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와 불효 사이

·옛날에는…
옛날 얘기 한 마디.

옛날 또 한 옛날, 서울이 한양이고, 인왕산에 호랑이가 활개치던 시절 지금의 청와대를 바라보고 왼쪽인 청운동과 효자동은 논밭이었다고 한다.

어느 해 여름, 이 곳에 살던 젊은 농사꾼 부부가 들에 일하러 나가면서 아낙은 젖먹이 외아들을 몸이 불편한 홀시아버지께 맡겼단다. 시아버지에게 죄송스럽기는 하지만, 워낙 가난한 집안에 일손마저 귀한 터라 달리 뾰족한 방법도 없었겠지.

한참 일을 하다 아기 젖먹일 시간이 되자 아낙은 집으로 돌아갔는데…그런데 집안에 인기척이 없는 것이 아닌가? “아기가 자나? 아버님이 마실 가셨나?” 의문은 금새 크나큰 놀라움과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듯한 한숨으로 변했다.

혼자 아기를 보던 시아버지가 평소 좋아하던 약주를 마시다가 그만 과음, 인사불성이 되어 어린 손자가 자신의 배 밑에 깔리는 것도 모르고 코를 골고 있었던 것이다. 시아버지의 비둔한 몸에 깔린 어린 것은 벌써 숨을 멈추었고…

이 처참한 광경을 보고 며느리는 혼절할 뻔했지만, 워낙 시어른에 대한 공경심이 남달랐던 터라 ‘악’소리를 억누르고 아기를 꺼내어 들쳐 안고서 들에 있는 남편에게로 냅다 뛰었다.

“기왕에 아기는 죽었으니 어쩔 수 없지만, 어른이 깨시면 얼마나 상심하실까”하는 걱정으로 억눌렀던 통곡을 뒤늦게 지르면서…

아낙은 남편에게 사정을 알리고 아기 시체를 아무도 몰래 매장하는 게 좋겠다고 제안한다. 시부께 걱정 끼치느니 둘만의 비밀을 무덤까지 간직하자 하면서…

이 기막힌 상황에 닥친 남편은 한술 더 뜨는 사람이었다.
들판 가운데서 축 늘어진 아기 시체를 안아 받아 든 그 남편.

“이 놈아 나도 불효지만 너는 더 큰 불효니라. 어쩌자고 네가 죽어 할아버지 가슴에 못을 박는단 말이냐? 이 불효 막심한 놈! 이 불효 막심한 놈!”

농부는 연신 그 어린 시체의 두 뺨을 철썩철썩 때리면서 목놓아 통곡했다.
그런데, 갑자기 죽었던 아기가 아버지의 뺨따귀에 깨어나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 아닌가!!

할아버지 배 밑에 깔리어 죽은 줄만 알았던 아기, 이 아기가 실은 잠시 질식했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가 조정에까지 알려지자 나랏님은 이들 부부에 큰 상을 내리시고 그들 사는 동네를 효자동이라 이름하시고 이 출천대효(出天大孝)를 만대에 전했다고 한다.

·지금 우리 사는 모습을 보자면…
얼마 전 공영방송인 KBS의 드라마에서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뺨을 사정없이 갈기고, 한술 더 떠서 아들은 제 어머니가 맞을 짓을 했다며 제 마누라 역성드는 장면이 방영되어 수많은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 말종’이라든가 ‘말세’라는 표현을 쓰면서 이 ‘패륜’을 규탄하였다.
당연한 반응이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무리 각박하더라도 이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면 안 되는 패륜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세상만사가 항상 동전의 양면과 같이 앞과 뒤가 있기 마련이기에, 보는 각도를 조금 바꾸어서 이런 사건을 『저지른』 사람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이런 말도 안되는 드라마를 만든 작가와 PD, 그리고 연기한 배우들은 어떤 생각으로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

드라마의 내용을 한 번 보자.
맞벌이하는 아들 부부를 뒷바라지하는 시어머니가 손주를 돌보다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아이가 국그릇을 엎어 화상을 입는 게 사건의 발단이다.

병원으로 달려온 며느리가 “아니 도대체 애를 어떻게 보신 거예요”라며 시어머니 뺨을 갈긴다. 뒤늦게 도착한 아들이란 인간은 자초지종을 듣더니 “맞을 짓을 하셨네요”라며 어머니를 몰아세운다.

결국 옛이야기 속에서는 아버지가 아들의 뺨을 때리고, 지금은 아이를 위해 며느리가 시어머니 뺨을 때린 셈이 되었는데, 어떤 매스컴은 KBS를 ‘무뇌(無腦)상태’라고 혹평했고, KBS는 별로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담당 PD는 “오늘날 부모 자식간의 갈등의 극단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세상이 항상 유쾌하지만은 않고, 삶은 너무나도 자주 칙칙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는데, 우리가 유심히 보아야 할 것은 이런 패륜이 실화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들은 바에 의하면 실제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뺨맞고, 아들에게 기찬 소리를 들은 노인이 그날로 자기 명의의 모든 재산을 팔아 고향으로 갔다’는 실제 있었던 사건을 드라마에서 차용한 것이라고 한다.

물론 매스컴이란 것이, 그리고 드라마라는 것이 사회현상을 파헤치고 실상을 대중들에게 전달해 줄 의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PD는 저널리즘에만 열중한 나머지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한 우(愚)’를 범했기 때문에 큰 비난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논쟁에서 과연 얼마나 자유로울까?
여기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두가지가 있을 것 같다.

하나는 그 PD가 경험했듯이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생각을 기준으로 일을 처리하다 보면 아집(我執)의 형태로 빠지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속된 말로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란 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우리는 ‘더불어 사는 세상’에 살고 있고, 특히 금산이란 지역사회는 너무나 좁은 동네이기 때문에 특별히 누구나 우리 스스로 이런 아집에 빠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경계를 하며 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다른 하나는 ‘바람 불고 구름이 일면 비가 올 것’을 대비하듯이, 이런 패륜이 실제 과거에 있었건 없었건 간에 앞으로는 얼마든지 자주 생길 수 있는 불행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살아오면서 직·간접적으로 체득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매사를 판단하지만,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과 사물에 대한 판단은 기대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태어날 때에는 물론 같은 사람으로 태어나겠지만, 자라면서 환경과 자신의 능력과 감정에 따라 각기 달리 커 가기 때문에 처음 시작의 차이는 많지 않지만, 점점 그 격차가 벌어지면서 결국 나중에는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그 간극(間隙)이 넓어지게 된다.

이렇다 보니 비단 부모 자식간의 문제뿐만 아니라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변치 않는 것이 있다’는 믿음을 갖고 살기에는 세상만사가 너무나 각박해지고 있다는 걱정을 하게 되는데, 이런 걱정만 하고 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리는 없을 것이고, 우리 스스로 ‘정말 이래서는 안 된다’는 자각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이런 마음들이 합쳐져 공감대를 형성해야만 뭔가 세상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란 생각을 하도록 하자.

금산신문 webmaster@igsnews.co.kr

트윗하기

금산신문의 다른기사 보기