 합리적인 시스템에서 우리가 살 수 있을까?
이 땅에서 국가는 국민에게 짐이 아니라 국민이 지고 있는 짐을 덜어주는 파트너라고 얘기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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